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 셀러부터 제조업체까지 줄도산 우려…“이커머스 업계 1·2위만 반사이익, 나머진 죽을 수도”
#무너지는 '구'의 신화
지난 7월 30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큐텐 자금추적 과정에서 불법 흔적이 확인됐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전담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고, 법무부는 경찰 요청에 따라 구영배 큐텐 대표 등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피해 업체들과 소비자들은 집단 소송에 돌입했다. 피해자들은 7월 29일 구영배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 셀러·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을 대리하는 심준섭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형사 같은 경우 추가 고소·고발인단 명단을 8월 2일에 제출할 계획”이라며 “민사의 경우 집행권원(채무자의 재산을 강제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권리의 원천)을 확보해 기업회생 과정에서 발언권을 얻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셀러들을 모집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지급명령신청서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티몬과 위메프가 대금을 제때 지급하기 어렵다는 점이나 환불이 어렵다는 점을 알면서도 판매를 지속했다면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입점업체에 줘야 할 판매대금을 사업 확장 과정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면 횡령·배임 혐의가 성립할 가능성도 있다.
미정산 사태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또 다른 문제는 위시 인수자금이 티몬과 위메프에서 동원됐다는 점이다. 큐텐은 올해 2월 13일 미국 나스닥 상장사 콘텍스트로직이 운영하는 글로벌 쇼핑 플랫폼 ‘위시(Wish)’를 1억 7300만 달러(2300억 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7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열린 긴급 현안질의에서 구영배 대표가 위시 인수대금에 셀러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이 활용됐다고 인정했다. 구 대표는 인수자금으로 쓴 판매대금은 한 달 내 바로 상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김성수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위시 인수자금에 자회사들 자금을 전용한 건은 횡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칙적으로 회사마다 따로 보관을 했어야 할 돈을 개인이 금고처럼 이리 저리 빼서 쓰고 전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긴급 현안질의 과정에서 티몬·위메프에 재무조직이 없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별도의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는 법인들이었음에도 실질적으로 모회사인 큐텐에서 자회사들의 재무를 통제한 셈이다. 김성수 변호사는 “아무리 계열사여도 별도의 법인인데 이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법인격 부인이나 법인격을 남용한 사례에 해당하고 이게 사실이라면 티몬·위메프의 모든 채권과 채무를 큐텐에 다 지워야 한다”며 “구 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5600억 유동성 지원 효과도 회의적
지난 7월 29일 구영배 큐텐 대표가 사재 출연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힌 지 8시간 만에 티몬과 위메프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기업회생은 빚을 갚지 못해 파산 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채무 상환 기간을 유예받고 법원의 관리 감독 하에 영업을 보전하는 제도다. 법원이 기업회생을 결정하면 모든 채무 상환이 중단되고 빚이 70~80%가량 탕감되기 때문에 판매자들이 거래 대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만약 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티몬과 위메프가 파산하면 거래 대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지는 점은 마찬가지다.
큐텐 계열사 입점 셀러들의 피해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준섭 변호사는 “채권이 일부 남더라도 정산금 지급에 시차가 생기면서 그 사이에 셀러들부터 제조업체까지 줄도산할 우려가 있다”라며 “10억 원 단위까지 정산금을 지급받지 못한 업체들도 있다. 이들도 하청업체로부터 납품받은 제품의 대금을 지급해야 하고 직원들 인건비도 챙겨줘야 하는데 정산이 중단되면서 경영에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7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열린 긴급 현안질의에서 류광진 티몬 대표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5월 지연 정산 규모만 각각 2081개사에 1384억 원, 659개사에 88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6~7월 미정산분을 업체 측에서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금융감독원이 정밀조사 중이다. 이복현 금감위원장에 따르면 피해 규모가 최대 1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어 사태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구영배 대표는 최대 동원 가능한 자금이 800억 원 수준이라며 밝혔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큐텐 지분은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큐텐은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이번 사태로 기업가치가 폭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종수 한국유통연구원 교수는 “큐텐 지분이 이미 휴지조각이 돼 전혀 의미가 없다. 남은 것은 물류센터 자산 등이 있을 텐데 조 단위 누적적자가 나고 있어서 이것도 사실 의미가 없다”라며 “다만 구영배 대표 본인이 만약 의지가 있었으면 사재를 먼저 최대한 출연하고 기업회생을 가장 마지막에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채무를 탕감받고 일부 채무는 채권자에게 주식을 발행하는 등 출자전환하면서 계속 영업을 지속해 풀어나가려고 하는 의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7월 30일 대금 정산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총 5600억 원 이상의 유동성을 즉시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 보면 국가 경제가 뒤흔들릴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태다. 정부가 긴급히 조치에 나섰지만 일부 경영 자금을 지원해주고 은행 상환을 유예해주는 정도이기 때문에 타격을 피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다른 이커머스 업체에도 불이 옮겨붙고 있다. 큐텐의 또 다른 계열사인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도 정산 지연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인터파크커머스는 7월 30일 판매자 공지를 통해 “인터파크 쇼핑, 인터파크 도서, AK몰은 최근 발생한 티몬, 위메프 판매 대금 미정산 영향으로 판매 정산금을 수령하지 못했다”면서 “일부 간편결제(PG)사의 결제 대금 지급 보류 영향으로 판매 대금 정산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가 최대 관심사다. 마종수 교수는 “시장 자체가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양극단으로 쏠리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에 네이버나 쿠팡처럼 신뢰도가 높은 1·2위 사업자의 경우만 반사이익을 얻고 나머지는 다 타격을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김익성 동덕여대 평생교육원장 또한 “쿠팡·네이버의 양강 구도가 완전히 굳어져 있는 곳에 중국발 이커머스가 초저가 시장을 형성하며 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애매한 포지션에 있던 업체들이 무너진 것”이라며 “한시바삐 차별적인 특화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면 결국 신뢰를 잃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연쇄적으로 도산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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