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페이로 결제 일원화, 판매자에 수수료 3.5% 부과…고객 반발 속 ‘회피 꼼수’ 등장, 회원 이탈 가능성
#‘안전결제’ 의무화, 파격 조치 나온 배경
번개장터는 지난 8월 1일부터 플랫폼 내 결제 방식을 안전결제 시스템인 ‘번개페이’로 일원화했다. 번개장터의 안전결제는 제3의 금융기관이 결제대금을 보관하고 거래완료 후 판매자에게 정산되는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 기반의 시스템이다. 번개장터는 2018년 번개페이를 론칭해 고객들에게 하나의 결제 옵션으로 제공해왔는데 앞으로는 번개페이를 제외한 거래방식은 모두 금지된다. 이 과정에서 판매자에게 판매대금의 3.5%가 수수료로 부과된다.
이번 조치로 번개장터의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2016년에 첫 흑자를 냈던 번개장터는 2019년부터는 적자로 돌아섰다.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348억 원과 216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꾸준히 늘던 거래 건수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2000만 건을 돌파했지만 수익성 회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모든 거래에 수수료를 부과할 경우 상당한 수익이 예상된다. 2019년 약 1조 원이던 번개장터 거래액 규모는 2020년 1조 3000억 원, 2021년 2조 500억 원에 이어 2022년과 2023년에는 2조 5000억 원을 기록했다. 단순히 지난해 거래액을 기준으로 봐도 수수료 3.5%를 일괄 부여할 경우 875억 원 규모의 매출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뢰성이 항상 약점이었던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업계 최초로 안전결제 시스템을 전면 도입한 것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김익성 동덕여대 평생교육원장은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해 매우 필요한 조치다. 소비자 편의성을 증대시키고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계해주는 플랫폼으로서 알아서 거래가 이뤄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책임있는 조치다. 구매자가 사려고 한 상품을 정확히 인도받았는지, 인도받은 상품은 판매자가 게시한 정보와 일치하는지를 다 확인하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플랫폼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고거래 과세에 대한 두려움
정산이 늦어지는 것도 모자라 수수료까지 물게 된 판매자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번개장터에 상품을 올렸다고 밝힌 한 판매자는 “갑자기 거래 방식을 강요하는 게 말이 되냐, 수수료를 왜 부과하냐고 문의를 남기면 수수료를 고려해서 가격을 책정하라는 답변이 온다”며 “결국 장터에 게시된 상품 가격은 다 오를 수밖에 없고 가격이 오르면 수수료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에 번개장터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번개장터는 현재 안전결제 회피를 강경하게 단속하고 있다. 다른 번개장터 판매자는 “계좌번호를 보내거나 다른 결제 링크를 보내려고 하면 아예 메시지가 안 간다. 안전결제를 회피해 상품을 거래한 이후에는 올려놨던 모든 판매글을 강제 삭제당했다”라며 “번개장터를 탈퇴하고 중고나라로 건너갈 생각이다. 중고나라가 제일 규모가 크고 수수료도 안 떼는데 굳이 여기서 버틸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꼼수도 등장하고 있다. 사진에 계좌를 적어서 상품 사진이랑 섞어서 보낸다거나 ‘0123456’ 등 숫자를 ‘가나다라마바사’ 등으로 치환해 규제에 걸리지 않게 계좌를 적어 보낸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수수료가 없다가 처음 생겼는데 곧바로 정률제로 수수료를 매기니 불만이 안 생길 수가 없다. 특히 번개장터는 객단가가 높은 것이 특징인데 고가 상품을 거래하는 판매자들이 안전결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고거래 과세에 대한 두려움도 안전결제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계좌거래 등 다른 비대면 거래와 달리 안전결제를 통한 거래는 누락 없이 소득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올해 5월에는 ‘작년에 중고거래를 했는데 종합소득세를 내라는 안내문을 받았다’는 글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원래 중고거래는 사인 간 거래라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지만 전문 판매자들이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세청이 올해부터 사업자로 추정되는 가입자에게 종합소득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과세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 불안 요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더라도 온라인 거래 플랫폼을 본인이 연 가게처럼 이용하시는 분들은 사업자로 본다. 세법 규정상 구체적인 건수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계속적, 반복적 판매로 이익을 창출하는 분들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라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10만 원 이상 거래가 이뤄진다거나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안전장치를 걸면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처럼 융통성이 없으면 이탈 고객이 늘어날 수 있다”며 “불황인 데다 배달의민족이 수수료율을 올린 게 사회 문제가 되고 있고 티메프 사태로 이커머스에 대한 눈길도 곱지 않은 타이밍이라 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의 진짜유통연구소 소장 또한 “번개장터가 강점을 가진 카테고리가 명확한데 일괄적으로 다 수수료를 매기면 개인 간 거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중고거래를 굳이 수수료까지 내면서 할 것인지를 고객들이 생각하게 될 것”이라면서 “한정판 중고거래 플랫폼인 크림도 상당한 수수료를 매겨서 거래한다. 번개장터가 특정 카테고리에서 크림 만한 포지션을 노릴 수 있을지를 잘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번개장터 관계자는 “모든 구매자와 판매자가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더 나아가 중고 거래 시장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긴 시간 다양한 통로로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히 숙고한 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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