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미다의 잔혹한 범행
2011년 11월. 몸무게가 30㎏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비쩍 마르고 시퍼렇게 멍든 눈에 눈꺼풀에는 담뱃불로 지진 화상이 남아 있는 한 40대 여성이 돌연 오사카 경찰서에 나타났다. 그녀는 “스미다의 강압에 못 이겨 어머니를 간이헛간에 가둬놓고 죽였다”고 자백했다.
수사에 돌입한 경찰은 여성이 살던 집 근처 창고 안에서 드럼통에 든 60대 여성의 시신을 찾았다. 통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져 참담하게도 목뼈와 다리뼈가 죄다 부서진 이 시신은 살아생전 스미다와 친했던 오에(여·사망시 66세)란 사람이었다. 땅도 집도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빼앗겼다.
결국 스미다는 체포되었고 스미다의 행동대원 격인 스미다의 시누이, 사촌조카, 며느리도 함께 붙잡혔다. 스미다를 비롯하여 공범들은 오에 일가와 2011년 9월부터 약 두 달간 함께 살면서 오에의 두 딸과 사위가 오에를 폭행하게끔 한 후 오에가 죽자 시체를 드럼통에 유기했다.
자수한 딸은 감금과 끊임없는 살해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여동생 부부와 함께 어머니를 학대했다고 털어놨다. 스미다의 지시에 따라 어머니를 감금한 후 약간의 밥과 물만으로 연명시키면서 스미다한테 땅과 집을 넘기라고 강요했다는 것이다. 자수한 딸과 여동생 부부 역시 살인죄로 체포됐다. 경찰에 잡힌 스미다는 범행동기와 경위에 대해 일체 함구하며 묵비권을 행사했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오에를 죽인 게 다가 아니었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스미다가 죽인 이들의 시신이 연달아 발견되기 시작했다. 스미다의 명의로 된 한 주택에서는 3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공범들의 진술에 따라 경찰이 콘크리트가 두텁게 발라진 집 방바닥을 뜯어내 2m를 파내려가자 처절하기 그지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방부제와 방취제가 가득 뿌려져 썩다만 듯한 시신들이 나온 것이다. 마치 거대한 비누덩어리 같았다. 조사결과 시신 3구는 각각 스미다 며느리의 친언니 및 백부 이렇게 사돈 2명과 스미다의 오빠의 애인으로 판명됐다. 이들은 모두 10여 년 전 실종되었는데 사라지기 직전 친구를 찾아와 돈을 꿔갔다고 한다. 경찰은 2008~2009년경 살해되어 암매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10월 말에는 아마가사키 시 인근 항구 앞바다에서 시신이 든 드럼통이 인양됐다. 경찰이 잠수부를 동원해 일주일 남짓 바다 속을 뒤져 드럼통을 발견해 끌어올렸는데 통 속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50대 남성의 시신이 나왔다. 그나마 부패가 덜한 몸에는 심하게 맞은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죽은 남성은 스미다의 시누이 미에코(59)의 시동생 하시모토였다. 그는 1987년 실종된 어머니, 그리고 2005년 스미다와 미에코와 함께 섬에 놀러갔다가 의문의 실족사를 한 형에 이어 1년 전 실종된 바 있다. 스미다는 그간 하시모토의 형이 유산으로 남긴 아파트에서 시누이 미에코와 하시모토 형의 사망보험금 1억 엔(약 13억 원)을 챙겨 사치스럽게 생활해왔다. 주변에서는 하시모토가 오랜 기간 어머니의 실종과 갑작스런 형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어오다가 스미다 일당에게 살해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미다의 엽기적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시신 3구가 발굴된 스미다의 집은 원래 스미다의 전남편의 중학교 동창이 소유하던 집이다. 공무원으로 착실히 일하던 동창은 2002년 갑자기 실종되었는데 이후 어찌된 영문인지 스미다가 집을 차지했다고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동창의 연로한 어머니, 남동생 1명, 여동생 1명이 2003년~2007년 사이에 하나씩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이다. 이들 가족은 하나둘씩 실종되던 당시 스미다와 함께 살았다.
