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반효진 최연소·100호 금메달 기록…김우민 12년 만에 수영 메달 획득
수영에선 경영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한 김우민(23·강원도청)이 동메달을 따 12년 만에 이 종목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김우민 이전에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2008 베이징 대회(자유형 400m 금메달·200m 은메달)와 2012년 런던 대회(자유형 400m·200m 은메달)의 박태환이 유일했다.
#최연소로 100호 금메달, 사격 반효진
이번 올림픽 최고 스타로 떠오른 반효진은 사격을 시작한 지 3년밖에 안 된 '천재 사수'다. 중학교 2학년 때 함께 태권도장을 다니던 친구의 권유로 사격부 입단 테스트를 치르면서 처음 총을 잡아봤다.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잘 쏴서" 곧바로 사격에 흥미를 느끼고 방향을 틀었다. 어린 시절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던 터라 어머니 이정선 씨는 사격 선수가 되겠다는 딸을 뜯어말렸다. 그래도 딸은 뜻을 굽히지 않더니, 처음으로 나간 대구광역시장배 사격대회에서 1등을 하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결국 딸을 앉혀놓고 약속을 받았다. "기왕 사격 선수가 될 거면, 앞으로 국가대표도 되고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도 따 와라. 그래야 허락할 수 있어." 딸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게 2021년 7월이었다. 이정선 씨는 "정말 반대하려고 '그냥' 해본 말이었다. 내가 말하면서도 현실이 될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다"며 "올림픽 금메달의 꿈이 너무 빨리 이뤄져서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인데 정말 내 딸이 맞나 싶다"라며 울먹였다.
본격적으로 사격을 시작한 반효진은 똑똑한 두뇌와 집중력, 운동신경을 더해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친구들보다 늦게 사격을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10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각오로 훈련을 거듭했다. 해마다 몰라보게 기량이 성장했고, 지난해부터는 국제대회에서도 입상하면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어 지난 3월 "경험이나 쌓아보자"는 마음으로 출전한 파리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전체 1위를 올라 파란을 일으켰다. 반효진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후회 없이'라는 좌우명을 마음에 품고 있다. 평소 성격도 '쿨'한 편이라는 게 주변의 귀띔이다. 침착하면서도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성격이라 사격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다.
파리올림픽 결선은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는 명승부였다. 결선에 오른 8명의 선수가 먼저 10발씩 쏘고, 이후 두 발씩 총을 쏘면서 중간 합계 점수가 가장 낮은 선수가 한 명씩 탈락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반효진은 초반부터 황위팅(중국)과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다. 중반 한때 2위로 밀려났지만, 13번째 격발에서 만점인 10.9점을 쏴 1위를 달리던 황위팅을 0.5점 차로 추격했다. 이어 16번째 격발에서 다시 10.9점을 쏘면서 마침내 황위팅을 0.1점 차로 제쳤다.
그러나 금메달이 눈앞에 다가온 경기 막판에 흔들렸다. 23번째와 24번째 격발에서 차례로 9.9점과 9.6점을 쏘면서 황위팅에게 251.8점으로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마지막 연장 슛오프에서 10.4점에 적중해 10.3점을 쏜 황위팅을 극적으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구의 집에서 큰딸과 함께 TV를 보던 어머니는 그 순간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일 때문에 집 밖에 있던 아버지 반재호 씨도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뻐했다. 이정선 씨는 "정말 '설마 설마' 했다. 잘하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데 벌써 금메달까지 딸까' 싶었다. 내 딸이 진짜 금메달을 땄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결선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총을 쐈던 반효진은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에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내 감정이 벅차올랐는지 묵묵히 장비를 정리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경기 후 "마지막 두 발이 그렇게 크게 빗나갈 줄 몰라서 당황했다. 2위로 미끄러진 줄 알았다"며 "그 순간 그래도 슛오프가 있어서 '하늘이 내게 금메달을 딸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한 발을 더 소중히 생각했다"며 "심호흡을 한 뒤 항상 쏘듯이 똑같이 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또 "경기 당일 아침에 운세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아마 나의 결선날 운세 내용을 보면 모두 소름이 돋으실 것"이라면서 "운세를 보자마자 '나의 날이구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모두가 나를 인정하게 될 날'이라고 쓰여 있어서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나섰다"며 활짝 웃었다.
