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온 국민 사이에서 “연진아” 신드롬을 일으켰던 배우 임지연(34)이 이번에는 누아르 스릴러 영화 '리볼버'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802/1722567455256206.jpg)
임지연의 알을 깨어낸 영화 ‘리볼버’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수영(전도연 분)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누아르+스릴러’ 영화다. 극중 임지연은 모두에게 잊혀 절망의 구렁텅이를 목전에 둔 수영에게 홀연히 나타난 ‘정마담’ 윤선 역을 맡아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경계를 특유의 텐션으로 넘나든다.
윤선은 남자들만의 세계로 치우치기 쉬운 누아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임과 동시에 수영과의 묘한 ‘워맨스’를 그리며 서사와 스크린을 모두 장악해 가는 독특한 캐릭터다. 그에 대해 임지연은 이 영화의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오승욱 감독의 전작 ‘무뢰한’(2015) 속 전도연이 맡았던 캐릭터 김혜경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무뢰한’보다 좀 더 톡톡 튀는 김혜경의 모습이 윤선이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윤선이는 정말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여자거든요. 남자도 많이 만나보고, 돈도 뜯고, 이용도 하고 배신도 하는 그런 것들이 익숙한 여자죠. 그렇게 수영도 뜯어먹을 게 있을 것 같아서 만났는데 이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쿨하고 멋있어서 반한 거예요(웃음). 나와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수영을 보면서 윤선은 습관처럼 배신하려다가도 저도 모르게 응원하고,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여요.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묘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죠.”
!['리볼버'에서 임지연은 '정마담' 윤선을 맡아 배우 전도연과 '워맨스'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802/1722567505066327.jpg)
“선배님들 사이에서 제가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어요. 그렇게 욕심은 많았는데 잔뜩 쫄아서 ‘저 어떻게 해야 해요’하고 하소연했는데 김종수 선배님이 제게 ‘네가 술만 마시면 그냥 윤선이야’ 그러시는 거예요(웃음). 제가 술자리에서 선배님들과 잘 어울리고, 먼저 다가가고 하이 톤으로 애교부리고 그러거든요. 선배님이 ‘윤선이의 모습이 너 술 마실 때랑 똑같으니까 해봐. 못할 것 같지? 일단 그냥 해봐’라고 하시는데 그때 딱 깨닫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그냥 해보지 뭐!’ 이런 느낌이 오더라고요.”
시종일관 “쫄았다”는 말을 하지만 스크린에서 임지연이 보여준 윤선은 전도연의 수영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누아르라는 장르에서 색채가 다른 두 여성 캐릭터가 보여준 이 농도 짙은 케미스트리는 ‘리볼버’를 향한 호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만큼 현장에서 이 둘의 실제 케미스트리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예종 재학 당시 ‘한예종 전도연’을 자칭하고 다녔던 임지연과 그의 영원한 우상이자 ‘여왕’이었던 전도연의 현실 호흡은 어땠을까.
“워낙 대단하신 선배님이니까 저 혼자 쫄아서 ‘나 연기도 못하고 혼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렇게 현장에 갔는데 전도연 선배님이 촬영 들어가기 전 제 눈을 빤히 바라보시는 거예요. 그 모습이 그냥 하수영이었어요. ‘정윤선, 너 왜 왔냐’라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시는데 그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더라고요. 선배로서 후배에게 ‘너 잘해라’하는 게 아니라 ‘너 정윤선이지? 나 하수영이야’라며 인물로서 전달하는 기운을 받은 거죠. 저도 언젠가 후배에게 그런 기운을 주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제가 안 그래도 시사회 뒤풀이에서 선배님께 이 이야기를 했는데요, 전혀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 ‘내가 언제 그랬어!’라고(웃음).”
![영화 '리볼버'를 통해 처음으로 감각에만 맡긴 본능적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임지연은 "알을 깨고 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사진=영화 '리볼버' 스틸컷](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802/1722567637934384.jpg)
“저는 아직도 재능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무서워요. 선배님들처럼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로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감각적인 배우가 아니라고 스스로 여기거든요. 그래서 혼자서 애쓰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캐릭터를 분석해 왔는데 문득 이번엔 처음으로 용기내서 ‘나도 한 번 감각적으로 움직여보자’란 결심을 하게 됐어요. 많이 생각하지 않고 감각에 맡겨서, 본능적으로 움직인 건 정말 이번 현장이 처음이었죠. 제게도 첫 경험이다 보니 스스로도 재미있다고 느끼면서도 솔직하게 저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더라고요(웃음). 제 자격지심을 깨고 ‘그냥 날 한 번 믿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입었던 거니까요.”
자신을 둘러싼 알의 껍데기를 깨고 다음 세상으로 한걸음을 내딛은 임지연은 그간 종종 전작의 그림자에 부딪쳐야 할 때가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속 그가 맡았던 박연진이 여전히 대중들의 머릿속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은 변신을 거듭해 나가야 할 그에게 있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리볼버’ 속 윤선도 언뜻 보기에 “박연진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만큼 임지연에게서 박연진은 떼어놓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가 돼 버린 건 아닐까. 이런 우려에 대해 임지연은 “어떤 캐릭터든 박연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갈 자신이 있다”며 웃어보였다.
“연진이도 윤선이처럼 겉치장을 하고 화려한 사람이라 그런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자신 있었어요. 둘은 전혀 다른 인물이니까요. 관객 분들이 영화를 직접 보신다면 그 둘을 다르게 느끼실 거예요. 아무래도 ‘더 글로리’가 워낙 잘된 작품이고, 저도 연진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보니 다음 작품에서도 연진이처럼 보일 것이라는 말씀들을 하세요. 하지만 전 (다르게 보일)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굳이 ‘나는 연진이를 깰 거야, 사람들이 나를 연진이로 안 봤으면 좋겠어’ 이런 식으론 하진 않을 거예요. 그럴 생각도 없고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