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투사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몸 바쳐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어렵게 일군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위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는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바탕을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한 동교동 현장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곳이 그렇게 된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후손들에게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르칠 수 있을까. 감히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희호 여사가 세상을 떠나며 김대중 이희호 기념관으로 만들어 달라고 유언했다는데, 상속을 받은 김홍걸 전 의원이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매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속과 상속세,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집이 부동산이 된 대한민국에서 이것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인가. 중산층만 돼도 상속은 더 이상 간단하지 않다. 상속을 놓고 형제와 자매가, 부모와 자식이 아귀다툼하는 풍경은 이제 우리 근처에서 일상이 되었다. 그런 풍경에 익숙한 우리이고 보면 속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김 전 의원을 구석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겠다. 그러나….
‘김대중’과 ‘이희호’, 얼마나 큰 이름인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키운 거목이고 보면 그 큰 나무 아래서 태어나 자란 아들들이 자기 모습대로 성장하기 얼마나 버거웠을까. 짐작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대로(大路)를 걸으려 했던 아버지를 이해한다면, 그 곁에서 온갖 고통을 다 당하는 중에도 심지를 잃지 않고 곁을 지킨 어머니를 보아왔다면!
적어도 공론에 붙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상속된 재산의 9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할머니가 남긴 유산을 제대로 쓰기 위해 50인을 선정해 위원회를 꾸린 오스트리아 귀족 여인 마를렌 엥겔호른처럼.
이해하려면 왜 이해를 못하겠는가. 어머니의 뜻에 반해 그런 선택을 해야 했던 아들의 행태를. 얼마나 생각이 많았겠는가. 그러나 그 결정으로 그는 이미 그 무겁고 버거운 집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님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다. 어쩌겠는가. 그릇대로 살아야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죽어서도 죽지 마시라 당부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분명 죽어서도 죽지 않는 정신을 알고 있는 정신이었다. 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그 집이 마침내 스스로 공론장으로 걸어 나온 것 같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축인 ‘나’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한 명제를 성취하기 위해 애쓴 동교동이라는 상징을, 어찌하겠느냐고.
부모와 자식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는 것일까. 그 복잡한 인연줄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못해 불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잘났든 못났든 부모는 뿌리라는 것이다. 잎이 시들거든 뿌리를 살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내 속의 어머니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하는 인생은 아무리 부나 명예나 권력이 충족되어도 자족하지 못한다.
음력 7월 보름은 백중이다. 불교에서는 백중날 조상의 영혼을 구하는 의례를 한다.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본 목련존자가 그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행한 의식에서 비롯된 행사라 하지만 핵심은 내 속의 어머니, 내 속의 아버지와의 경험을 소화하고 화해하는 의식이 아닐까. 올해는 마침 그날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5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날 아들 3형제가 함께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들이 남긴 형제자매가 내 인생에서 무엇이었는지 성찰하며 새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잘 지내며 평화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잎이 시들 때 뿌리를 살피는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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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