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여권 내의 갈등을 보면 이렇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박단 전공의협회 회장을 비공개로 만났는데,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통령실은 한동훈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재논의를,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을 ‘하지 말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도 한다.
물론 정부의 취지는 잘 알고 있고, 필자도 의사 수 증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먼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현재 의대 재학 중인 학생들의 유급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의대 재학생들의 유급은 거의 확정적이라는 상황 변화를 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유급된 의대 1학년 학생들에 1500명 증원된 상태에서의 신입생까지 더해져 수업을 받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의대 1학년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두 번째로, 처음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공의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전공의들이 아직도 현장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현재 응급실과 암 병동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가 다시 만연하고 있는 상황도 문제다. 결론적으로 의대 증원을 처음 추진했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인데,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한동훈 대표도 이런 이유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대표의 이런 입장에 ‘정치적 해석’을 하면서, ‘윤-한 갈등’이 다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 원래 8월 30일로 예정됐던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찬이 추석 이후로 미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은 추석 민생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만찬을 미뤘다고 말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국민의힘 워크숍에 불참했다는 점도 ‘윤-한’ 갈등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등장했다. 이재명 대표는 한동훈 대표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이 대표가 이런 입장을 표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의정 갈등 문제로 대다수의 국민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의정 갈등과 관련한 행보는 이 대표 자신의 민생 행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이유는, 해당 사안과 관련해 한동훈 대표의 입장에 동조함으로써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사이의 틈을 더 벌려놓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 대표는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 등을 통해 소통 이미지와 민생을 위한다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윤 대통령과는 뚜렷한 전선을 만들어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는 분석이 많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재명 대표는 의정 갈등 국면에서 본의 아니게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동훈 대표는 곤란한 입장에 처해진 것일까. 당장은 곤란한 입장에 처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선 도전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종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국민의 불안감과 관련해 정부와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대선 후보 가능성이 큰 한동훈 대표의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고, 지나치게 낮은 지지율의 현 정권과의 차별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듯 의정 갈등은 그 성격이 변해, 정치판을 흔들 수 있는 요소가 돼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격이 변했든 아니든 해법을 찾아 하루빨리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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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