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W는 회사채와 일정기간 후 ‘행사가액’으로 발행회사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결합된 복합 금융상품이다. 주가조작 세력들은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린 뒤 리픽싱(전환가액 조정)을 통해 전환가격을 낮추고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주식수를 늘린 후, 주가를 다시 올려 신주인수권 행사로 주식으로 전환해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거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분석에 따르면 권오수 전 회장 등은 이러한 방법으로 2011년 12월부터 2017년 사이 110억 원(공시기준 60억 원)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산은 공적자금이 활용됐다. 도이치모터스는 2011년 12월 250억 원 규모 BW를 발행했는데, 이를 산은이 인수했다. 산은은 발행 다음날 바로 총 신주인수권의 60% 수준인 150억 원 규모를 권오수 전 회장에 헐값으로 되판다. 남은 100억 원 규모 신주인수권도 2013년 2월 도이치모터스의 주요 주주 이승근 씨에게 매각했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재판 항소이유서에 이승근 씨를 권오수 전 회장과 ‘경제적 공동체’라고 적시했다.
정치권과 금융권 일각에서는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산은의 주요 목적은 신성장동력 산업 육성과 기업·산업의 해외 진출, 사회기반시설 확충 및 지역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관리함으로써 금융산업 및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애초에 도이치모터스가 산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부호가 붙는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도이치모터스는 외제차 수입·판매업체다. 국민경제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한다고 산은이 250억 원을 투자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특히 대출 적합성을 심사하고 대출 이후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고 있었는지도 도마에 올랐다. 이건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KDB산업은행의 ‘여신승인신청서’를 보면 도이치모터스는 BW 발행 목적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지상 4층 규모의 자동차 AS센터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런데 ‘소요자금 및 조달계획’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는 AS센터 건립 관련해 토지구입·건축공사·기계장비·기타운영 등 총 300억 원이 필요하다 책정했다. 이를 산은의 대출로 250억 원을 조달하고, 자기자금을 50억 원 투자해 마련하겠다고 계획했다. 총 소요자금 중 83.3%를 산은 대출금으로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권오수 전 회장은 BW 발행을 통해 확보한 250억 원을 AS센터 건설에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도이치모터스는 2017년에 가서야 성수동에 현재의 사옥을 신축하면서 AS센터도 함께 만들었다. 이때는 이미 도이치모터스가 산업은행에 대한 BW 250억 원을 상환한 이후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판 과정에서도 BW 발행이 AS센터 건설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2022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에서 진행된 1심의 권오수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증인신문에서 나온 문답이다.
검사 “증인(권오수 전 회장)이 원하던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해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이라는 방법으로 받으려고 했나요.”이어 주가조작 2차 주포인 김 아무개 씨도 BW 발행을 결정하는 과정에 AS센터 건설은 염두에 없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2022년 4월 1일 공판에서 나온 검찰과 김 씨의 증인신문 문답이다.
권오수 “그것은 아닙니다.”
검사 “그럼 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나요.”
권오수 “저는 증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산업은행에서 해준다고 하기에 그것을 받아가지고, (중략) 도이치파이낸셜 설립하는 데 썼습니다.”
(중략)
검사 “그건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돈이 필요 없는데 받아서 돈이 남아돌아서 파이낸셜을 설립했다는 취지로 얘기하시는데 그런 취지로 말씀하시는 것 맞나요.”
권오수 “처음에는 파이낸셜 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검사 “BW를 발행할 때도 주가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이를 종합하면 BW 발행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투자금 확보 목적이 아니라, 주가를 부양하고 추후 신주로 전환해 매매차익을 얻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김 씨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룰이 있는 건 아니고요. 다만 당시 투자자문사도 아니고 산업은행이라는 데서 코스닥 회사에 BW를 몇 백억을 투자할 때는 그 회사의 대외적인 신임도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 신임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가문제도 없지 않아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검사 “그래서 증인이 그런 방향(BW 발행)을 제안해서 결정이 된 건가요.”
김 씨 “제가 BW 하자고 제안한 건 아니지만 OOOO 투자 들어온다 그랬다가 실패하고, XXXXX 투자 들어온다고 실패하고. (중략) 새로운 신규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돌려서 한번 해보자’ ‘그럴 것 같으면 제가 할게요’ 그래서 주변에 제 업무가 그거니까 투자자들 모집했고, 그중에 산업은행이 걸렸던 겁니다.”
결국 산은은 공적 자금이 대출심사 받을 때 밝힌 목적에 맞게 ‘자금 용도’와 ‘자금의 적정 규모’ 등이 사용됐는지 관리·감독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BW 발행 과정과 신주 전환 과정 전반을 조사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건희 여사의 경우 2012년 11월 13일 1억 원을 들여 권오수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신주인수권 51만 464주를 주당 195.9원에 매입했다. 권 전 회장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사들인 가격 278원보다 낮은 가격이다. 이후 2013년 6월 27일 김 여사는 타이코사모펀드에 43만 6793주를 주당 358원, 총 1억 5637만 원에 되판다. 7개월 만에 5637만 원의 시세차익을 낸 셈이다.
이외에 신주로 전환된 300만 주 가까운 주식은 누가, 얼마에 팔았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부실 관리 지적에 산은 관계자는 “도이치모터스 문제는 사모사채를 인수한 것이다. 이에 신용으로 취급했다”고 답했다. 대출을 신청할 때 기업이 밝힌 사용 용도에 맞게 관리·감독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이어 ‘외제차 수입·판매업체에 250억 원을 투자한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당시 산업은행은 사모사채에 투자한 회사가 여러 업종에 굉장히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건태 의원은 “여신승인신청서를 보면 대출금이 AS센터 신축하는 자금이라고 명백히 기재돼 있다. 그럼 이 자금은 다른데 써서는 안 된다”며 “그런데 권오수 전 회장은 이 자금을 받아서 AS센터를 설립하지 않은 여러 증거들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250억 원 대출했다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호재성 요인이 된다. 주가부양의 목적에 활용된 것”이라며 “산업은행에 용도를 속여 대출 받은 게 명백하다. 이는 대법원 판례에서 용도 사기·대출 사기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