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홀로 흥행 이어가…북미 박스오피스 1위 ‘트위스터스’ 상대로 한국 영화들 어떤 성적 보일지 관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가에 극심한 불황이 찾아오면서 한국 영화계는 그나마 극장가에 인파가 몰리는 여름 성수기 공략을 유일한 기회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7말8초’라 불리는 여름 휴가철 극성수기에 블록버스터급 텐트폴 한국 영화가 대거 개봉하는 상황이 지난 몇 년 동안 반복됐다. 그 결과는 공멸이었다. 대박은커녕 누적 관객 수가 50만 명, 100만 명에 그치는 흥행 참패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올여름 극장가에선 한국 영화의 순차적인 개봉이 눈길을 끈다. 6월 21일 개봉한 ‘하이재킹’과 6월 26일 개봉한 ‘핸섬가이즈’를 시작으로 7월 3일에는 ‘탈주’, 12일에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개봉했다.
176만 관객을 동원한 ‘핸섬가이즈’와 250만 관객을 동원한 ‘탈주’가 손익분기점을 넘겼지만 누적관객 수 177만 명을 기록한 ‘하이재킹’은 제작비 규모가 커 손익분기점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과거 여름 극장가에 비하면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68만 명의 관객에 그치며 흥행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이렇게 분산 개봉되다 보니 ‘7말8초’에 해당되는 극성수기에 개봉하는 대작 한국 영화는 7월 31일 개봉한 ‘파일럿’과 8월 7일 개봉한 ‘리볼버’가 유이했다. ‘7말8초’에 개봉이 집중돼 공멸했던 지난 몇 년 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7월 24일 개봉한 마블의 ‘데드풀과 울버린’ 때문이다. 요즘에는 마블 영화의 흥행세가 급감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그러니까 2019년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전까지는 그 위세가 어마어마했다. 마블 대작이 개봉하는 시점을 피해 개봉일을 잡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졌을 정도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마블이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 준비한 야심작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엑스맨 유니버스가 편입된 이후 첫 작품이기도 하다. 기존 ‘데드풀’ 시리즈는 20세기 폭스에서 제작했는데 이제는 20세기 폭스도 디즈니의 일원이 되면서 마블과 한 식구가 됐다. 그렇게 20세기 폭스의 엑스맨 유니버스까지 영역을 확대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영화라 더욱 기대감이 컸다.
이런 막강한 마블의 ‘데드풀과 울버린’이 7월 24일로 개봉일을 확정하자 한국 영화계에선 7말8초 기피현상이 나왔다. 아무리 과거 같지 않은 마블이라지만, 수백억 원을 투자한 영화의 개봉 일정을 확정하는 과정에선 꺼진 불도 다시 보게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7말8초 겹치기 개봉을 자제하는 것’이라는 전략까지 마련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 성수기 막바지인 광복절 특수를 노릴 수 있는 8월 14일로 한국 영화 대작이 몰리고 말았다. 이날 ‘행복의 나라’와 ‘빅토리’가 동시에 개봉한다. 여름 극장가에서 한 주 간격으로 연이어 대작 한국 영화가 개봉해 출혈 경쟁을 하던 상황이 이번에는 한 주 간격도 아닌 같은 날 개봉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뚜껑을 열고 보니 이번에도 마블은 살아나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8월 7일까지 누적 관객 수가 174만 9707명에 불과하다. 반면 일주일 늦게 개봉한 ‘파일럿’은 7일까지 217만 851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올여름 최고 흥행작이 됐다. 마블과 정면 승부를 선택한 게 오히려 흥행 원동력이 됐다. 이미 ‘파일럿’이 극장가 우세종이 되면서 평일에도 10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장기화를 위한 포석을 마련했다.
현재까지 올여름 극장가 최대 흥행작은 조금 빠른 6월 12일 개봉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로 860만 845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한 지 두 달여가 다 돼가는데도 여전히 일일 박스오피스 4~6위를 기록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막 200만 명을 넘긴 ‘파일럿’이 ‘인사이드 아웃2’를 따라잡아 올여름 최대 흥행작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인사이드 아웃2’의 개봉 일주일 성적이 235만 3244명이었음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흥행 추이는 ‘파일럿’도 비슷하다. 다만 ‘파일럿’은 쟁쟁한 경쟁작들이 연이어 개봉한다는 걸림돌이 있다.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이 출연한 기대작 ‘리볼버’는 ‘파일럿’을 넘어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개봉일인 7일 5만 6086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치며 같은 날 개봉한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5만 7440명)에도 밀리고 말았다. 반면 ‘파일럿’은 이날 13만 1324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세를 이어갔고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날 2만 598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쳐 곧 VOD 시장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8월 14일 개봉하는 ‘행복의 나라’와 ‘빅토리’도 ‘파일럿’의 장기 흥행을 막아설 경쟁자로 보인다. ‘행복의 나라’와 ‘빅토리’는 ‘데드풀과 울버린’과는 3주, ‘파일럿’과는 2주의 차이를 두고 개봉해 ‘데드풀과 울버린’과 ‘파일럿’의 흥행세가 어느 정도 잠잠해질 시점을 겨냥했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 경쟁자와 조우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숨은 복병은 할리우드 영화 ‘트위스터스’다. 7월 19일 미국에서 개봉한 ‘트위스터스’는 개봉 첫 주 북미에서 8125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는데 이는 역대 재난 영화 첫 주 최고 흥행 기록이다. 게다가 ‘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 국내 관객들의 호감도가 높다. 결과적으로 ‘데드풀과 울버린’을 피하려다 더 강력한 복병 ‘트위스터스’와 같은 날 개봉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트위스터스’라는 막강한 토네이도를 상대로 ‘파일럿’을 비롯한 한국 영화들이 어떤 흥행 성적을 기록할지 영화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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