또한 스미다와 가깝게 지내던 친척 일가도 쑥대밭이 됐다. 일가의 할머니가 스미다의 큰어머니에 해당하는데 장남 부부(스미다의 사촌)가 199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스미다에게 거액의 돈을 갈취당했다. 그러던 중 1999년 이들 부부의 20대 아들이 스미다와 부모, 가족이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떨어져 의문사했다. 또 용접공이던 사촌형(할머니의 차남의 아들)은 1998년 주변에 “스미다의 주변에서 말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실종되고 말았다. 이후 장남 부부, 차남 부부 일가는 야반도주라도 하듯 몰래 스미다를 피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 10월 30일 효고현 경찰청이 바닷속에서 시신이 든 드럼통을 꺼내고 있다. TBS방송 캡처 |
스미다의 잔혹한 범행 동기는 대체 뭘까? 연쇄살인사건의 과정을 보면 다름 아닌 돈이 목적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일본경찰은 일본의 역대 가족살해 범죄 중 최다희생자를 낸 스미다의 여죄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어 아직껏 공식 수사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스미다는 40세가 되던 1987년 범행을 시작했는데 맨 처음 실종된 이가 스미다의 시누이 미에코의 시어머니다. 그 후 미에코의 전남편에게로 시어머니의 유산이 상속되었으며 이어 미에코의 전남편이 실족사를 하자 아파트는 스미다와 미에코 차지가 됐다. 스미다는 젊었을 적 술집을 경영했는데 술집서 같이 일하던 얼굴마담 미에코의 오빠와 결혼한 바 있다.
스미다는 1990년 초부터 친척 일가와 막역한 사이가 됐다. 장례식에서 큰어머니를 우연히 만난 후 사촌 일가와 어울리다가 사촌 일가 아파트에 들어가 살게 된 것. 같이 살면서 스미다는 사촌 부부에게 도자기나 옷을 들고 나타나 고액으로 강매하기도 하고 치매가 생긴 큰어머니를 꼬드겨 큰어머니 소유의 땅을 양도받기도 했다.
2003년부터는 전남편의 동창 일가와 친해졌다. 스미다는 이들 가족과 함께 살면서 늙은 동창 어머니의 연금을 챙겼으며 실종된 동창의 집도 자신 명의로 만들었다. 이 무렵 스미다는 자신의 사촌조카를 보디가드로 삼았는데, 스미다는 거구인 사촌조카를 주변에 “전 야쿠자 조직원”이라 소개했다 한다.
이때부터 스미다는 자신의 사촌조카를 비롯해 건장한 20~30대 청년 대여섯 명을 항상 대동하고 다녔다. 경찰조사에서 스미다는 이들을 자기 아파트에 머물게 하면서 오에 일가를 폭행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근 식당가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스미다가 언제나 어깨가 딱 벌어진 청년들과 사이좋게 밥을 먹는 모습이 목격됐다. 식당주인들은 인상이 험악하고 난폭한 청년들이 싫어서 이들이 식사하러 오면 ‘돼지군단이 왔다’고 흉을 봤다고 한다.
▲ 10월 14일 시체 3구가 나온 주택과 내부. 경찰은 콘크리트 방바닥을 뜯어내고 시체를 발굴했다. 사진출처=산케이신문 |
2003년 여름께 (동창의) 여동생은 남편, 두 딸(당시 10대 후반)과 함께 스미다 집에서 살게 됐다. 그런데 연말 즈음에 이 여동생 부부는 스미다의 집을 나와 도망을 가서 자취를 감췄다(여동생은 이후 의문의 객사를 했다). 스미다는 앞서 사촌 일가에게 했던 방식과 비슷하게 이 여동생 부부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스미다에게 남겨진 이 여동생 부부의 두 딸. 그중 큰딸이 스미다 소유의 집 방바닥에 묻힌 시신 3구 중 하나다. 작은딸은 2007년 스미다의 아들과 결혼했다. 스미다는 작은딸을 무척 아껴 며느리로 삼고 “꽃”이라 부르며 “내 후계자”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큰딸과 함께 살해 유기된 백부는 조카들을 구하러 갔다가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미다의 교묘하고 잔인한 범행수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극명한 사례는 오에 살인사건이다. 스미다는 2009년 전철역에서 역무원과 다툼을 벌이다 화해하고 난 후 금세 친해졌는데 이 역무원이 바로 드럼통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오에의 사위다. 이후 스미다는 오에 일가족 모두와 친해지면서 가족을 이간질시켰다. 오에의 사위한테는 “역무원을 그만두고 카페를 차리라”고 꼬드기면서도 그 아내인 오에의 작은딸에게는 “사업하려고 정신 못 차리는 남편과 헤어져라”고 충고했다.
