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커배는 중국이 개최하는 세계바둑대회로, 2018년 천부배 세계바둑오픈 이후 5년 만에 창설된 메이저 대회다. 지난해 열린 초대 대회는 본선 32강전으로 치러졌으나 올해부터 규모를 키워 본선을 48강으로 확대했다.
신진서는 지난 6월 열린 란커배 준결승에서 중국랭킹 2위 딩하오 9단을 상대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2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신진서는 이번 대회 본선에서 자오천위 9단, 장타오 8단, 양딩신 9단에 이어 딩하오 9단까지 ‘죽의 장막’을 걷어내며 결승까지 올랐다. 반면 구쯔하오는 8강에서 한국 박정환 9단, 준결승에서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을 따돌리고 대회 2연패에 도전한다.
상대 전적에서는 신진서가 최근 4연승 포함, 11승 6패로 앞선다. 앞서 신진서가 구쯔하오에게 지난해 역전패의 아픔을 돌려줘야 할 빚이 있다고 했지만, 구쯔하오 역시 신진서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 LG배 본선 8강에서 패했고, 연초 열렸던 농심 신라면배 최종국에선 중국 주장으로 출전했지만 신진서를 막지 못해 한국에 4년 연속 우승컵을 넘겨준 쓰라린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문제는 신진서의 최근 컨디션이다. 2월 열린 농심배에서 우승을 결정지을 때만 하더라도 좋았지만, 최근 신진서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3월 열린 춘란배에선 16강전에서 중국 양카이원 9단에게 패했고, 5월의 LG배 16강전에서는 복병 한상조 6단과의 형제대결에서 덜미를 잡혔다.
가장 아픈 패배는 7월의 응씨배에서 나왔다. 2연패를 노렸던 응씨배 첫 판에서 자신보다 네 살 어린 중국 왕싱하오 9단에게 저격당하며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슬럼프는 길어져서 5일 끝난 제10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결승에서도 대만의 언더독 라이쥔푸 8단에게 유리한 바둑을 마지막에 반집 역전패 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바둑을 TV 및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한 프로 기사들은 ‘신공지능’이라 불릴 정도로 정밀한 수읽기를 자랑하는 신진서가 마지막에 실족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승전을 지켜본 한 선배 기사는 “신진서 9단이 바둑이 여의치 않거나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힘으로 윽박지르려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것이 승리로 연결되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결과가 안 좋게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본인도 그런 부분을 잘 알고 있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바둑이 안 풀릴 때는 예전 이창호 9단처럼 참고 기다리면서 바둑을 길게 볼 것”을 주문했다.
한편으로는 이번 란커배 결승전이 슬럼프 탈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놓친 바둑은 놓친 바둑이고 구쯔하오와의 결승전을 잘 치러 우승컵을 가져온다면 하반기 국제대회는 편하게 치를 수 있다는 것. 과연 란커배가 신진서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제2회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의 우승 상금은 180만 위안(약 3억 4000만 원), 준우승 상금은 60만 위안(약 1억 1000만 원)이다. 경기 룰은 덤 7집 반이며, 제한 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로 진행된다.
[승부처 돋보기] 제10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결승전
흑 라이쥔푸 8단(대만) 백 신진서 9단(한국) 296수 끝, 흑 반집승
[장면도] 패착, 백1
100수 언저리에서 리드를 잡은 신진서가 줄곧 3~4집 앞서나다가 야금야금 따라잡힌 장면. 흑이 ▲로 끊어잡은 시점에서 AI는 백의 반집 우세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한 신진서의 백1이 패착이 됐다. 라이쥔푸가 흑4부터 8까지 시간을 충분히 번 다음 10으로 막아서는 흑의 반집 역전승이 결정됐다.
[정해도] 감각적인 끝내기가 패인
백은 1이 최선이었다. 다음 흑2부터 5까지가 외길 코스. 이 그림은 흑에게 4를 허용해도 다음 흑A로 단수치는 수가 남아 있어 백이 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승부처에서 끝내기를 너무 감각적으로 한 것이 패인”이라는 박정상 9단의 해설이 있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