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즌 최다패 기록 세운 오승환, 신인왕 ‘0순위’ 김택연
상위권 순위 경쟁에 한창인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에는 무려 23년의 나이 차가 나는 마무리 투수들이 있다. 삼성의 오승환(42)과 두산의 김택연(19)이다. 오승환은 추신수(SSG 랜더스)·김강민(한화 이글스)과 함께 현역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982년생이고, 김택연은 올해 고교를 졸업하고 갓 프로에 발을 내디딘 2005년생이다. 오승환이 단국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데뷔하던 해에 김택연은 비로소 세상의 빛을 봤다. 정상에 오래 머물던 오승환이 내려오는 그 길로 '포스트 오승환' 김택연이 달려 올라가고 있는 모양새다.
#오승환이 흔들린다
오승환은 한국 야구가 낳은 역대 최고 마무리 투수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시즌 최다 세이브(47개), 최다 연속경기 세이브(28개), 통산 최다 세이브(8월 15일까지 427세이브)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성적뿐 아니라 마운드에서 위압감도 역대 최강이었다. '돌직구'라는 묵직한 단어가 오승환으로 인해 탄생했다.
오승환은 2005년 프로에 데뷔한 뒤 그해 중반부터 곧바로 삼성 소방수 자리를 꿰찼다. 첫 시즌 성적이 10승 1패 11홀드 16세이브, 평균자책점 1.18이었다. 2006~2008년과 2011~2012년에 총 다섯 차례 구원왕에 올랐다. 첫 9시즌 통산 277세이브(한 시즌 평균 31세이브)를 쌓아올려 KBO리그 최다 기록을 경신하고 해외로 진출했다. 한 시즌 평균 31세이브에 달하는 가공할 숫자였다.
오승환의 20대 시절, 삼성이 승리하는 데는 그리 많은 점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슬아슬한 리드라도 삼성 불펜에 등 번호 21번 투수가 나타나면 경기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삼성의 마지막 수비를 앞두고 그가 마운드에 오를 채비를 하면, 대구구장엔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를 할 때 학교 전체에 울려 퍼지던 바로 그 종소리였다. '이제 오승환이 나오고 경기가 곧 끝날 테니, 집에 갈 준비를 해라'는 메시지였다. 그 음악은 홈 관중에게 전율을 안기고, 상대 팀 선수들의 전의를 떨어뜨렸다. 웅장한 박수 소리와 함께 그가 마운드에 오르면, 삼성 팬들은 '오승환 세이브 어스'라고 입을 모아 노래했다.
무엇보다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존재다. KBO리그는 2003년까지 세이브가 아닌 '세이브 포인트(세이브+구원승)'로 구원왕을 시상했다. 세이브 상황에만 등판하는 전문 마무리 투수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배짱 좋고 빠른 공을 던지는 신인 투수가 입단하면, 불펜이 아닌 선발로 키우는 게 당연한 공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승환의 등장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그는 2005년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했고, 삼성은 오승환과 함께한 첫 9년 가운데 6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5번 우승했다. 오승환은 승리를 '만드는' 투수만큼이나 '지키는' 투수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운드에서 직접 입증했다.
오승환은 그 후 6년(2014~2019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 소방수로 활약했다. 한국보다 한 수 위인 두 리그도 '클로저' 오승환의 능력을 인정했다. 거액의 몸값과 톱 클래스 대우로 그를 맞이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삼성의 뒷문지기로 복귀해 건재를 확인했다. 2021년에는 또 한 번 40세이브를 돌파(44개)하면서 39세의 나이에 구원왕에 올랐고, 2022년과 지난해 각각 31세이브와 30세이브를 올려 3년 연속 3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그러나 오승환은 올 시즌 눈에 띄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벌써 27세이브를 올려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 자리를 시즌 끝까지 지켜낼지 미지수다. 8월 15일 기준 블론 세이브가 6개로 리그 공동 1위에 올라 있고, 그 여파로 벌써 7패를 당했다. 지난해 5패를 넘어 KBO리그 데뷔 후 한 시즌 개인 최다 패를 경신해가는 중이다. 박진만 감독은 최근 "앞으로 불펜은 등판 순서를 고정하지 않고 그때 그때 컨디션이 좋은 투수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선수 이름을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오승환이 더는 붙박이 마무리 투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표한 셈이다. 그런데도 오승환은 좀처럼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8월 15일 대구 KT 위즈전에서는 2-2로 맞선 9회 무사 1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가 오재일에게 2점 홈런을 맞았다. 뒤 이어 황재균에게도 연속 타자 홈런을 내줘 승기를 완전히 빼앗겼다. 8월 9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8-7로 앞선 9회 연속 4안타를 맞고 역전패한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충격을 안겼다.
오승환은 지난 시즌에도 완벽하진 않았다. 시즌 초반 블론 세이브가 잦아져 어려움을 겪자 2023년 5월 3일 키움 히어로즈와 홈 경기에서 데뷔 19년 만에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공을 많이 던지면서 투구 감각을 찾으려는 의도였고, 그 후 재정비를 거쳐 다시 마무리 투수 역할을 무사히 해냈다. 하지만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올해는 좀처럼 부진 탈출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매 경기 살얼음판 순위 싸움 중인 삼성 입장에선 흔들리는 오승환이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 오승환'의 등장
반면 두산은 향후 수년간 뒷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올해 신인왕 '0순위' 후보로 꼽히는 고졸 신인 김택연이 압도적인 세이브 행진을 펼치는 중이다. 김택연은 신인 시절 오승환을 연상케 하는 '돌직구'와 자신감을 앞세워 단숨에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고 있다. KBO리그 전체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포스트 오승환'이 마침내 등장했다.
