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서 셰커에 2승, 정상까지 1승만 남아…“9월 일본의 오랜 염원 풀릴 가능성 높아”
#바둑+학업 병행한 천재
이치리키 료는 현재 일본 기성(棋聖), 본인방, 천원, NHK배, 아함동산배 등 5개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는 명실상부 일본 바둑 일인자다. 그런데 그는 프로 입문 전부터 독특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프로기사가 된 이후 갑자기 일본의 사립 명문 와세다대학에 입학, 사회학부를 졸업한다. 그것도 특기자 전형이 아닌 정시, 대학별 고사를 통과해 입학했다. 입학 후엔 모든 학기에 3점대 후반의 우수한 학점을 받았으며, 졸업 후에는 집안이 운영하는 가호쿠신보(河北新報)의 편집부 기자로 입사해 가업을 물려받는 후계자 코스를 밟았다. 현 직위는 상무. 일본 동북부 센다이의 지역신문인 가호쿠신보는 이치리키 가문이 고조부 때부터 경영해 오고 있는 신문사로 현 이치리키 마사히코 사장의 외아들이 이치리키 료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을 이치리키가 프로기사 생활과 병행하며 이뤄냈다는 것. 2016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그해 9월 야마시타 게이고를 꺾고 천원전 도전권을 획득했지만, 도전기에서는 이야마 유타에게 종합 전적 1-3으로 패해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9월 말 열린 일본 용성전 결승에서는 이야마 유타에게 설욕하며 자신의 첫 타이틀을 차지한다. 바둑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만일 이치리키가 대부분의 기사들이 그렇듯 공부를 포기하고 바둑에만 전념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다.
#일본 일인자의 스승은 한국인들
이치리키는 한국과도 이런저런 인연이 깊은 기사다. 그는 조총련계 프로기사인 송광복 9단의 문하생이다. 조치훈 9단이나 류시훈 9단 등에 비해 국내엔 덜 알려졌지만 송광복은 이치리키 외에도 안자이 노부아키, 히라타 도모야 등 실력파 기사들을 배출했다.
송광복은 막내제자 이치리키와 히라타를 관서기원 소속 한국인 프로기사 홍맑은샘이 운영하고 있는 홍도장에 보내 위탁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2009년 입단한 히라타는 홍도장이 배출한 최초의 프로기사가 되고, 이치리키는 이듬해 역시 홍도장에서 입단의 기쁨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이치리키는 한국인 송광복과 홍맑은샘의 합작품인 셈이기도 한 것이다.
스타일은 한국 바둑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대부분의 일본 기사들이 갖고 있는 약점인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기풍의 소유자라는 평을 듣는다. 수읽기가 깊어 난전에 강한 스타일이라 제한시간이 긴 바둑보다는 NHK배나 용성전 같은 속기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세계무대에서 통할 만한 실력을 갖추게 됐다.
#19년 만의 일본 기사 우승 도전
이번 응씨배에선 운도 따랐다. 이치리키는 한국의 신진서나 박정환에게 한번도 이기지 못했을 정도로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응씨배에서는 중국의 류위항, 쉬자양, 커제를 연파했고 결승에선 역시 중국의 셰커를 만나 나름 편안하게 우승에 도전하는 중이다. 이번 대회 박정환은 1회전에서 쉬자양에게, 신진서도 1회전에서 왕싱하오에게 패해 조기 탈락했다.
일본은 지난 2005년 장쉬 9단이 제9회 LG배에서 우승한 이래 무려 19년간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응씨배에서 이치리키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치리키는 2국이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솔직히 오늘은 그냥 운이 좋았다. 대국 내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3국에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내용으로 대국을 펼쳐서 우승을 확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둑TV를 통해 이 바둑을 해설한 최명훈 9단은 “셰커 9단이 지려야 질 수 없는 바둑을 한순간의 경솔로 인해 날려버렸다. 이런 패배는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다음 대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3국이 곧장 이어지지 않아 흐름이 끊긴 것은 이치리키 료 9단이 아쉽겠지만, 이런 전개라면 일본의 오랜 염원이 풀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결승3국은 9월 8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속개된다(4국은 10일, 5국은 12일). 응씨배의 우승상금은 40만 달러로 현존하는 세계대회 중 가장 많은 상금이 걸려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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