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계약·매출 하락세, 공공성 저해 비판도…공사 “경영개선 위해 사업 유지, 대상기관 선정 기준 있다”
#신규 계약 건수·사업 매출 '감소세'
일요신문이 서울교통공사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받은 ‘서울교통공사 역명 유상병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역명병기 신규 계약 건수(환승역은 1개 역으로 간주)는 2022년 20건, 2023년 14건, 2024년 1~8월 기준 4건으로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신규 계약 수입(총 낙찰가를 입찰이 이뤄진 연도에 산입)도 2022년 약 89억 원, 2023년 34억 원, 2024년 25억 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성수와 강남역 같은 최초 최저입찰가(감정가)가 높은 역의 계약이 이뤄지면서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가다.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은 지하철 역사의 본래 명칭 외에 기업이나 관공서·의료기관·학교 등에서 비용을 받고 부역명을 추가로 표기할 수 있게 해주는 사업이다. 역사 외부·대합실·승강장·전동차에 부역명을 표기할 수 있다. 안내방송에도 주역명과 부역명이 함께 불린다. 서울교통공사 전신인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가 2016년부터 시행했다. 2017년 5월 출범한 서울교통공사는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진행했다. 역세권 내 기관 등의 인지도 향상과 도시철도 이용고객의 편의 증진이 사업 목적이다.
역명병기 대상기관으로 선정되면 3년 동안 부역명을 표기할 수 있다. 재입찰 없이 1회(3년) 연장이 가능하다. 서울 시내의 경우 역에서 반경 1km, 시외는 2km 이내에 위치한 기관이어야 선정될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1~8호선 중 부역명 표기 수요가 있거나 역사를 이용하는 승객이 많은 지하철역이 부역명 표기 대상이다. 서울교통공사가 경쟁입찰에 부쳐 응찰금액이 높은 기관을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제공한 자료와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 포털 온비드를 분석한 결과, 경쟁입찰이 유찰된 후 수의계약으로 입찰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2022년 역명병기 대상기관으로 선정된 20개 역 중 16개 역(80%)이 수의계약이 이뤄졌다. 2023년에는 14개 역 중 11곳(78.6%), 2024년에는 4개 역 중 1곳(25%)이 수의계약으로 역명병기 대상 기관을 찾았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질 경우 최저입찰가와 근접한 가격에서 낙찰가가 형성된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르면 경쟁입찰이 단독 입찰로 유찰돼 재공고 입찰을 냈는데도 입찰자가 2인 이상의 유효한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도입된 지방계약법 특례는 2020년 7월부터 올해 말까지 적용된다. 이 특례 조항은 단독 입찰로 유찰된 경우 재공고 입찰을 실시하지 않고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입찰자가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아 역명병기 대상기관을 못 찾는 경우도 많다. 2022년에는 입찰 공고가 나온 44개 역 중 24개 역(54.5%), 2023년에는 28개 역 중 14개 역(50%), 2024년에는 10개 역 중 6개 역(60%) 입찰이 유찰됐다. 입찰자가 나오지 않은 역 중에는 종각·홍대입구·신사·공덕·시청역과 같은 유동인구가 많은 역도 포함됐다. 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저입찰가가 수억 원에 달하고 홍보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 흥행 저조 이유로 꼽힌다. 중견기업 한 관계자는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 외에는 의미부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재정난 이유 들지만 효과는 글쎄
서울교통공사는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로 재정난을 제시하고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 매출은 2022년 1조 7684억 원에서 지난해 1조 8707억 원으로 6%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영업손실은 8452억 원에 달했다. 2022년(9345억 원)보다는 영업손실이 10% 줄었지만 여전히 손실 규모가 막대하다. 지난해 기준 서울교통공사 부채는 6조 8322억 원으로 2022년(6조 5570억 원)보다 4% 늘었다.
하지만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이 서울교통공사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서울교통공사의 수익성에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이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적자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자구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행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공공재인 지하철의 부역명을 판매하는 사업이 공공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명훈 한양대 도시대학원장은 “해당 역에 내린 승객들의 통행량을 따져 절반 이상 승객이 특정 기관으로 향한다면 부역명을 기재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일정 정도 비용을 낸 기관에 부역명을 판매하는 사업은 승객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최근 3년간 신한카드·아모레퍼시픽·애큐온저축은행·신한투자증권·에듀윌학원·현대건설·하나은행·우리금융지주·삼양홀딩스·세아홀딩스·홈앤쇼핑·현대에이치티·유진투자증권·CJ올리브영 등이 사옥이나 지점이 위치한 인근 역의 역명병기 대상기관으로 선정됐다. 제일정형외과병원·강남브랜드안과·하루플란트치과의원·에스앤유서울병원 등 민간 의료기관이 낙찰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역명병기 심의위원회 출석위원 과반수가 △공공성 △이용편의성 △기관요건 3개 항목에 적합하다고 판단해야 낙찰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이 3개 항목은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올해 5월 서울교통공사가 마련했다. 심의위원회는 외부 심의위원 5명과 서울교통공사 내부 인력 4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앞서의 3개 항목 평가는 심사위원의 개인 판단에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 한 관계자는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가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합의가 아닌 돈 몇 푼에 일회성·선전성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라며 “사업을 중단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서울교통공사가 적자를 보고 있는 이유는 노인 무임승차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해주지 않고 있는 데다 환승을 할인해주는 영향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김상철 센터장은 “운임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서울교통공사 지원 의무가 있는 서울시가 투자 우선순위를 제대로 점검한다면 불필요한 사업 대신 대중교통에 좀 더 투자할 여력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적자 상황인데 운수사업 수익만으로는 충당이 안 돼 경영 개선을 위해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승객 편의성 등을 위해 역명병기 대상기관 선정 기준을 두고 있다”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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