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 확보나 즉각 수사 쉽지 않아 …“윤 정부 말기 누군가 ‘입 열 가능성’ 염두에 둔 자료 확보” 해석도
특히 윤 대통령까지 수사를 진행하려면 법리적인 점을 고려할 때 △경찰에 이첩한 사건을 다시 국방부가 가져오는 것이 불법에 해당하는지 △이 과정에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를 내렸는지 △박정훈 전 대령(수사단장)에 대한 징계 과정이나 명분이 충분한지 △징계 지시를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에서 내려왔고 이게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등 각각의 지점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핵심 인물들의 진술 협조가 없으면 ‘하나도 기소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 대통령 개인전화 및 800-7070 통화기록도 확보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통화기록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자료를 확보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를 포함해 전·현직 대통령실 관계자 10여 명의 휴대전화와 대통령실 내선번호 ‘02-800-7070’의 통화기록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는 2023년 7월 3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주진우 당시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등과 통화했던 번호다. 대상 기간은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된 날, 즉 2023년 7월 19일부터 약 두 달 동안이다.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통화기록 확보 사실은 언론에서 주요 뉴스로 다뤄졌지만, 법조계에서는 ‘중요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가 많은 증거’라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법리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 많다는 설명이다.
#사건 경찰 이첩 후 회수 과정이 위법한가
그나마 기소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은 국방부에서 경찰에 이첩했던 사건을 다시 회수해오는 과정이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2023년 7월 30일 채 상병 사건을 조사했던 해병대수사단(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보고서에 결재를 했다.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을 혐의자로 적시해 사건을 경찰로 이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튿날인 7월 31일 대통령실 전화를 받은 직후 이종섭 장관은 자신의 결재를 뒤집고 해병대에 사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
박정훈 대령은 이를 어기고 8월 2일 경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그러자 국방부 검찰단은 곧바로 경찰에게서 채 상병 순직 사건을 회수하고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국방부와 경찰 간 사건 이첩 관련 법안 중에는 ‘이첩 과정과 절차’에 명문화된 규정은 있지만, 이첩 회수에 해당하는 조건을 적시한 법은 없다. 이 과정에서 이첩한 사건을 다시 가지고 오는 게 정해진 규정이 없고, 이를 대통령실에서 무리하게 지시한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직권남용’으로 다퉈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지점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의 구성 요인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끔 해야 하는데 사건을 이첩한 뒤 절차적 명분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다시 회수하게끔 했다면 직권남용으로 다퉈볼 만하다”며 “구체적으로 ‘임성근 사단장을 이첩하지 말라’는 식으로 지시한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기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찰이나 검찰 단계에서 사건을 이첩했다가 증거 자료 부족이나 오타 등으로 다시 회수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기에 기소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첩 회수 규정이 없다고 해서 이첩 회수 과정을 불법으로 보면 검찰이나 경찰 단계에서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다시 회수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불법이 될 것”이라며 “또 이 과정에서 이종섭 장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시켜서 결정을 바꿨다. 이첩회수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종섭 장관이 지시를 번복했기에, 결제받은 보고서가 ‘무효’가 됐으므로 이첩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징계는 대통령 인사권으로 봐야”
8월 2일 이뤄진 징계 조치에 대해서도 확인이 필요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종섭 장관, 신범철 차관 등과 통화를 주고받았는데 ‘이첩’을 강행한 박정훈 대령의 징계(보직해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법조계는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설명한다.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보직해임하고 항명죄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도, 정상적인 조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대통령이 화를 냈다고 언론에서 지적하는데 화를 낸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보직해임 등 인사 조치를 했다고 해도, 이는 군에 대한 통수권이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그조차도 ‘통화 당사자’의 진술이 있어야 확인이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장관, 신범철 전 차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핵심 인물들이 모두 상세하게 진술을 해야 기소를 검토해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보안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입을 다물 경우 통화기록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공수처 통화기록 확보는 ‘면피용?’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공수처는 일단 침묵을 지키며 확전을 피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공수처는 통화내역 보존기간(1년) 만료를 앞두고서야 자료를 확보했는데, 이런 일련의 흐름을 고려할 때 공수처가 ‘당장의 수사’보다 미래를 대비해 통화기록을 확보했다는 평이 나온다.
실제로 공수처는 박정훈 전 대령에게 수사 대상을 축소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2024년 4월에서야 처음 소환했고, 5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 대한 2차 조사를 마지막으로 관련 인물들의 대면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수사 인력도 부족하다. 현재 수사4부의 검사는 부장검사를 포함해 3명인데, 충원은 검토되지 않고 있다.
공수처 흐름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윤석열 정부 3년 차에 이번 수사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며 “차후에 특검이 들어설 경우 ‘공수처가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면피용으로 통화기록 보존기간 만료를 앞두고 자료를 확보한 것이며 차후 시간이 흘러 윤석열 정부 막판에 누군가 ‘입을 열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자료”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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