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결제 막혀 여름휴가 앞둔 고객 발 동동…‘문어발 경영’ 책임론에 부도 우려마저 제기
#여름휴가 계획 ‘물거품’ 될까?
위메프 입점 판매자 500여 명은 정산 예정일인 지난 7월 7일 판매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회사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위메프 측은 7월 17일 판매자 공지를 통해 연이율 10% 지연 이자 지급, 지연 금액의 10%를 포인트로 지급하는 보상안 등을 제시하고 이달 말까지 정산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메프에 이어 티몬까지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하자 입점 업체들의 도미노 철수로 이어지고 있다.
롯데와 현대백화점, GS, CJ온스타일 등 홈쇼핑 업체들도 모두 티몬과 위메프에서 상품을 내렸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용카드 결제를 대행하는 PG사들까지 신용카드 신규 결제 승인과 기존 결제에 대한 취소를 모두 막는 조치를 시행했다. 티몬·위메프와 계약을 맺고 있는 PG사는 KCP, 토스페이먼츠, KG이니시스 등이 있다.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 사업자 역시 PG사와 같은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티몬과 위메프에서 고객이 숙박권, 항공권, 물품 등을 사는 건 물론 이미 물품을 신용카드로 구매한 소비자들이 환불을 원할 때 돌려받기 어렵게 됐다. 한 PG사 관계자는 “영세 업체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조치가) 내려지는 경우는 있지만 티몬과 위메프 같은 큰 회사들이 적용을 받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판매자 이탈과 고객의 취소·환불 사태가 맞물려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21년 모바일 결제 플랫폼 머지플러스는 모바일 상품권인 머지포인트 상품권을 발행가액보다 20%가량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다가 돌연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거나 사용처를 축소했다. 당시 고객과 판매사들은 1000억 원에 이르는 선불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번 사태도 머지포인트 사태와 마찬가지로 회사 측이 선불금 충전과 상품권 할인 판매로 이른바 ‘돌려막기’를 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티몬·위메프는 최근 선불충전금 ‘티몬 캐시’와 각종 상품권을 선주문 후사용 방식으로 할인가에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가령 티몬 캐시를 10% 할인했고, 해피머니상품권 5만 원권을 4만 6250원에, 컬쳐랜드상품권 5만 원권을 4만 6400원에 각각 판매했다. 배달앱 요기요 상품권도 7∼8% 할인 판매했다. 유통업계는 위메프·티몬이 현금 마련을 위해 티몬 캐시와 상품권을 적극적으로 할인 판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머지포인트 사태와 마찬가지로 정산 지연 사태 소식을 들은 소비자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사옥을 점거하면서 현장 환불을 요구했다. 위메프 측은 지금까지 2000여 명의 고객에 대해 환불 조치를 완료했으며, 티몬 측 역시 26일부터 현장 환불 접수를 받고 있다. 이날 티몬 신사옥에는 수천 명의 고객이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티몬과 위메프 입점 판매자들의 피해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부 판매자의 경우 미지급 정산금 규모가 많게는 수십억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SBS 보도에 따르면 한 티몬 입점 판매자는 “다 합쳐서 (미지급 정산금이) 21억 원이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 국내 쪽에는 가전이라든지 크게 하신 분은 50억 원씩 물린 분도 있다”고 말했다.
당장 여름 휴가철을 맞아 티몬이나 위메프에서 여행 상품 등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여름휴가 시즌과 맞물려 다른 소매업종에 비해 큰 대금이 오가는 여행업은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의 핵심으로 손꼽힌다. 더욱이 티몬은 전담조직까지 꾸려 ‘여행’을 핵심 상품으로 판매해왔다.
하나투어, 노랑풍선, 교원투어 등 주요 여행사들은 22일 티몬과 위메프에서의 여행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투어는 23일 티몬·위메프에 내용증명을 발송해 판매된 여행상품에 대해 25일까지 정산할 것을 요구했다. 하나투어는 이날까지 정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티몬·위메프와 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다. 모두투어와 노랑풍선, 교원투어 등도 23일 티몬·위메프에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정산 기한을 통보했다.
여행사들은 소비자들이 티몬·위메프에 대한 기존 결제 취소·환불 신청 후 자사에 재결제해야 출발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했다. 여행사가 티몬·위메프와 계약을 해지하면 기존에 판매된 해외여행 상품은 취소돼 소비자는 여행사에서 다시 예약해야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미정산 대금 규모의 경우 각 여행사에 문의한 결과 정확한 금액을 파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티몬·위메프 사태가 번지면서 여행사들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라며 “7∼8월 예약 상품을 모두 정산받지 못하면 여행사도 타격이 있으니 재결제를 유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는 “여행사 입장에서는 손실을 안고서라도 고객들의 여행을 출발시킬 건지, 일괄 취소를 해 손실을 줄이는 대신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인지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들은 손해를 피하기 위해 재결제를 유도해 판매대금을 직접 확보하는 반면 소비자들은 티몬·위메프을 통해 절차를 거쳐 환불받는 방식이어서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고스란히 떠안는 측면도 있다. 일부 소규모 여행사의 경우 아예 상품 인도를 거부하거나 재결제를 한 뒤 티몬과 위메프 측에 직접 결제 취소와 환불 등을 요구하라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더구나 현재로선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 전액 복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구영배식 ‘문어발 확장’이 원인?
