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법적 요건 충족 시 개편 강행 가능성…관련 제도 손질 전에 유사 사례 늘어날 수도
지난 7월 11일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바꾸는 계획을 밝혔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두산로보틱스가 알짜 기업인 두산밥캣을 독차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돈도 거의 안 든다. 주가가 많이 오른 두산로보틱스가 주식을 발행해 두산밥캣 일반주주들이 가진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이다. 시장에서는 합병비율에서 두산로보틱스는 고평가, 두산밥캣은 저평가돼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만 유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적자에다 덩치가 한참 작은 두산로보틱스가 흑자에다 덩치가 훨씬 큰 두산밥캣을 삼키는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까지 문제가 제기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24일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간의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당국은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표시되지 않은 경우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하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관건은 논란의 중심인 합병비율의 수정 여부다.
현행법상 상장사 간 합병은 시가가 기준이다. 기준주가가 순자산 가치에 미달한다면 자산가치로도 할 수 있지만 두산밥캣의 주식교환 기준가격은 3월 말 기준 순자산 가치(주당 4만 6538원)를 웃돈다. 합병비율 수정은 불가능하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했지만 회사 입장에서 주주들의 득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정도에 그칠 듯하다.
관건은 주식 교환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매수청구권 신청 여부다. 2014년에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을 추진했으나 매수청구권이 대거 행사되면서 무산됐다. 매수청구권 가격은 두산로보틱스가 8만 472원, 두산밥캣이 5만 459원이다. 주식교환이 무효화되는 매수청구액 규모는 두 회사 각각 5000억 원, 1조 5000억 원이다. 7월 25일 종가는 두산로보틱스 7만 3400원, 두산밥캣 4만 4150원이다. 매수청구권으로 주식을 팔면 장외거래로 인정돼 양도소득세가 붙는다. 그럼에도 현재 주가 대비 매수청구권 가격이 9.6%, 14.3%나 높다.
5000억 원과 1조 5000억 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수청구권 행사가 대거 이뤄지면 두 회사 경영에 큰 부담이다. 1분기 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두산로보틱스가 3200억 원, 두산밥캣이 1조 3000억 원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적자기업이다. 두산밥캣도 2분기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이 났다. 수천억 원의 현금 유출은 재무구조에 치명적이다.
두산밥캣이 매수청구권으로 확보한 주식을 소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도 역설적으로 매수청구권 행사를 줄이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매수청구권에 두산밥캣의 현금을 유출하기보다는 두산로보틱스가 신주를 발행해 주식을 교환해주는 것이 재무적으로 유리하다. 다만 두산로보틱스 주주 입장에서는 유리한 비율로 주식교환이 진행되더라도 신주발행이 많이 될수록 유통 주식물량이 늘어나 보유 주식 가치가 희석될 수는 있다. 두산로보틱스 주가도 하락하는 이유다.
이번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안과 관련해 재계 한 관계자는 “법에 따라 기준을 세우고 합병 등을 통해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두산밥캣을 격상시켜 사업적인 기회를 도모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두산의 선의를 시장에선 달리 해석하는 듯하다”면서 “향후 유사한 논란이 불거지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된 제도 등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두산 사태로 이른바 기습 상폐 리스크가 다시 불거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 들어 공개매수를 통해 자발적 상폐 절차를 밟고있거나 마친 기업은 신성통상, 락앤락, 제이시스메디칼, 커넥트웨이브, 티엘아이, 대양제지, 쌍용씨앤이, 두산밥캣 등 8곳이다. 지난 2년간 자발적 상폐 혹은 이를 추진했던 상장사를 모두 합친 숫자에 맞먹는다.
정부가 증시 저평가 해소를 목적으로 주주 환원 강화를 주문하면서 대주주 입장에서는 회사의 부를 일반 주주와 나누기보다는 독점하려는 의지가 강해졌다. 주주 환원이 미미해 주가가 저평가된 상황에서 오히려 싼값에 일반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폐가 되면 회사의 부를 대주주가 독차지할 수 있다. 두산밥캣도 1분기 말 기준 이익잉여금만 3조 6000억 원에 달한다. 현재 지분률(46%)이면 1조 7000억 원 정도가 대주주 몫이지만 완전 자회사로 바꾸면 3조 6000억 원 모두를 독차지하게 된다. 심지어 현금 유출 없이 계열사 주식 발행으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경영권 매각이 목적인 사모펀드는 저평가된 값에 경영권을 거래하기보다는 비상장 상태가 거래조건을 정하기 유리하다. 최근 상폐 추진 사례의 대부분이 사모펀드와 관련돼 있다. 상폐 거래를 주관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도 공개매수 액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알짜 사업으로 꼽힌다.
최열희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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