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 도착했다. 우리 주차장 앞에 누군가가 차를 세워뒀다. 차량 앞에 비치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차량주 되시죠? 여긴 저희 주차장인데 지금 차량을 주차해야 하니 차량을 이동해야 하실 것 같습니다.”
불법주차한 상대방은 “지금 식사를 하는 중이니 빨리 식사를 마치고 차량을 이동해주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불법주차한 사람이 자신이 지금 식사중이니 자신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그래 식사중이라니 좀 참자’는 마음가짐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불법주차한 차량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다시 걸었다.
“아니 내가 참다 참다가 전화했는데 당신 너무 경우가 없는 것 아니냐? 불법주차한 것도 참았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
차를 옮겨달라고 전화한 지 거의 30여 분 만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나에게 ‘동네에서 너무 야박한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그러면서 나와의 통화 내용 녹음본을 크게 틀면서 내가 반말을 했다는 둥 거친 언사를 썼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불법주차가 아니라 반말과 거친 언사가 그와의 주요 분쟁거리가 된 것도 어이없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와의 통화를 다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화 촬영은 평소엔 100여 명의 스태프, 배우들이 함께 진행한다. 보조출연자들이 많은 날 현장엔 300명이 넘는 스태프, 배우들이 참여한다. 참여 스태프와 배우들이 많을 때 현장 진행비는 수천만 원을 상회한다. 장비가 많이 동원되는 날 촬영은 하루 촬영에만 억 단위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전체 촬영을 관장하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혹여나 촬영이 지연되면 그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1분 1초가 아주 피를 말리는 긴장의 연속이다.
예전엔 준비가 늦어지면 스태프들에게 “지금 뭐하느냐”면서 “빨리 빨리 준비하지 이러다가 해가 떨어지면 촬영 못한다”라는 식의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 일쑤였다.
물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스태프들에게 격려는 못할망정 거기에서 스태프들을 꾸짖고 다그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다. 그래도 전체를 관장하는 입장에서 스태프들을 독려하고 중요한 촬영인 만큼 더 긴장하자는 의미에서 그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떤 때는 꾸짖고 어떤 때는 독려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절대로 공개적으로 현장에서 담당자를 꾸짖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잘못한 담당자를 꾸짖는 것이 다른 스태프들에게 온전히 촬영되고 있었다는 얘기를 현장 프로듀서로부터 전해 들었다.
내가 촬영현장에서 준비를 소홀히 한 스태프를 꾸짖는 장면을 다른 스태프가 멀리서 다 촬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혹여나 전후 맥락을 다 제거한 채 한 장면만 SNS에 노출된다면 엄청난 예산과 수백 명의 노력이 다 결집된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본의 아니게 나쁜 작품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후 난 나의 모든 행동과 전화 통화 등을 더 조심하고 내가 어떤 언사를 행하기 전에 그 언행이 문제가 없는지 아니면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또 확인한다.
이제 우리의 모든 언행이 녹음되고 녹화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만 한다. 이러한 세태가 좋은지 안 좋은지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를 뒤흔드는 사건들도 대부분 녹취록, 녹화영상들을 근거로 벌어지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언행이 녹화되고 녹음될 수 있다. 난 이러한 사실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라는 걸 우리는 엄숙히 받아들여야 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체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