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 회동서 원팀 강조, 윤·한 갈등 해소 의지…“허니문 지속 여부, 김 여사에 달렸다”
한동훈 대표 당선 다음 날 윤 대통령이 한 대표 등을 불러 떠들썩한 만찬을 진행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징계를 받고 당을 떠난 이준석 대표 사례처럼 친윤 그룹이 한 대표에게 완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은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용산이 향후 당정 관계 주도권을 놓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파열음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 중심엔 김건희 여사가 있다는 분석이다.
#윤-한 러브샷 “우리는 가족”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4일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와 대표 경선 출마자들, 주요 당직자들을 대통령실 야외정원 ‘파인그라스’로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한 대표가 당선되자마자 윤 대통령과 통화를 했는데 이때 일정이 바로 잡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표는 당선 직후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했으며, 윤 대통령은 “고생 많았다. 잘해 달라”는 취지로 격려했다.
만찬은 일정 잡기부터 실행되기까지 속전속결이었다. 2023년 3·8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은 김기현 전 대표는 당선 닷새 만에 윤 대통령과 회동했다. 더욱이 김 전 대표는 ‘용산이 밀었던’ 후보였다. 이준석 전 대표는 윤 대통령 취임 사흘 만에 만났다. 이를 감안하면 한 대표와 윤 대통령과의 만남은 빠른 속도로 이뤄진 셈이다.
만찬 분위기가 무르익자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러브샷’을 해 참석자들 박수를 받았다. 지난 총선, 그리고 전당대회 기간 불거졌던 이른바 ‘윤·한 갈등’을 풀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만찬 마무리 발언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우리 한동훈 대표를 잘 도와줘야 된다. 주위에서 잘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 한동훈’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옛정도 다시 소환했다.
이러한 윤 대통령 스탠스는 전당대회 참석 때부터 감지됐다.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전당대회를 찾은 윤 대통령의 축사 주제는 ‘원팀으로 화합하고 하나되는 국민의힘’이었다. 윤 대통령은 “당정이 원팀이 되어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일할 때 국민께서도 더 큰 힘을 우리에게 실어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경험치로 볼 때 윤 대통령은 한 대표 당선에 대비해 직접 전당대회장을 찾았고 화합을 강조하면서 ‘대표가 되더라도 원팀 기조와 차별화하려는 시도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7·24 만찬 주메뉴는 당·정·대 화합의 의미가 담긴 삼겹살, 그리고 모든 것을 모아 화합한다는 의미를 살린 모둠 상추쌈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만찬 메뉴를 직접 선정했다고 한다. 용산이 당정 화합, 당정 일체의 주축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만찬 형식도 주목을 받았다. 한동훈 대표와의 독대 형식이 아닌 당선자 그룹에다 낙선자들까지 초청하는 ‘초다자’ 만찬이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한동훈 힘 빼기 전략’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2023년 3·8 전당대회 직후 이뤄진 윤 대통령과 새 여당 지도부의 3·13 만찬은 이번과 달랐다. 당시에는 김기현 신임 대표를 비롯해 김재원 김병민 조수진 태영호 최고위원,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등 신임 지도부만 참석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오랜 세월 여러 전당대회를 봤지만 전당대회에서 낙선한 사람들까지 모두 모아서 함께 자리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명분이 ‘대화합’이어서 한 대표 힘 빼기라는 분석은 일단 약화됐지만 어찌됐든 한 대표 측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고, 용산 주도의 당정 관계 구도에 대한 전망이 힘을 얻은 셈”이라고 했다.
만찬 참석자들은 윤·한 갈등이 해소되는 수준의 자리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7월 2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만찬 회동에서 서로 다가가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먼저 당대표에게 상당히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였고 한 대표도 대통령에게 여러 가지 다가가려는 모습이 굉장히 눈에 띄었다”고 김 최고위원은 소개했다.
