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책, 도망친 ‘드라퍼’ 사적 제재, 가족 신상 공개까지…수시로 ‘꼬리 자르기’ 총책은 ‘꼭꼭’
#집에 찾아가거나 폭행하기도
운반책들의 신상정보가 올라오는 곳은 이른바 딜러라고 불리는 마약 판매상들이 모인 텔레그램의 한 채널이다. 텔레그램 채널은 일반적인 대화방과 달리 운영자가 올리는 글만 볼 수 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인 셈이다. 8월 23일 기준 이 채널의 입장 인원은 무려 1700여 명이었다.
마약 판매상들은 “사기를 당했다”며 마약을 가지고 잠적한 운반책들의 신상정보를 박제했다. 즉, 운반책이 중간에 돈을 빼돌리거나 마약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으므로 사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운반책은 판매상으로부터 마약을 받아 이를 구매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업계에선 마약을 약속한 장소에 두고 온다는 뜻으로 드라퍼(Dropper·떨어뜨리는 사람)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일부는 해외에서 직접 마약을 밀반입하며 해외 판매상과 국내 판매상의 가교 역할을 하는데 이를 ‘지게’라고 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해당 채널에 공개된 개인정보는 잠적한 운반책의 나이와 이름, 주소가 적힌 주민등록증과 이들의 가족 정보가 적힌 가족관계증명서 등이었다. 운반책 본인 정보뿐만 아니라 이들 가족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올라오기도 했다. 또한 "(운반책을) 잡는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며 현상 수배금을 걸거나 직접 이들의 자택으로 찾아가는 것을 영상으로 찍어 올린 이도 있었다.
특히 물리적 위해를 가하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한 판매상은 “수천만 원어치의 마약을 가지고 온 지게가 잠적했다”며 “집 앞으로 사람을 보냈는데 왜 오지를 않냐”고 했다. 실제로 집을 찾아가거나 폭행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8월 22일 일요신문이 확인한 한 영상엔 마약 판매상 혹은 이들의 수하로 보이는 한 남성이 운반책의 주민등록증을 들고 직접 집을 방문해 문을 두드리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와 유사한 채널도 마찬가지였다. 게재된 영상 속에는 운반책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코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연신 “죄송하다”고 반복했다
#“사기 당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꼬리 자르기’
판매상들은 마약을 가지고 잠적한 운반책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다른 판매상 피해를 막으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예방이 아닌 사적 제재라고 지적했다. 마약 관련 사건을 다수 맡은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법적으로도 죄질이 훨씬 더 무거운 판매상이 운반책을 사적으로 제재하는 것부터 모순”이라며 “수천 명이 있는 곳에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폭행 영상을 올리는 것은 우리를 배신할 때 반드시 응징한다는 경고를 전하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채널을 운영하는 진짜 목적은 ‘꼬리 자르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마약 범죄의 최상단에 있는 제조업자와 판매상이 20대 초반이 대다수인 운반책들 신상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고 이들을 꼬리 자르기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확인한 운반책 다수는 20대 초반으로 건당 1만 5000원에서 3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마약을 운반하고 있었다.
과거 운반책으로 일하다 처벌을 받은 A 씨는 “드라퍼(운반책) 면접을 보려면 지원 영상이라는 걸 찍어야 한다. 얼굴 옆에 주민등록증을 들고 ‘제 이름은 OOO입니다. 마약 드라퍼로 지원합니다’라고 찍어서 딜러(판매상)에게 보내는 것이다. 딜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신상이 공개된다. 이것 때문에 경찰에 잡힌다 해도 우리는 딜러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특성상 증거확보가 어려운 것도 문제다. 규모가 큰 블랙리스트 채널엔 운반책을 모집하는 공고도 종종 올라오는데 지난 4월엔 해당 채널 운영자가 “곧 더 좋은 서비스로 찾아오겠다”며 기록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채널을 만들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방을 바꾸는 방식으로 범죄 증거들을 지운 것이다.
심지어 일부 판매상들은 경찰에게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 텔레그램 채널에 있던 한 판매상은 잠적한 운반책의 신상정보와 이들이 운반한 마약 정보를 상세히 올리며 “이 드라퍼를 잡으면 대박”이라며 “더 자세한 정보 원하는 형사님들은 메시지를 달라”고 했다.
또 다른 판매상은 “도망친 운반책을 가장 먼저 잡는 형사님들에게는 특급 2단 승진용 증거자료 다 내놓겠다”며 “이건 단순 공적이 아니다. 먼저 (운반책을) 긴급체포 하신 후 연락주시면 제가 캄보디아 건까지 전부 오픈하겠다”고 수사를 유도하기도 했다.
앞서의 변호사는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의 총책은 절대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드러나는 일은 전부 드라퍼의 몫”이라며 “총책은 드라퍼나 지게에게 비행기값 정도만 지불하고 뒤로 빠진다. 대부분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주기적으로 드라퍼나 투약자 정보를 수사기관에 흘리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향한 수사망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8월 13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86명을 검거하고, 34명을 구속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해외 밀수범은 4명이 구속됐는데 이 가운데 2명은 밀반입해 온 필로폰을 윗선에 전달하지 않고 두 달가량 잠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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