실제로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김택연의 공을 처음 받아 본 두산 포수 양의지는 "갓 고교를 졸업한 선수 같지 않다. 오승환 형처럼 자기 공을 그냥 자신 있게 꽂아 넣는 게 보인다"며 "최근 본 신인 중 최고 투수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완성형'이라는 느낌이 드는 투수는 흔치 않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큰 무대(메이저리그)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승엽 두산 감독도 김택연을 볼 때마다 "위기에서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자기 공을 던지는 모습이 대단하다"며 감탄하곤 한다.
김택연을 향한 두산 팬들의 애정도 대단하다. 등 번호 63번을 달고 있는 김택연이 서울 잠실구장 홈팀 불펜 문을 열고 달려 나오면, 1루 쪽 두산 관중석은 엄청난 환호와 기분 좋은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 김택연도 자신이 등장할 때마다 달라지는 잠실의 '바이브'를 잘 알고 있다. 그는 "팬들이 유독 크게 환호해주시는 걸 경기에 나갈 때마다 느끼고 있다. 그렇게 응원해 주시니까 나도 정말 힘이 많이 난다"며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김택연은 두산이 올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2순위로 지명한 오른손 투수다. 인천고 시절 청소년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는데, 프로 첫 시즌부터 기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1군에 안착하고 있다. 정식으로 프로 1군 데뷔전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웬만한 스타선수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두산은 3월 3일 일본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에서 일본 프로야구 명문 구단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스프링캠프 스페셜 매치를 벌였다. 유료 관중이 만원에 가깝게 들어차고, 소프트뱅크 1군 베스트 멤버가 총출동한 경기였다. 김택연은 이 경기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 눈도장을 받았다. 1-3으로 뒤진 4회 말 2사 1·2루에 구원 등판해 2022년 퍼시픽리그 홈런왕 출신인 4번 타자 야마카와 호타카를 포수 파울플라이로 잡아내는 배짱을 자랑했다. 이어진 1이닝도 최고 시속 152㎞의 직구를 앞세워 피안타와 볼넷 없이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두산 관계자는 "좋은 신인 투수를 정말 많이 봤지만, 김택연은 '어나더 클래스'다"라며 흐뭇해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택연은 2주 뒤인 3월 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평가전에서 '팀 코리아' 소속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LA 다저스 강타선을 상대했다. 2-4로 뒤진 6회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와 제임스 아웃맨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워 박수를 받았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19세 선수가 그 많은 관중 앞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자기 공을 던지는 게 기특했다"며 "아웃맨도 그 투수의 공이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될지 궁금하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정작 프로 데뷔전인 3월 23일 NC 다이노스전에선 1이닝 2실점으로 부진했다. 첫 3경기에서 시행착오를 겪다 3월 30일부터 열흘 동안 2군에 다녀왔다. 김택연은 "서울시리즈 이후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2군에 가게 됐을 때 나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했고, 나 자신과 팀의 기대에 못 미친 것 같아 힘들었다"며 "2군에서는 마음의 짐을 내려두고 '신인다운 패기를 보여주자'는 다짐을 하면서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김택연은 그 후 반등에 성공했다. 첫 30경기에서 2승 2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64를 기록하면서 두산 불펜에 철벽 같은 방패를 세웠다. 특히 5월 등판한 13경기 중 11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승엽 감독은 결국 6월 13일을 기점으로 "앞으로 김택연이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김택연은 현재 구위와 안정감이 팀에서 가장 좋은 상태다. 이제는 완전히 프로에 적응했다. 모두가 '김택연이 등판하면 두산이 이겼다'라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잘해달라고 선수에게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그 후 김택연은 더 강해졌다. 공식적으로 소방수 보직을 맡은 첫날(6월 13일 잠실 한화 이글스전) 팀의 9-6 승리를 지켜 세이브를 따낸 것을 시작으로 8월 15일까지 19경기에서 1승 1패 12세이브, 평균자책점 0.82를 기록했다. 22이닝을 던지면서 삼진 29개를 잡아냈고, 볼넷은 8개밖에 내주지 않았다. 특히 8월 4경기에선 두 차례나 1과 3분의 2이닝씩 책임지는 '5아웃 세이브'를 해내면서도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해 '아무도 못 건드리는' 투수로 우뚝 섰다. 김택연의 7~8월 평균자책점은 0.54다.
김택연은 "마무리 투수로서 첫 목표를 10세이브로 잡았는데 이젠 달성(14세이브)했으니 앞으로 20세이브까지 도전하고 싶다"며 "신인왕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런 욕심은 시즌 초반 2군에 갔을 때 다 버리고 왔다. 그저 내 몫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1군에서 계속 공을 던지면서 시즌 초보다 정말 많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며 "다치지 않고 한 시즌을 잘 치르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올 시즌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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