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가담 시 얼굴·신분증 노출 영상 찍어…‘먹튀’ 땐 가족 집에 마약 배송 뒤 경찰에 신고해 보복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채 주민등록증을 손에 들고 이렇게 말한다. 최근 검거된 마약 조직원이 촬영한 영상으로 소위 말하는 ‘충성맹세’다. 태국과 베트남 마약 조직과 연계돼 마약을 국내로 들여오고 유통한 조직은 총책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음에도 이런 방식으로 국내 조직원들에 대한 확실한 장악력을 확보하고 마약 범죄를 이어왔다.
지난해 9월 경찰은 “지인이 필로폰을 투약한다”는 신고를 받고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이제 마약 오염국이 된 대한민국에선 흔한 신고다. 그때마다 경찰은 총력을 다해 수사에 매진한다. 우선 신고 내용을 확인해 필로폰 투약자를 검거하고 투약자가 마약을 건네받은 경로를 역추적해 마약 유통 조직까지 수사망을 확대한다. 요즘에는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 체류 중인 마약 총책이 국내 유통망을 통해 던지기 수법 등 다양한 루트로 마약을 유통한다. 해외에 체류 중인 총책까지는 검거가 어려울지라도 관련 국내 유통 조직과 밀수책들을 대거 검거하는 것이 경찰의 1차 수사 목표다.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8월 13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A 씨 등 86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34명을 구속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7월까지 집중 수사를 펼친 성과다. 검거된 인원 86명 가운데 우선 매수·투약사범이 52명으로, 이 가운데 10명이 구속됐다. 나머지 34명은 태국과 베트남 마약 조직과 연계돼 마약을 국내로 들여오고 유통한 조직원들이다. 국내 유통망 판매사범은 28명으로 이 가운데 20명을 구속했다. 해외에서 마약을 밀반입해 온 밀수사범은 6명으로 이 가운데 4명이 구속됐다.
이와 함께 필로폰 1.9kg, 대마 2.3kg, 케타민 637g, 엑스터시 433정, LSD 491장과 마약자금 2304만 원을 압수했으며 범죄수익금 1544만 원을 기소 전 추징보전했다. 압수된 필로폰 1.9kg은 무려 6만 3000여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이번 사건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이들은 적발된 6명의 밀수책이다. 사회초년생인 20대와 30대로 남성이 4명, 여성이 2명이다. 우선 여성 한 명은 6월 현행범으로 검거됐다. 속옷 등에 필로폰 800g을 숨겨 국내로 밀반입하다 적발됐다. 또 밀수책 2명이 자신들이 해외에서 밀반입해 온 필로폰을 조직 윗선에 전달하지 않고 2개월가량 잠적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에 적발된 조직은 ‘고액 알바’를 모집한다는 등의 온라인 게시물을 통해 조직원을 모집했다. 처음에는 유통책으로 일하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의 신용을 얻으면 밀수책으로 승격된다. 이번에 검거된 밀수책 6명도 유통책으로 일하다 신용을 얻어 밀수책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밀수책은 마약을 밀반입할 때마다 수백만 원을 받고 유통책은 유통을 진행할 때마다 수십만 원을 받았다.
조직 입장에선 아무리 신용이 확인됐다고 해도 무조건 믿고 마약을 맡기는 것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마약을 밀반입한 뒤 조직에 건네지 않거나 마약 유통을 맡은 유통책이 사라져 버리는 등 사고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마약 밀반입과 유통 자체가 불법이라 도중에 사고가 발생해도 어딘가에 신고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들 조직은 조직원에게 확실한 충성 맹세를 받았다. 우선 조직원이 되려면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님의 지시로 일하게 된 ○○○입니다. 만일 물건을 가지고 도망가거나 문제가 생길 시 제 신상과 저희 모든 가족의 신상을 마약 밀수에 사용하는 데 동의합니다”라고 말하는 영상을 찍어 조직에 제출해야 한다. 이런 발언을 하는 영상에는 조직원의 얼굴과 함께 주민등록증이 찍혀 있다. 여기 더해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 등·초본 등도 제출하는데 이런 자료와 앞의 영상은 텔레그램을 통해 해외에 체류 중인 조직 총책에 전송된다.
이를 통해 조직 총책은 해외에 체류하면서도 확실하게 국내 조직원들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만약 도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총책은 사라진 조직원 가족의 집으로 마약을 배송한 뒤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확실한 보복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조직은 충성 맹세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마약 밀반입 및 유통을 진행해왔다. 밀수책이 총책이 있는 태국과 베트남으로 출국, 마약을 수령해 속옷이나 복대 등에 숨겨 국내로 반입했다. 일부 마약류는 밀수책을 통하지 않고 국제우편을 통해 국내로 들여오기도 했다.
밀반입된 마약은 각 지역 유통책에 전달된다. 이후 유통책이 책임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약을 유통해 수익금을 총책에 전달했다. 경찰은 이런 과정이 다른 마약 유통 조직과 다른, 마치 도매상과 소매상 같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총책이 직접 마약 유통 관련 지시까지 내리는 대신 마약을 공급받은 유통책이 각자의 방식으로 판매한 뒤 범죄 수익만 해외로 보냈다. 마약 유통으로 챙긴 범죄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는 과정에선 가상화폐가 사용됐다.
요즘 가장 흔한 던지기 수법은 기본이고, 유흥업소 등을 매개로 마약을 유통한 유통책도 있었다. 심지어 한 유통책은 자신이 운영하는 피자가게를 활용해 마약을 유통했다. 피자가게로 마약을 배송받은 뒤 이를 인근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에서 유통한 것.
해외 총책에 대한 경찰의 추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아직 검거 되지 않은 조직의 밀수책과 유통책의 추가 검거를 위한 수사도 이어지고 있다. 또 범죄수익추척팀이 가상화폐를 통해 해외로 옮겨진 범죄수익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 수원중부경찰서 관계자는 “‘고액 알바를 모집한다’는 온라인 게시물을 보고 연락한 사회초년생들이 마약 밀수와 유통에 휘말렸다”며 “SNS나 온라인에서 접할 수 있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 대부분이 범죄에 연루돼 있으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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