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수천만 원이 통상적, 재산 규모 고려 분위기…김희영 “노소영 관장께 사과, 항소 않겠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는 지난 8월 22일 김희영 이사장이 최태원 회장과 공동으로 노소영 관장에게 20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 관장은 지난해 3월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김희영 이사장에게 30억 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림으로써 노 관장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김희영 이사장은 법적으로 최태원 회장과의 부정행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혼인 관계가 이미 오래 전 파탄 난 상태라는 이유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혼인 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이 노소영 관장에게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김희영 이사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김희영 이사장과 최태원 회장의 부정행위, 혼외자 출산, 최 회장의 일방적인 가출과 별거의 지속, 김 이사장과 최 회장의 공개적인 행보 등이 노 관장과 최 회장 간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이로 인해 노 관장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이 분명하므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전했다.
김희영 이사장 측은 판결 직후 “노소영 관장께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특히 오랜 세월 어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아팠을 자녀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 측은 이어 “법원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겠다”며 “법원에서 정한 의무를 최선을 다해 신속히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소영 관장 측은 “노 관장과 자녀들이 겪은 고통은 어떠한 금전으로도 치유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가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보호하려는 법원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최태원 회장과 SK그룹은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최 회장은 현재 노소영 관장과 이혼 관련 재판을 진행 중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 3808억 원과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최 회장은 상고를 제기한 상태다. 최 회장은 상고심을 진행 중인 만큼 이번 판결이 대법원 재판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20억 원의 위자료가 이례적인 금액이라고 평가한다. 통상적으로 교통사고 사망 사고의 위자료는 최대 1억 원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혼 사건은 이보다 낮은 수천만 원선에서 책정되고, 1억 원이 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판사의 재량으로 위자료가 결정되지만 보통 부정행위가 명백한 경우에는 3000만 원 전후 수준으로 결정된다”며 “유책의 정도가 폭언 수준이면 2000만 원선에서 위자료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법원은 김희영 이사장의 위자료 산정과 관련해 △노소영 관장과 최태원 회장의 혼인기간 △혼인생활의 과정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경위 △부정행위의 경위와 정도 △재산 상태와 경제규모 △선행 이혼 소송의 경과 등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월, 서울고등법원은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 회장의 경제 수준, 지출 성향, 부부 공동재산의 유출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최 회장이 김희영 이사장에게 지출한 돈은 21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SK이노베이션이 노 관장에게 SK서린빌딩 퇴거를 요청한 것도 판결 근거로 작용했다.
통상적으로 상간자의 위자료는 배우자의 위자료보다 낮게 측정된다. 이 때문에 김희영 이사장의 위자료는 20억 원 이하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법원은 김 이사장에게도 최 회장과 같은 액수의 위자료를 산정했다. 김 이사장과 최 회장을 공동불법행위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김 이사장의 책임이 최 회장과 비교해 특별히 달리 정해야 할 정도로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김 이사장도 최 회장과 동등한 액수의 위자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는 최근 피의자의 재산 규모를 위자료 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분위기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6월 한 이혼 관련 소송에서 유책배우자 A 씨에게 2억 원의 위자료를 판결했다. 이 판결은 억대의 위자료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화제가 됐다. 법원은 당시 위자료 산정 근거 중 하나로 A 씨의 재산 상태를 제시했다. A 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해 재판이 확정됐다.
20억 원의 위자료는 이례적이지만 최태원 회장 외에도 수십억 원의 위자료가 발생한 사례는 있다. 고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2006년 이혼하면서 전처 박 아무개 씨에게 무려 53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했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CCO(창의성총괄책임자)도 2010년 전처 서 아무개 씨에게 위자료 30억 원을 내줬다. 고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이혼 과정에서 각각 25억 원, 15억 원의 위자료를 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혼 위자료 비공식 1위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과 2009년 합의 이혼했지만 구체적인 위자료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전남편 박 아무개 씨는 서로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된 사례도 있다.
다만 이들은 모두 조정을 통한 합의 이혼 과정에서 위자료를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지급한 위자료에는 재산분할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직접적으로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린 최태원 회장과는 경우가 다르다. 법원이 이혼 관련 소송에서 수십억 원의 위자료를 판결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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