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뚜렷한 1강 없어…개혁 이미지 이시바 당내 기반 약해, 업무 능력 강점 모테기 인망 부족
#기시다 불출마 선언한 이유
“국민에게 자민당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첫걸음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다.” 8월 14일 기시다 총리가 “총리 연임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2021년 10월 출범한 기시다 정권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한일관계 개선, 미일 정상회담,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지율이 50%를 넘기기도 했지만, 같은 해 연말 터진 자민당 파벌의 비자금 스캔들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지지율은 줄곧 20%대에 머물렀고, 올해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은 연전연패했다. 당내에서는 기시다 책임론과 함께 “간판 얼굴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라는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NHK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끌려 내려오는 상황까지 가고 싶지 않다’라는 속내를 자주 내비쳤다”고 한다. NHK는 “기시다 총리가 실은 몽골 방문으로 외교적 성과를 올리고 나서 불출마를 표명하려고 했지만, 출발 예정이었던 8월 9일 전날 ‘난카이대지진 임시 정보’가 발표되면서 몽골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하게 됐다”라는 후일담도 전했다.
#베테랑 유력 주자들 강점과 약점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투표 367표와 367표로 환산한 당원 투표의 합계에서 과반을 차지한 사람이 이긴다. 아무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상위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로 맞붙는데, 결선투표에서는 국회의원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당내 파벌 구도와 의원 간의 이해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먼저 유력 후보 중 한 명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67)이다. 강점은 국민적 인기가 높다는 것.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첨예하게 대립해왔던 터라 ‘아베파’가 주류였던 십수년 동안은 ‘찬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민당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오히려 ‘개혁 이미지’라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다만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의원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지 않고,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시바는 2008~2020년까지 4번이나 총재 선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국회의원 표를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68)도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도쿄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만큼 영어가 뛰어나고 업무 능력이 출중하다. 외무상, 경제산업상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반면 인망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약점이다. 관료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바로 호통치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너무 똑똑한 나머지 관료들이 내놓은 정책을 청색 펜으로 첨삭해 수정한다”라는 일화도 널리 알려졌다.
고노 다로 디지털상(61)도 출마설이 나돈다. 고노는 3년 전 총재 선거에 입후보해 결선투표에서 기시다에게 패한 바 있다. 소셜미디어 이용에 능통해 젊은 층에게 인지도가 높고, 각료 경험이 풍부하다. 비자금 파문으로 자민당 6개 파벌 중 5개가 파벌 해체를 선언한 가운데, 유일하게 잔존하고 있는 ‘아소파’의 일원이다. 그러나 이시바 전 간사장과 마찬가지로 의원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지 않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과거 ‘탈원전’ 등을 주장해 당내 ‘이단아’ 취급을 받는다. 고노는 파벌 아소파의 지원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지만, 파벌 내에서는 “모테기 간사장을 밀자”라는 의견도 존재해 파벌 수장이자 ‘킹메이커’인 아소 다로 부총재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여풍, 40대 젊은 피에도 주목
일본의 첫 여성 총리를 노리는 후보들에게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63)은 극우층에게 인기다. 지난 총재 선거에서는 정치 신조가 비슷한 아베 전 총리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매년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참배할 정도로 극우 색채가 강한 정치인이다. 하지만 “강력한 후원자였던 아베 전 총리의 부재로 존재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지지통신은 “입후보에 필요한 추천인 의원 20명을 확보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노다 세이코 전 총무상(63)도 여성 총리감으로 거론된다. 경험은 많으나 역시 출마를 위한 추천인 확보가 첫 관문이 될 듯하다. ‘기시다파’로 분류되는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71)은 견실함이 강점이나 총리에 대한 야심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내 쇄신감을 연출하기 위해 40대 젊은 피,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43)을 추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으로 지명도가 높고, 후보로 거론되는 의원들 중에서 가장 젊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비주류파의 핵심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신지로를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스가 전 총리는 아소 부총재와 함께 이번 선거의 킹메이커로 떠올랐다. 다만 환경상을 빼면 총리에 오를 만한 이렇다 할 이력이 없다는 점에서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사히신문은 “지명도에는 강점이 있지만, 역량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2019년 38세의 나이로 환경상에 발탁됐을 당시 기후변화 문제를 두고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구설수가 많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49)도 입후보를 공식 선언했다. 다른 예상 후보들보다 먼저 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언론 노출을 늘려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명도를 끌어 올리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강점은 역시 젊은 나이다. 재무성에서 관료로 이력을 쌓다가 정치인으로 변신, 2012년 국회에 입성했다. 우익 성향의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으며 ‘아베파’ 출신의 중견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저널리스트 다케다 가즈아키는 고바야시의 약점에 대해 “낮은 지명도와 정치가로서 매력 부족”을 들었다. “고바야시 본인도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있어 지명도 향상을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자신의 정치사와 가족 관련 에피소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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