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향 불법 담배, 미성년자에도 유통…단속 피하려 점조직처럼 운영, 음식점 등에서 은밀하게 판매
산둥성 차오현에 사는 장 아무개 씨는 지난 7월경 아들의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민트향과 비슷했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 씨는 열한 살짜리 아들이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얼마 뒤 아들의 베개 밑에서 장난감로봇 모양의 전자담배를 발견했다. 그때까지도 장난감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진짜’ 전자담배였다. 장 씨는 “냄새가 계속 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전자담배를 보고도 장난감으로만 생각했다”고 전했다.
장 씨 아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 몰래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몇 번 이용했다고 털어놨다. 장 씨는 “아들이 용돈을 모아서 전자담배를 샀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초등학생들에게 담배를 파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장 씨는 즉시 차오현의 담배전매국에 신고했다. 담배전매국은 공안과 합동으로 진상조사에 나섰다. 장 씨의 아들이 전자담배를 구매한 곳은 차오현의 작은 마트였다. 동네에서 이 마트는 미성년자들의 담배 판매처로 이미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공안은 이 마트에서 수년간 다량의 과일향 전자담배가 판매된 사실을 발견했다. 확인된 것만 2000만 위안(38억 원)어치가 팔렸다. 이 전자담배는 당국에서 허가받지 않은, 위조되거나 불량 제품으로 드러났다. 향과 맛이 좋아 미성년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자칫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공안은 마트 운영자 전 아무개 씨를 검거했다. 또 과일향 전자담배를 증거로 압수했다. 전 씨는 조사에서 “위챗, 인터넷 카페 등에서 전자담배를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이것을 마트에서 팔았을 뿐”이라고 했다. 공안은 전 씨의 휴대전화, 인터넷 접속 기록 등을 토대로 전자담배 판매처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이 아무개 씨가 메신저 위챗 단체 채팅방 등에 전자담배와 관련된 광고물을 대거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의 주 활동지는 차오현이었다.
공안은 이 씨를 소환했다. 이 씨는 “나는 류 아무개 씨로부터 전자담배를 전달받아 구매자에게 전해주는 일만 했다”고 말했다. 공안에 출석한 류 씨 역시 자신은 SNS를 통해 전자담배를 받아, 이 씨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공안은 불법 전자담배 일당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점조직처럼 운영됐던 것으로 판단했다.
공안 관계자는 “여러 진술, 자금 흐름 등을 보면 이 씨와 류 씨는 밑바닥의 유통책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는 불법 전자담배를 공급하고 있는 조직적인 일당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안은 추적 끝에 광둥성 후이저우가 일당의 근거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수십 명의 용의자를 체포한 데 이어, 후이저우에 있던 담배 공장을 압수수색한 뒤 폐쇄했다. 공안은 제조소에서 불법 전자담배 1만 4000개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압수된 전자담배는 총 5만 개에 달한다.
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전국적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곳은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각지에서 불법 전자담배를 팔다가 적발됐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샹산현 공안은 최근 지역 음식점들이 손님들에게 전자담배를 팔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이 팔고 있는 전자담배는 라벨이 없는, 불법 전자담배였다. 공안은 담배전매국과 함께 은밀히 조사에 나섰고, 많은 음식점들의 불법 행위를 발견했다.
샹산현의 한 음식점 주인 장 씨는 “국가가 금지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윤이 워낙 많이 남아서 그런 짓을 했다. 단골손님들에게만 팔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음식점은 전자담배로만 지난 2년 간 20만 위안(3800만 원)을 벌었다. 샹산현은 음식점에 담배를 공급하고 있던 한 창고를 급습해 1만 1000개의 전자담배를 압수했다.
샹산현 공안은 일당의 우두머리 격인 진 아무개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진 씨가 소유하고 있던 창고에선 과일향 전자담배 4만여 개가 나왔다. 추정가로는 300만 위안(5억 6000만 원)가량이다. 공안 측은 “이 전자담배엔 그 어떤 설명이나 그림이 없다. 무라벨이고, 과일향이 난다. 또 가격도 싸다”면서 “미성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귀띔했다.
공안이 압수한 전자담배들에 대한 감정을 해본 결과, 위조품이거나 불량품이었다. 성인들에게는 물론,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겐 나쁜 영향이 불가피하다. 앞서의 공안 관계자는 “허가를 받지 않고 판매되는 전자담배 대부분 심각한 안전 위험이 있다. 국가 의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격이 저렴하고, 미성년자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잘 팔린다”면서 “사건은 이제 시작이다. 뿌리 뽑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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