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액 배당 모두 오너 일가 기업이 실시…조정호 메리츠금융회장 지난해 2306억 원으로 최다
국세청에 따르면 배당소득을 2000만 원 이하로 받는 주주들은 현행 세법상 소득세 14%, 주민세 1.4%를 합쳐 세율 15.4%가 적용된다. 배당소득이 2000만 원을 초과하면 배당과 이자 등 금융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산해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 하는 ‘금융소득종합과세자’로 분류된다. 과세표준이 10억 원을 넘으면 세율은 45%가 적용된다. 여기에 지방소득세 10%까지 가산된다.
그러나 감액 배당으로 마련된 배당금은 과세 대상 소득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감액 배당은 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 합이 자본금 1.5배를 초과할 경우, 초과 범위 내에서 주총 결의를 거쳐 일정 수준 감소시킨 후 이를 재원으로 배당금을 지급하는 전략이다. 이익잉여금으로 배당금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 출자와 같은 자본거래 결과로 발생한 자본준비금으로 배당을 받는 것. 주주로서는 본인이 출자한 금전을 되찾는 것이므로 감액 배당은 배당소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지난해 결산 배당으로 감액 배당을 한 기업은 △메리츠금융지주 △하나투어 △일진홀딩스 △인화정공 △넥스틸 △크레버스 등 6곳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배당금 전액을 감액 배당으로 마련한 재원으로 활용했다. 최근에는 동국제강과 신영증권도 주주총회에서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이입하는 안건을 상정해 의결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감액 배당을 실시하는 곳 모두 오너 일가 기업이라는 점이다. 기업 내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오너는 박효정 넥스틸 회장으로 지분 54.15%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아들 박영회 상무도 8.75%를 가지고 있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도 지분 51.25%를 보유 중이다. 그의 딸인 조효재 씨도 0.09%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인 인화정공 회장(49.3%),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29.1%), 김영화 크레버스 회장(14.27%)과 그의 부인 김혜련 부회장(4.63%),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이 지분 6.53%를 갖고 있다.
신영증권도 원국희 명예회장과 원종석 회장이 각 10.42%, 7.93%를 보유 중이다. 동국제강은 최대주주인 동국홀딩스가 30.28%를 보유하고 있다. 동국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재벌 3세 경영인인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이 32.54%, 동생 장세욱 부회장이 20.94%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조정호 회장은 감액 배당으로 가장 많은 배당금을 챙겼다. 조정호 회장은 2023 사업연도 배당금으로 2306억 원을 받았다. 이어 이인 회장(106억 원), 박효정 회장(98억 원), 박상환 회장(52억 원), 김영화 회장(32억 원), 허정석 회장(21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가족들도 수억 원의 배당금을 비과세로 수령했다. 박영회 상무가 13억 원을 받았으며, 김혜련 부회장 10억 원, 조효재 씨 4억 원 등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감액 배당이 오너 일가의 곳간을 채울 하나의 방법으로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대기업 총수 중 세전 배당금 액수가 가장 많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3 사업연도 배당금으로 총 3244억 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 중 55%를 소득세로 내야 했기에 그가 받은 실수령액은 1784억 원 수준이었다. 배당금에 너무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탓인지 삼성전자는 50:1 액면 분할이 이뤄진 2018년 이후 2020년을 제외하고 배당금이 연간 1400원대에 머물러 있다.
감액 배당을 실시한 기업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큼은 공격적인 배당 정책을 펼칠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기업 가치 제고나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하고 있는데, 감액 배당은 세금 없이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안길 수 있기에 주주 환원 정책 중 하나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총 주주 환원율’을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의 50% 원칙으로 하는 메리츠금융지주는 주당 현금배당금을 2022 사업연도 105원에서 2023 사업연도에는 2360원으로 약 23배 올렸다.
실제로 감액 배당은 기업 경영이나 세무 컨설팅 관련 업체들에 의해 가업 승계를 위한 하나의 절세 전략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정선아 정엘기업연구소 소장은 유튜브 채널 ‘정엘의 가업승계 연구소’에서 “감액 배당은 (가업을 승계하기 위한 모든)가능성 중 가장 큰 금액을 세금 없이 개인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일반 주주 비중이 더 많은 기업에서 감액 배당을 할 가능성은 낮다. 감액 배당 대상이 주요 출자자인데 일반 주주 비중이 너무 많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이기 때문”이라며 “오너 일가 등 대주주 지분이 높을 때는 재원 유출 효과가 적기 때문에 소수의 대주주만 존재하는 지배 구조일 때 감액 배당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감액 배당이 상시 배당 정책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낮다. 감액 배당에 활용할 만큼 재원이 충분한 기업이 많지 않아서다. 신영증권은 지난 6월 21일 주주총회를 통해 자본준비금을 감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그 규모는 84억 원이었다. 신영증권이 해마다 책정하는 배당금 총액은 약 300억 원이었다. 결산 배당만을 해온 신영증권에는 금액이 부족하다. 신영증권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다.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한 자본준비금으로 결산 배당 외에 추가 배당을 하거나, 결산배당 시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한 자본준비금만큼만 비과세 적용을 할 수 있다.
게다가 감액 배당을 하기 위해 자본 잉여금을 발생시키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김우철 교수는 “오너 일가의 지분이 높더라도 자본준비금을 감액해 배당하는 부분 중 일부가 일반 주주들에게도 돌아가기 때문에 주주 친화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며 “다만 오너 일가가 의도적으로 지배 구조를 세팅해놓고 편법 증여 개념으로 감액 배당을 남용하는지 여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 주식 취득 가격은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이 포함된 것으로 가치가 형성이 되는데 자본 잉여금이 많이 쌓인 상태에서 낮은 취득가액으로 주식 증여가 이뤄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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