병원 진료실에서 범행 후 가해자 투신, 동기 오리무중…피해자는 심혈관계 명의, 환자·동료 등 애도 물결
7월 19일 오후 1시경 저장성 윈저우의과대학 부속 제일병원 내 심혈관내과 진료실. 리셩은 방에서 진료 기록 등을 보며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성이 들어와 망치를 휘두르고, 칼로 리셩을 여러 차례 찔렀다. 리셩은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밤 9시경 결국 목숨을 잃었다.
리셩의 응급 치료에 참여했던 한 의사는 “리셩이 죽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보고를 받기론 그리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술실에 도착한 리셩의 상태는 심각했다. 혈압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당황했다”면서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전했다.
병원 공식 위챗엔 리셩의 사망 소식이 올라왔다. 병원 홈페이지엔 ‘리셩을 침통하게 추모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병원 측은 “전문가를 꾸려 치료를 진행했지만 중태였다. 응급처치도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어 “리셩의 사망은 제일병원, 더 나아가 중국 심혈관 분야의 중대한 손실”이라고 했다. 7월 21일 공산당은 리셩에게 ‘우수 당원’ 칭호를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1996년부터 병원 근무를 시작했던 리셩의 죽음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물론, 환자들과 많은 국민들이 애도했다. 리셩과 관련된 일화들도 인터넷과 방송 등에 소개되고 있다. 리셩의 고교 동창 진 아무개 씨는 “얼마 전 통화했다. 내 딸이 간호사 취업을 앞두고 있는데 진로를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리셩은 아무리 힘들고 수입이 적더라도 수술실을 택하라고 조언해줬다”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리셩의 의대 대학원 시절 친구는 “환자를 보느라 마지막 시험을 치르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연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다수 동기들이 해외 유학 기회를 찾았지만, 리셩은 나는 병원으로 가 임상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 외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쉬는 시간엔 주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보곤 했다. 그게 리셩의 유일한 휴식이었다”고 했다.
혈관내과 입원부 병동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한 간병인도 리셩을 떠올렸다. 그는 “19일 리셩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환자들이 병실에서 걱정을 했고, 눈물을 흘렸다. 리셩은 십수년간 매일 아침 7시 병원을 돌면서 환자들을 봤다”고 했다. 이 간병인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리셩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제일병원의 한 의사도 이렇게 말했다.
“리셩은 심혈관계의 전설이었다. ‘제일병원 심혈관 수술의 성패는 리셩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리셩이 없었다면 많은 환자들이 심장 문제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살렸는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심혈관계 수술만 놓고 보면 리셩이 저장성에서 단연 최고다.”
7월 20일 리셩의 장례식장엔 추모객들 발길이 이어졌다. 병원 직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았다. 이들은 리셩의 영정사진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 각계각층의 조화도 끝없이 서 있었다.
병실에 누워있던 환자들도 보호자들의 부축을 받고 찾았다. 여기엔 허정과 그의 아버지도 있었다. 허정은 “리셩이 떠나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 앞으로 수술을 더 받아야 하고, 할아버지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허정의 손수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허정은 “리셩은 윈저우 사투리를 천천히 구사하며 아버지의 병세를 설명해줬다. 가족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고, 언제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전해줘 위안을 줬다”고 덧붙였다.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 등엔 리셩을 살해한 후 방에서 나오는 범인의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영상에 따르면 리셩 방에서 나온 범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를 뛰어가,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범인은 즉사했다. 범인이 떨어진 곳은 인파가 몰리는 안네데스크 옆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펑’하는 소리에 놀랐고, 큰 소동이 벌어졌다. 보안과 직원들이 달려와 현장을 폐쇄했고,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왕 아무개 씨는 이 모습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입원한 친척 면회 차 병원에 왔던 왕 씨는 1층 로비 의자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누군가 소리를 질러 그곳을 바라보니 한 남성이 바닥에 추락해 있었다고 한다. 왕 씨는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서지 못하고 온몸을 떨었다. 왕 씨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나가던 사람이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리셩 사건이 알려진 후 같은 병원 의사 주 아무개 씨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범인의 범행 동기를 둘러싼 소문 때문이다. 범인의 아내가 주 씨로부터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을 하지 못해 죽었고, 이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병원엔 항의전화가 쇄도했고, 주 씨의 신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무근이었다. 공안의 초동 조사에 따르면 범인은 미혼인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사는 가족도 없었다. 공안 측은 “10년 동안 병원 방문 이력이 없었다. 현수막 신고 등 분쟁도 없었다. 자택에서 수면제를 다량으로 발견했다. 전담반을 구성해 살해사건을 수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의료계에선 병원의 보안 문제도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일병원은 저장성에서도 손꼽히는 초대형 병원이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병원으로 들어오면, 언제든 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일병원 한 의사는 “평소 보안검사를 하지만 형식적”이라면서 “리셩이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사건 후 병원 측은 출입 보안 검색을 강화했다. 정문을 제외한 문은 모두 플라스틱 끈으로 통제를 막았다. 출입구에는 금속탐지기를 든 보안 요원이 배치됐다. 출입자들의 가방도 검사한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엔 공항에서 사용되는 엑스레이 검색대를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리셩의 조문을 마치고 나온 한 의사는 “진찰실은 들어오는 문, 하나뿐이다. 그동안 문을 하나 더 설치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었다. 만일을 대비해 탈출하기 위해서다. 문을 열어두는 방안도 나오지만 이는 진료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면서 “리셩 사고 후 많은 의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털어놨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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