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 김홍걸 상속세 납부 위해 매각…새미래, 민주당 무관심 규탄…민주당, 뒤늦게 “해결책 찾겠다”
대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7월 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교동 사저를 매각했다. 토지와 주택을 포함한 거래 가액은 100억 원이었다. 인수자는 커피프랜차이즈 업체 대표인 박 아무개 등 3명이다. 김 전 의원은 형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상의 없이 매각했다고 전해진다.
2020년 동교동 사저를 둘러싸고 형제 간 유산 분쟁이 벌어진 바 있다. 고 이희호 여사는 2017년 2월 생전에 동교동 사저에 대해서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한다. 만약 지자체 및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보상금의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며, 나머지 3분의 2는 김홍일·홍업·홍걸에게 균등하게 나눈다"고 유언했다.
그런데 김홍걸 전 의원은 유언장 공증 절차 누락 등을 문제 제기하며 이희호 여사의 유일한 친자로 민법상 상속인인 자신만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홍업 이사장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 조치에 나섰다. 이후 고인의 유지를 받들기로 합의해 분쟁이 일단락됐지만, 김 전 의원이 합의를 어기고 동교동 사저를 매각한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연합뉴스에 “거액의 상속세 문제로 세무서의 독촉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지난해 매각을 결정했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라며 “DJ 기념관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목포와 수도권 한 곳에 유품 전시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홍걸 전 의원은 동교동 사저 매각으로 상속세를 제외한 약 83억 원을 손에 쥐게 됐다. 2023년 7월 김 전 의원은 2억 6000만 원 규모의 암호화폐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동교동 사저 상속세 17억 원을 충당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신정권 시절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금된 것에 대해서 지급된 형사보상금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져 도덕적 지탄을 받았다.
김홍걸 전 의원이 상속세 부담으로 불가피하게 동교동 사저를 매각했다는 것에 대해선 물음표가 찍힌다. 2020년 총선 당시 다주택자인 김홍걸 전 의원은 실거주 외 주택을 매각하겠다고 서약서를 작성했다. 약속대로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래미안개포루체하임을 매각했다면 상속세를 내기에 충분했다. 당시 이 아파트 시세는 18억 2500만 원에 달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해당 아파트를 매각하지 않고 차남에게 증여하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현재도 김홍걸 전 의원은 부동산 자산 유동화를 통해 상속세를 마련하기에 여력이 충분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의원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112.93㎡(가액 36억 4600만 원)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대지 128.00㎡, 건물 263.80㎡(13억 5107만 원) 등을 배우자 명의 부동산 재산으로 2022년 말 신고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6월 29일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50억 원에 거래됐다.
8월 7일 서정욱 변호사는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김홍걸 전 의원이 상속세를 못 낸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역사에도 죄를 짓고 부모님한테도 죄를 짓는다고 본다”며 “제가 보기에 (동교동 사저는) 국가기록물이다. 이런 건 국가에서 제대로 보상을 주고 수용해서 대통령 기념관으로 (보존해야 한다). 이게 역사다. 우리 DJ가 그래도 우리나라에 기여한 게 얼마인데, 이런 역사의 현장을 이렇게 카페로 판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8월 6일 이낙연 전 총리도 SNS에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박정희 정권의 암살 위협과 시도, 전두환 정권의 가택연금과 사형선고를 견디며 끝내 이기신 역사의 현장”이라며 “사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 매각이 사적인 일이 된다는 발상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하며 김홍걸 전 의원을 직격했다.
야권에선 동교동 사저 매각을 둘러싸고 ‘DJ 적통’ 경쟁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8월 5일 전병헌 새로운미래 대표는 동교동 사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홍걸 전 의원과 민주당을 모두 비판했다. 전 대표는 민주당을 향해서 “사저 매각 보도가 나간 지 일주일이 되도록 어떤 논평도 반응도 없이 침묵하고 이재명 전 대표를 ‘아바이 수령’으로 만들기에만 골몰한다”며 “김대중·노무현 정신 지우기에 나섰다는 의구심을 갖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8월 5일 김두관 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이제라도 당이 나서 매각을 백지화해야 하고, ‘DJ 사저를 역사 문화 기념공간으로 만들자”며 “DJ의 큰 유산을 받은 당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감탄고토’로 비칠 것이다. 대표 후보는 물론 최고위원 후보들의 관심을 촉구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8월 7일 광주전남 김대중재단(재단)은 “김대중 정신과 업적을 계승하겠다는 민주당의 대응은 참으로 개탄스럽다”며 “탄생 100주년이자 서거 15주기를 맞이하는 8월 18일에 전당대회를 잡은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다. 동교동 사저 매각과 관련해서도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히며 민주당을 지적했다.
민주당은 논란이 지속되자 해결책 모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새로운미래가 동교동 사저 매각을 두고 ‘민주당의 DJ 지우기 만행’이라고 공격하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8월 6일 김민석 민주당 의원 SNS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동교동 사저 문제를 보고받고 “매각 연유가 어찌됐든 김대중 대통령의 유업을 이어야 할 주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풀어나갈 방법을 찾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김민석 의원은 “사저 매각이 알려진 다음 날 권노갑 재단 이사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배기선 재단 사무총총장, 박지원 정동영 추미애 의원과 나를 포함한 긴급모임이 있었다”라며 “사저를 인수해 기념관으로 보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재단 측의 경과 설명을 듣고 깊은 논의를 나눴다. 김대중 대통령 사저는 역사적 유적이므로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들이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동교동 사저를 문화역사 공공 공간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8월 7일 정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 겸 비상경제 점검회의에서 “동교동 사저 앞 큰 도로가 있고 이 사이에 507.9㎡ 공간을 국비와 서울시비를 투입해 이미 평화공원 공공의 공간으로 조성한 바 있다”며 “사저도 국비와 서울시비, 필요하면 마포구비까지 투입해 이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만들어 문화 유산화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1년 동교동 사저에 입주해 미국 체류 기간을 제외하고 1995년까지 지냈다. 동교동 자택에는 ‘이희호’ ‘김대중’ 문패가 나란히 달려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여사에게 보이는 존경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란 얘기가 있다.
동교동 사저는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지도자 시절 야당 정치인부터 재야인사들이 드나들며 민주화 운동을 논의하던 곳이다. 1971년에는 사제폭발물이 투척됐고, 1973년에는 도쿄 납치사건이 벌어졌다. 1978년 긴급조치로 사저에서 가택연금을 당하기까지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동교동 사저에서 55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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