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로 새벽에 뛰쳐나와” 고객 후기 남겨…그후 리모델링 했지만 스프링클러 등 안전설비는 외면
#소방은 신속 출동했는데…참사 커진 이유
8월 22일 오후 경기 부천 도심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로 투숙객 7명이 숨지고 12명이 크게 다쳤다. 부천원미경찰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등에 따르면 사망자 5명은 일산화탄소 중독, 2명은 추락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추락한 2명은 소방이 설치한 에어매트에 뛰어내렸음에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에어매트가 뒤집힌 탓이다.
이번 사고에서 첫 신고는 오후 7시 39분쯤 이뤄졌다. 이 호텔은 불과 1.2km 거리에 부천서부119안전센터, 2.1km 거리에 부천소방서를 두고 있다. 이에 소방 인력은 신고 4분 만인 7시 43분쯤, 비교적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했다. 호텔에서도 화재경보는 울렸다고 전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수의 사상자가 나올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호텔의 노후화가 문제였다. 우선 화재 이유는 8층 객실의 에어컨 누전으로 추정된다. 누전은 낡은 전선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와중에 이 호텔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현행법은 2017년 이후 지어진 건물의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이곳은 2004년 지어졌다.
부천소방서 관계자는 "정밀감식을 해봐야겠지만 각 호실마다 걸린 에어컨 등의 누전으로 스파크가 발생, 방의 소파 및 침대 등으로 불길이 옮겨 붙은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의 통로도 매우 좁다 보니 대피하려던 피해자들이 고열에 노출이 많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2년 전 리모델링, '골든타임' 있었다
실제 해당 호텔은 간판만 호텔일 뿐 내부는 옛날식 모텔 구조를 띠었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곳은 연면적 383.76㎡(약 116평) 규모의 1개 층에 방 10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에 복도 폭이 고작 두 사람 정도만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정도로 매우 좁았고, 방 안 창문 역시 워낙 작아 화재 연기 배출이 유독 힘들었다.
이는 사고 때 투숙객들의 대피를 더욱 어렵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생존자들 증언에 따르면, 화재경보가 울렸을 때 비좁은 복도는 이미 연기로 가득 차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발화 지점인 810호가 복도 끝 비상계단과 가까이 있었던 까닭에 건물을 빠져나가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결국 투숙객들은 생사 여부를 운명에 맡겨야만 했다. 질식 위험을 무릅쓰고 비상계단으로 향하거나, 방 안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를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망자 5명이 객실 내부와 계단에서 발견된 이유다. 에어매트 뒤집힘 사고로 숨진 피해자들 역시 이런 환경에서 창문 탈출을 시도했던 이들이었다.
생존자들은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발화지점과 가까운 8층 객실에 있던 또 다른 투숙객 A 씨의 경우 간호학과를 전공하며 '샤워기에서 뿜어 나온 물이 수막을 형성해 일시적으로 유독가스 차단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식을 활용했다. 시커먼 복도를 마주하고 희망을 잃을 뻔했던 그는 다시 방 안 화장실로 들어갔다고 한다.
A 씨는 119 신고를 한 다음 계속 화장실에 머물렀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수건으로 문을 막은 채 샤워기를 틀었다. 그렇게 홀로 서 두려움을 버텨내던 A 씨는 마침내 도착한 소방관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기절해 쓰러졌다. 그는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이 호텔은 피해 규모를 줄일 기회가 이미 한 차례 있었다. 각종 호텔·숙박업소 중개사이트 등을 살펴보면, 2021년 이 호텔에 묵었던 한 고객은 "새벽에 화재경보가 울려서 자다가 뛰쳐나왔다"며 "너무 화가 난다"는 후기를 남겼다. 대형 화재 우려가 진즉에 따랐던 셈이다.
그로부터 1년 지난 2022년 이 호텔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쳤다. 그러나 이때도 외벽 등 인테리어만 바꿨을 뿐, 스프링클러 등 안전 설비는 갖추지 않았다. '2017년 이후 지어진 건물만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라는 미흡한 법적 제도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치권 '재발방지' 약속…이번엔 믿을 수 있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나섰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숙박시설 등 특정소방대상물의 관계인들이 2027년 12월 31일까지 스프링클러 설비 등 소방시설을 의무로 설치하도록 하는 게 뼈대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제도 보완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8월 23일 "소방법, 건축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가 소급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 차원에서 제도적 미비점들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말이 실천으로 옮겨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각 시설에 스프링클러를 의무로 설치하도록 하는 법안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업계 저항으로 반쪽짜리에 그쳐왔기 때문이다. 이미 통과된 법마저도 업계 반발 때문에 시행이 미뤄진 상태다.
2018년 19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한 예다. 당시 사고도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가 컸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바닥면적 합계가 600㎡ 이상인 병원급 의료기관만 스프링클러가 의무였던 까닭에 그 이하 규모 병·의원들은 이를 갖추지 않는 실정이었다.
그 시기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병·의원에 스프링클러를 꼭 설치하게끔 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반짝 구호에 그쳤다. 중소형 병·의원들이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키우면서 정책 추진 동력도 차츰 힘을 잃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소방청 등이 2019년 시행령을 개정해 제도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그러고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사태 등으로 재정난을 호소하는 병원들이 늘면서다. 이 때문에 당초 2022년 시행하려던 법이 2026년으로 연장돼 아직도 이행이 지지부진하다. 이번 부천 호텔 화재 사건을 계기로 한 법 개정은 과연 다를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한편 부천 호텔 화재 사고는 참사 원인과 별개로 소방의 구조 활동을 둘러싼 논란도 더할 전망이다. 에어매트가 뒤집혀 2명이 사망한 원인을 놓고 소방의 대처가 문제였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에어매트 사용 기한은 7년인데, 이번 사건에서 소방은 18년 된 물건을 투입했다고 알려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사고 하루 뒤 "뒤집힌 에어매트로 추가 생존자 확보에 실패했다는 우려가 많다"며 "조사를 통해 원인 파악과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부천소방서 관계자는 "소방대원들이 '조금 더 버텨달라' 당부했지만, 에어매트 모서리 쪽으로 떨어지며 뒤집힌 사고로 매우 흔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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