반효진의 금메달은 한국이 하계올림픽에서 따낸 통산 100번째 금메달이기도 했다. 1948년 런던 대회를 통해 올림픽 무대에 데뷔한 한국은 레슬링의 양정모가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자유형 62㎏급에서 우승하면서 역사적인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어 3년 전 열린 도쿄올림픽까지 총 96개의 금메달을 쌓아올렸다. 이번 대회가 개막한 뒤엔 펜싱 사브르 남자 개인전의 오상욱이 97호, 사격 공기권총 여자 10m의 오예진이 98호, 양궁 여자 단체전의 전훈영·임시현·남수현이 99호 금메달을 차례로 따냈다. 이어 고교생 반효진이 당당히 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 오르면서 금메달 100개를 채웠다. 반효진은 "내가 통산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인지는 몰랐다. 끝나고 들었는데 너무 영광스럽고 기뻤다"며 감격했다.
반효진의 값진 금메달은 심지어 한국 사격계의 숙원 해결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반효진의 슛오프 금메달 장면을 지켜본 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 기회에 대구 사격장도 시설을 보완해 세계대회를 유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대구사격장은 2008년 개장했지만, 시설의 한계 탓에 대규모 종합 대회를 치르기엔 역부족이었다. 10m 결선 사격장만 존재할 뿐, 화약을 사용해야 하는 25m와 50m 결선 사격장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국제대회를 치르려면 산탄총 사대가 최소 5개는 돼야 하는데, 현재 대구사격장은 4개의 사대를 갖추고 있다. 사격계는 홍 시장이 직접 국제대회 유치와 대구사격장 개·보수를 언급한 만큼, 이번에는 실제로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효진은 파리로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내가 금메달을 따주겠다"는 당찬 약속을 남겼다. 어머니는 대견하게 웃으면서도 내심 '후회 없이 네 기량만 펼치고 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빌었다. 그런데 딸이 진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파리에 머물던 딸은 경기 며칠 전 '힘들다'는 투정 대신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는 모바일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는 "효진이가 돌아오면 일단 '수고했다, 장하다'며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효진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듬뿍 넣어서 정말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주고 싶다"고 했다.
#12년 만의 메달리스트, 수영 김우민
김우민은 막판 스퍼트 순간을 떠올리며 "사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유독 끝나지 않을 듯 멀게만 느껴지던 마지막 50m. '올림픽 메달을 위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되뇌며 이를 악문 스물셋 청년은 마침내 3분42초50의 좋은 기록으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전광판에는 1위 루카스 마르텐스(독일·3분41초78)와 2위 일라이자 위닝턴(호주·3분42초21)에 이어 '3'이라는 숫자 옆에 김우민의 이름이 새겨졌다. 7월 28일 경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선에서 한국 수영에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김우민은 "터치패드를 찍고 관중석을 봤더니 태극기를 든 분들이 환호하고 계셨다. 그때 '아, 내가 메달을 땄구나' 알아차렸다"면서 "지난 3년간 고생하면서 준비한 시간이 동메달로 돌아온 것 같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던 장면이 떠오른다"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김우민은 부산 중리초등학교 5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수영 엘리트반을 지도하던 하성훈 현 응봉초 교사가 "취미로만 수영할 게 아니라 대회에 한 번 나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처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건 아니다. 부산체중 2학년 때까지 배영이 주 종목이었는데 번번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다 중3 때 자유형이라는 '천직'을 만났다. 특히 '마린 보이' 박태환의 주 종목이었던 자유형 중장거리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 출전한 1500m에서 전국 대회 4위를 했고, 400m에 집중하면서 기량이 급성장했다. 고교 땐 자신의 종목에서 국내 정상의 선수가 됐다. '황선우'라는 천재의 등장에 환호하던 한국 수영이 서서히 '김우민'이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가대표가 된 김우민의 터닝포인트는 호주에서 찾아왔다. 대한수영연맹은 2022년 4월 황선우와 김우민을 포함한 자유형 대표선수 4명을 호주 멜버른으로 보냈다. 호주의 전설적인 수영 지도자 이언 포프 코치의 지도 아래 6주간 특별 훈련을 받게 했다. 김우민은 그 직후 출전한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기존 개인 기록을 3초 가까이 단축한 3분45초64로 세계 6위에 올랐다. 수영 관계자들은 물론 김우민 자신도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기록이 줄어들 줄은 몰랐다"며 깜짝 놀랐을 정도다.