그러다 결국 작은딸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자 스미다는 오에에게 “집안이 시끄러우니 손자손녀를 우리집에 일단 맡겨라”고 호의를 베푸는 척했다. 아이들이 스미다의 집에 가자 걱정이 된 작은딸 부부, 큰딸, 오에 이렇게 일가족은 모두 스미다 집에 이사하게 됐다. 이내 스미다의 마수가 뻗쳤다. 어느 날 스미다는 아파트 현관문 열쇠를 밖에서만 잠그고 열 수 있게끔 바꿨다. 오에 일가가 자유로이 출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끝내 오에의 두 딸과 사위는 학대와 폭행, 살인의 공범이 됐다.
한 범죄학자는 <주간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스미다가 돈을 목적으로 타인의 가정에 끼어들어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하여 종국에는 연쇄살인까지 마다않게 됐다”며 “스미다는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라 지적했다.
# 여왕벌 스미다, 대체 누구?
▲ 중학생 시절 스미다 미요코 |
<주간포스트>에서는 스미다의 친오빠에 대해 다뤘는데 친오빠는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는 ‘그리코 사건’에서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리코 사건은 1984년 일본의 대형제과업체 그리코의 사장을 납치한 범인들이 거액을 요구하면서 제품에 청산가리를 넣겠다고 협박한 사건으로 영구미제로 남았다.
<주간문춘>에 따르면 스미다의 아버지는 미장이, 어머니는 게이샤(일본 전통의 기녀)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유흥과 주색에 빠져 재산을 잃으면서 어머니와 극도로 냉랭해졌고 가정에는 애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스미다는 조숙하고 냉정한 성격이 되어갔다.
초등학교 때 스미다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행여 주변에서 괴롭히려고 하면 “아버지가 야쿠자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때리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또래를 때려 소년원에 가기도 했다. 여러 번 그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 스미다가 손을 쓸 수 없는 말썽장이가 됐다. 학교 선생님들조차 학기 초 스미다가 들어간 반을 맡지 않으려 몸을 사렸다고 한다.
고교 담임은 스미다의 고교 시절 일화를 털어놓았다. 등교가 매번 늦어 때렸더니 스미다가 정색을 하며 “부모님은 한 번도 날 때리지 않았다”라며 “잘못을 깨닫게 해줘 고맙다”고 몹시 감사해하더란 것이었다.
스미다의 성장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20대 전후의 일이다. 19세 때 스미다는 16세 소녀에게 성매매를 시켜 체포된 전력이 있다. 서너 해가 지나고 스미다는 젊은 나이에 술집을 차렸다. 항간에는 스미다가 술집을 경영하며 성매매 업주를 했단 소문도 떠돌고 있다.
스미다는 세 번 결혼을 했는데 첫 번째 남편은 불륜을 하다가 들켜 한겨울에 속옷만 입은 채로 집에서 쫓겨났다. 스미다는 이후 그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두 번째 남편은 공범인 시누이 미에코의 오빠다.
미에코 남매는 외모가 매우 뛰어났다. 스미다는 두 번째 결혼에서 잘생긴 아들을 얻자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스미다는 아들을 탤런트로 키우겠다며 학교도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손녀를 매우 끔찍이 여겨 어린 손녀에게 샤넬 옷을 입히고 손녀가 금붕어가 귀엽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금붕어를 600마리나 사서 선물했다고 한다.
끔찍한 연쇄살인을 하며 얻은 돈으로 스미다는 어떤 생활을 했을까? 스미다와 미에코는 각기 아우디, 벤츠를 끌고 다녔다. 오에 일가를 감금한 아파트에는 2억 엔(약 26억 원)에 달하는 귀금속, 도자기뿐만 아니라 호화스런 가구, 그릇이 즐비했다. 심지어 고급 맥주 제조기도 놓여 있었다.
또 스미다는 짬짬이 자신의 ‘돼지군단’을 이끌고 일본 전국 각지의 파친코를 순례하는 여행을 다녔다. 인기 높은 파친코에 가서 도박을 즐긴 것이다. 스미다는 파친코에 입장객이 많으면 오빠의 애인(시신 3구 중 하나)을 줄서 있게끔 했다. 그동안 스미다는 돼지군단과 지방 명물 요리를 먹는 등 식도락을 즐겼다.
같이 흥청망청 놀긴 했지만 스미다 일당 내 서열은 엄격했다. 돼지군단 및 며느리, 시누이 등 스미다 일당 중 스미다의 말을 되받아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우스운 농담을 주고받더라도 스미다한테는 격의 없는 반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주간포스트>는 “스미다는 여왕벌이었다”고 쓰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