한 대표 역시 윤 대통령과 이심전심이었다는 내용도 김 최고위원은 밝혔다. 그는 한 대표는 ‘별로 언급이 없었다’는 보도에 대해 “그렇지 않다. 대통령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면 그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통령의 말씀에 자신의 입장, 의견을 충분히 설명하거나 오히려 대통령이 이야기하면 좀 더 내용을 보완하면서 설명하고 그러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고 반박했다.
친 한동훈계 인사로 꼽히는 장동혁 최고위원도 7월 2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전체적인 참석자들의 이야기는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서 함께 힘을 모으고 노력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면서 분위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쓴소리’를 많이 해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7월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한 관계를 회복 국면 단계로 봤다. 그는 “그동안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어제 만찬을 통해서 어느 정도 부드럽게 만들고 결국 한동훈 대표와 대통령이 만나서 조율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했다.
여당 주도로 이른바 ‘채 상병 특검법’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당론과 결을 달리했던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만찬 이후 ‘단일대오’ 강조에 나섰다. 그는 7월 25일 새 지도부 출범 후 열린 첫 최고위에서 민주당의 특검법 공세와 관련, “저는 전당대회 내내 민주당 특검법을 강력히 비판해왔다”며 “잘못된 법이 통과돼 국민이 피해 보는 걸 단호히 막겠다”고 했다.
#용산 주도 당·정 관계 지속 땐…
정치권에선 용산과 국민의힘 간 ‘허니문’이 오래 가진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용산 주도의 당정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경우 그 경로를 이탈할 수밖에 없고, 결국 갈등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한동훈 대표 입지가 과거 김기현 이준석 황교안 전 대표들과는 다르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무게를 더한다.
2021년 6·11 전당대회 때 이준석 전 대표 득표율은 43.82%였다. 2023년 3·8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대표는 52.93%를 얻었다.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2·27 전당대회 황교안 대표 득표율은 50%였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대표 득표율은 62.84%로 그 이전 대표 선출자보다 압도적으로 더 높았다. 당심과 일반 여론조사에서 모두 최종 득표율과 비슷한 비율의 고른 지지세를 얻었다. 한 대표가 비록 보수정당 수장으로서 정통성에서는 약점이 있고 정치 경력이 짧지만, 대표성에서만큼은 전직 대표들보다 훨씬 강한 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한 대표가 수직적 당정 관계를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욱이 한 대표는 차기 대권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용산과의 차별화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박근혜 비대위원장 사례가 거론된다. 윤 대통령 역시 미래권력에 호락호락 자리를 넘겨주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추이는 상승세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단순한 인간관계라면 수십 년을 알고 지내온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갈등할 일이 전혀 없다”며 “국민의힘 전신인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가 자신을 발탁해준 김영삼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서면서 심각한 갈등을 벌였듯이 권력 구도 속에 놓이면 인간적 인연도 쉽게 무너지는데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도 지금은 다시 좋아졌지만 향후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윤-한 갈등’의 트리거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지난 1월 이른바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으로 처음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주변에 한 대표를 강하게 비토했다는 얘기도 곳곳에서 나왔다. 둘의 갈등 발단 배경에 김 여사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당대회 기간 한 후보 측은 문자가 공개된 것을 두고도 친윤계 측의 전당대회 개입 의도라며 불쾌해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 직후 ‘검찰의 김건희 여사 조사 방식과 절차가 적절했느냐’라는 기자들 질문에 “그동안 조사가 미뤄졌는데 영부인이 결단해 직접 대면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 다만 검찰이 수사 방식을 정하는 데 더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제3의 장소 조사, 총장 패싱 등에 대해 용산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내비친 셈이다.
한 후보 발언 후 대통령실 내부에선 곤혹스러워하는 기류가 흘러 나왔다. 윤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참석해 ‘원팀’을 강조했고, 만찬까지 예정된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간단하지만 어려운 문제다. 한 명은 김 여사를 버릴 수 없고, 또 다른 한 명은 김 여사를 버려야 산다. 둘 중 하나가 물러설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민주당은 이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여권으로선 외통수에 걸려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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