티몬·위메프의 모회사 큐텐은 G마켓 창업자 구영배 대표와 이베이가 공동 벤처 형식으로 세운 회사다. 구 대표는 2010년 싱가포르에 설립한 지오시스 유한회사를 2012년 오픈마켓 큐텐으로 바꿨다. 이후 구 대표는 2022년 9월 티몬을 인수한 뒤 2023년 3월 인터파크쇼핑, 4월 위메프, 올해 2월 위시, 3월 AK몰을 사들였다. 티몬과 인터파크쇼핑, 위메프 인수에만 6000억 원가량을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위시 인수에는 2300억 원을, AK몰에는 5억 원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영배 대표가 잇달아 인수에 나서자 업계에서는 큐텐의 쇼핑몰 상품 배송을 위한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을 위한 ‘몸집 불리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문제는 인수한 업체들의 재무 상태와 수익성이 모두 좋지 않다는 점이다. 티몬은 이미 2017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있다. 2022년 재무제표 기준 유동자산은 약 1309억 원인데, 유동부채가 7193억 원에 이른다. 위메프의 2023년 말 기준 유동부채는 3098억 원으로 유동자산(617억 원)의 5배에 이른다. 업계에선 “자본력이 없는 큐텐그룹이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실적이 부진한 플랫폼을 무리하게 인수한 것이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큐텐그룹 계열사의 파트너사는 6만 개에 달하며, 티몬(437만 명)과 위메프(432만 명)의 월 이용자 수는 869만 명, 월간 거래액은 1조 원이 넘는다. 현재까지 판매자·소비자의 피해 규모는 정확하게 추산되지 않고 있다. 큐텐그룹 관계자는 “미지급된 정산대금이 얼마인지, 판매자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하기 어렵다”며 “소액 판매자에 대한 정산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며 규모가 큰 판매자에 대한 대금 정산을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권은 선정산대출(판매자가 은행에서 판매대금을 먼저 지급받고, 정산일에 은행이 이커머스로부터 정산금을 대신 받아 자동으로 상환하는 대출) 취급을 중단하고 있다. 이커머스는 통상 상품 판매 후 정산까지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자금이 필요한 판매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은행들이 선정산대출을 중단한 이유는 해당 쇼핑몰에서 정산금 지연사태로 대출 상환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은 전날부터 티몬과 위메프에 대한 선정산대출을 중단했다. SC제일은행도 티몬·위메프에 대한 선정산대출 취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부도 우려마저 제기된다. 만약 큐텐그룹 이커머스 계열사가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면 법원에서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남은 자산 등을 조사한 뒤 이를 처분해 채권자, 즉 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판매자 등에게 배분하는 과정을 밟을 전망이다.
구영배 대표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귀국해 해결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태 심각성이 커지면서 경영책임론에 휩싸인 구 대표가 ‘중대 결단’을 내리지 않겠냐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그룹 계열사 내 합병을 통한 사업구조 효율화, 고강도 구조조정 등이 거론된다.
큐텐그룹 측은 “정산 지연 사태를 빠르게 해결하고 새 정산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존 티몬과 위메프에서 대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판매자별 정산 일자에 맞춰 지급하는 형태에서, 안전한 제3의 금융기관에서 대금을 보관하다가 고객들의 구매 확정 이후 판매자들에게 지급하는 형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티몬과 위메프는 23일 새로운 정산 시스템 도입 소식을 밝히면서 “제3의 금융기관과 연계해 자금을 안전하게 거치하고 빠른 정산을 지원한다는 목표”라고 밝혔다.
큐텐 측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티몬과 위메프를 향한 소비자와 판매자의 신뢰도 하락은 향후 티몬과 위메프의 재기에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를 중단한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새로운 정산 시스템을 마련해 8월에 공개하겠다는 발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번에 밀린 정산이 이뤄진다 해도 당분간 다시 입점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티몬과 위메프의 위기는 탐욕적인 경영의 결과물로 결국 회생이 불가하다고 본다”면서 “큐텐은 지난 3년 동안 무리한 인수를 시도하며 발생된 레버리지를 고객의 돈으로 돌려막기 하다가 이 사태를 만들었다. 리테일 비즈니스 특성상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복원이 안 된다. 소비자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설사 구 대표 개인 돈으로 보상을 하더라도, 예전의 티몬과 위메프로 재기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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