지난해 2월엔 호주 브리즈번에서 호주 경영 대표팀 지도자 출신인 리처드 스칼스 코치와 손잡았다. 스칼스 코치는 이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위닝턴을 키운 스승인데 특히 김우민의 잠재력을 눈여겨 봤다. "개인 최고 기록 경신에 만족하지 말고 아시아 신기록에 도전하라"고 격려했다. 김우민은 그해 7월 열린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3분43초92까지 기록을 단축하면서 세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선수 중 이 종목 세계선수권 결선에 오른 선수는 김우민이 유일했다. 이미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확인한 그는 지난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독주에 가까운 레이스를 펼치면서 3분44초3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우민은 이후 목표를 올림픽 시상대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1월 5일부터 2월 3일까지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주 6일간 매일 12시간씩 체력 훈련을 병행하면서 주당 60km를 헤엄치는 '지옥 훈련'을 소화하고 돌아왔다. 수영 대표팀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체력왕' 김우민도 혀를 내두를 만한 강도였다. 호주 경영 국가대표를 여럿 배출한 베테랑 지도자 마리클 펄페리 코치가 한국 선수들의 훈련을 전담했다.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는 "김우민이 펄페리 코치와 호흡도 잘 맞고, 훈련의 내용과 강도에도 크게 만족스러워했다"고 귀띔했다.
그 성과는 눈부셨다. 김우민은 '올림픽 전초전'이었던 지난 2월 도하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3분42초71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 깜짝 우승했다. 한국 선수의 세계수영선수권 금메달은 2011년 상하이 대회의 박태환 이후 13년 만이었다.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때 기록을 2년 사이 무려 3초 가까이 앞당기면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호주도 이때부터 '세계선수권 우승자' 김우민의 상승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호주 수영의 자랑인 위닝턴과 사무엘 쇼트가 파리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다툴 거라 여겼는데, 올림픽 직전 김우민이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호주수영연맹이 느닷없이 '4월 16일부터 8주간 외국인 선수의 호주 전지훈련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한국 대표팀은 예정했던 추가 훈련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정훈 수영대표팀 총감독은 "쇼트와 위닝턴을 위협하는 김우민의 체력과 상승세를 집중 견제한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결국 김우민은 훈련 일정을 4월 1일부터 15일까지로 대폭 축소해 부랴부랴 호주로 출국했고, 황선우 등 다른 선수들은 아예 호주 훈련을 포기했다. 호주는 심지어 자국 올림픽 대표팀 코치들에게 "올림픽 전까지 외국인 선수를 지도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다. 펄페리 코치의 지도 방식을 좋아했던 김우민에게는 아쉬운 결과였다. 심지어 펄페리 코치는 파리 현장에서 만난 한국 취재진에게 "호주에서도 한국에 있는 코치를 통해 김우민이 발전하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봤다. 위닝턴과 쇼트뿐 아니라 김우민도 충분히 메달권에 들 수 있다"고 덕담했다가 호주수영연맹의 징계를 받을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김우민은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수영을 했다. 400m 예선을 7위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한 차례 고비를 넘긴 뒤 결선에서 심기일전했다. 레이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힘을 쏟아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호주의 쇼트를 4위로 밀어내고 동메달을 지켜냈다. 활짝 웃는 그의 목에는 "이걸 차면 없던 힘도 생긴다"던 '가족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그는 시상식이 끝난 뒤 끝내 눈물을 터트리면서 "시상대 위에서 울컥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잘 참았다. 힘들 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두 살 어린 후배 황선우를 거듭 '멘토'로 꼽으면서 "선우 덕에 한국 수영이 한 단계 발전했고, 선우를 보면서 나도 자극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우민과 함께 한국 수영 사상 첫 동반 메달 획득을 기대했던 황선우는 자유형 200m 준결선을 9위로 마쳐 상위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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