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스·히트텍 대히트 진화 거듭, AI 활용 스피드 경영 나서 “후계자, 아들 아닌 사내서 발탁할 것”
#“누군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유니클로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의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1949년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부친이 경영하던 낡은 신사복점 오고리상사를 물려받았다. 청년 야나이는 신사복 시장의 한계를 간파하고 이런저런 개선책을 내놓았으나 오랜 시간 일해온 직원들에게 ‘변화’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6명 정도였던 직원은 1명만 남고 모두 퇴사하는 위기를 겪게 된다. 야나이 회장은 “혼자서 구매, 총무, 회계까지 맡으면서 사업을 배워 나갔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다.
장사에 재미를 붙인 야나이는 신사복에서 캐주얼로 관심을 돌린다. 전환기는 1984년 찾아왔다. 히로시마시 뒷골목에 오픈한 저가형 캐주얼 의류점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가 대박을 터뜨린 것. 훗날의 유니클로 1호점이다. 가게는 그야말로 독특한 콘셉트로 가득했다. 매장은 창고 같았고, 접객을 줄인 셀프서비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점원들은 자기 일만 할 뿐 매장을 찾는 손님에게 말을 걸거나 물건을 사라고 종용하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고객은 자유롭게 매장을 돌아다니며 옷을 골랐다. 개장 초부터 구름떼처럼 손님이 몰려들자 야나이는 “금광맥을 찾았다”며 직원들과 기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야나이는 이 노다지를 바꾸는 결단을 내린다. 계기는 홍콩에서 발견한 한 장의 폴로 셔츠였다. ‘어떻게 이토록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을까’라고 의문이 생긴 야나이는 의류회사 사장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그때 들은 얘기는 “임금이 싼 봉제 공장에 생산을 위탁하는 방법”이었다. 미국 의류업체 갭(GAP)이 앞서 도입한 것으로 이른바 ‘제조소매업(SPA)’이라 불리는 경영 형태다.
‘누군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나이는 타 업체가 제조한 옷을 쌓아놓고 파는 창고형 매장에서 탈피해 자사가 옷을 디자인하고 협력 공장에 생산을 의뢰하는 쪽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SPA 브랜드 유니클로가 닻을 올렸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달아라”
여기까지의 궤적은 지방 강소기업의 성장 스토리일 뿐이다. 유니클로가 일본 패션업계의 중심지인 도쿄에 진출한 것은 1998년. 무려 14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만에 해외 진출을 이뤄낸다. 2001년 영국, 2002년에는 중국, 2005년에는 롯데와의 합작으로 한국에도 출점했다. 그 배경에는 야나이 회장의 굳은 결의가 있었다고 한다.
1991년 야나이는 회사명을 ‘오고리상사’에서 ‘패스트리테일링’로 변경했다. 또한 “유니클로의 매장을 매년 30개씩 늘리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훗날 야나이 회장은 “당시 유니클로가 크게 성장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되돌아봤다. 높은 목표가 없는 한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1991년 야나이는 비로소 장대한 목표를 설정했다. ‘세계 1위 의류회사를 만들겠다’는 야심이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장기불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해였다.
세부적으로는 ‘1997년 일본을 대표하는 의류기업이 된다’라는 중간 목표를 정했고 그 기세를 몰아 ‘세계로 뻗어 나간다’라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공정표를 착실히 실행에 옮김으로써 유니클로는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때마침 유니클로를 전국구 브랜드로 만들어준 히트 상품도 등장했다. 1998년 판매를 시작한 ‘후리스(fleece)’다. 후리스는 가볍고 따뜻한 보온 능력을 보여줘 출시된 해에만 200만 장이 팔렸고, 3년 동안 2600만 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달성했다. 뒤를 이어 2003년 출시한 보온내의 ‘히트텍’도 글로벌 브랜드로 가는 일등공신이 됐다.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스포츠웨어 전문점 ‘스포쿠로’와 젊은층 엄마를 타깃으로 한 ‘파미크로’라는 매장을 오픈했다가 6개월 만에 폐업했다. 2002년에는 유기농 식품과 야채 사업을 시작했으나 1년 반 만에 손실을 입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래도 발 빠른 철수로 손실을 최소화했다.
야나이 회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경영자가 연전연승 했다면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거나 성공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뜻이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 유일한 자랑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들한테 회사 물려줄 생각 없어”
유니클로는 10년 단위로 매출 수익이 3배씩 성장하는 기염을 토해왔다. 2003년에는 3000억 엔, 2013년에는 1조 엔을 돌파했다. 일찌감치 2020년 매출 목표를 3조 엔으로 잡았으나 제동이 걸린다. 그동안 유니클로는 반년에서 1년 전 디자인을 결정해 소재를 조달, 해외 계약공장에서 싼 임금으로 봉제해 직영점포에서 파는 시스템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2015년 갑자기 닥친 따뜻한 겨울에 대응하지 못해 매출이 10%나 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에 야나이 회장은 또 한 번 진화를 예고했다. 2017년 그는 도쿄 아리아케에 지상 6층 규모의 신사옥 ‘유니클로 시티 도쿄’를 공개하면서 “유니클로를 SPA에서 ‘정보제조소매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전자태그나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기술을 활용해 지금까지 1년이 걸리던 옷의 기획, 생산, 판매까지의 시간을 2주일 내로 대폭 단축하는 스피드 경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넓게는 ‘만든 상품을 파는’ 기업에서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상품화하는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이미 구글과의 제휴를 통해 수요예측 체계도 개발했다.
현재 유니클로는 일본 국내에 약 800개 매장, 해외에는 20개 이상 나라·지역에 1600개가 넘는 매장이 있다. 매상고는 2024년 8월기(2023년 9월 1일~2024년 8월 31일) 처음으로 3조 엔(약 28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야나이 회장은 “지금부터가 성장기다. 장기적으로는 10조 엔 달성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며 의욕을 보였다. 아사히신문은 “그 도전의 첫 번째 과제가 ‘포스트 야나이 체제’의 구축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나이 회장은 현재 75세로 자신의 후계자를 “사내에서 발탁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반면 “두 아들에게는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두 아들은) 주주로서 관리 역할을 하고, 능력 있는 리더그룹을 선발해 그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된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
마라톤 성행위 강요까지…힙합 거물 ‘퍼프 대디’ 충격적인 두 얼굴
온라인 기사 ( 2024.09.28 13:33 )
-
“양측 모두에 파멸” 중동 화약고 이란-이스라엘 전면전 시나리오
온라인 기사 ( 2024.10.04 18:29 )
-
“한류 꺾일 기미 안 보여” 한강 노벨문학상 계기로 세계 언론 K문화 재조명
온라인 기사 ( 2024.10.17 1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