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의 재량 커졌지만 어느 정도 의지 보일지 우려…다양한 유형의 피해자들 포괄 어렵다는 지적도
#‘LH 매입·임대’가 핵심 골자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8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6월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된 후 1년 2개월 만의 개정안 입법이다. 지난 5월 말 21대 국회에서 의결된 개정안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지 석 달 만이다. ‘선구제 후회수’ 조치가 핵심이었던 지난 개정안과 달리 이번에 여야 합의로 통과된 개정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가 핵심 골자다.
개정안에 따르면 LH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로부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경매 등을 통해 피해주택을 낙찰받을 수 있다. 해당 주택의 감정가액과 낙찰가액의 차익(경매차익)을 피해자에게 지급하거나 공공임대로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최장 20년까지 피해주택 거주권을 보장하기로 하고 피해자가 이사를 원할 경우 ‘전세 임대’를 지원하기로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인정범위도 확대됐다. 피해자 인정 요건인 임차 보증금 한도 기준이 현행 최대 5억 원 이하에서 7억 원 이하로 상향됐고 대항력이 없는 이중계약 사기 피해자 등도 새롭게 피해자 인정범위에 포함됐다.
LH의 주택 매입 기준도 완화될 전망이다. LH의 경우 주거용 주택이 아니거나 불법건축물, 지하나 최저주거면적 미달 주택처럼 임대주택으로 활용이 불가능한 주택의 경우 매입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2023년부터 다중주택 매입을 중단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다중주택은 단독주택(독립된 세대가 생활하는 건물 전체를 하나의 주택으로 간주하는 유형) 중 각 실별로 욕실은 설치할 수 있으나 취사시설은 설치하지 않아 독립된 주거 형태를 갖추지 못한 주택을 뜻한다. 최근 서울 관악구·동작구에서 터진 수백억 원대 전세사기 피해자들 대다수가 다중주택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매입임대주택 업무처리지침 6조(기존주택등의 매입기준 등)에 따르면 다중주택도 공공주택사업자가 매입할 수 있는 대상인데 정작 ‘공공주택사업자의 전세사기피해주택 매입 업무처리지침’에서 누락되면서 피해자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며 “최근 국토교통부에 해당 지침을 개정해달라고 건의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LH 관계자는 “다중주택은 특별법 개정 이후 양성화 조치와 리모델링 등을 통해 매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후속 대책 관련 정치권 논의 시급
주택 매입·임대가 개정안의 핵심 골자인 만큼 LH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LH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피해 회복 정도가 좌우되는 셈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LH가 올해 8월 21일까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매입한 건수는 총 30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 특별법 제정 이후 1년여 동안 경·공매 유예조치가 있었던 점을 고려해도 터무니없이 적은 수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기간 경매사전협의 신청건수는 1130건에 달한다.
이철빈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신탁사기 피해자들의 경우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우선매수권이 없다. LH가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지 못한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낙찰받을 만한 금액을 써내야 피해구제가 가능해지는데 그럴 만한 의지와 예산이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라며 “경기도 지역에 다수 거주 중인 외국인 피해자들의 경우 우선매수권이 보장되지만 LH에 양도는 불가능하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되면 외국인이 거주할 수 없기 때문인데 긴급 주거지원을 제외하면 피해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권리관계가 복잡한 다가구 주택의 경우 세입자 ‘전원이 동의’해야 LH가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을 수 있도록 정한 요건이 독소조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던 후순위 임차인들이 ‘과반수 동의’ 요건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최성준 경산 전세사기 피해자 공동대책위원장은 “현재 경산에서 전원동의 되는 피해주택은 단 한 곳뿐이다. 선순위 임차인들이 동의를 안 해주고 연락이 되지 않거나 임차권 등기를 하고 전출 나가버리는 경우엔 세입자들이 연락할 방법이 없다”며 “개정안의 취지는 좋지만 전원 동의 요건을 넣어버리는 순간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실태를 살펴보면 대부분 후순위 계약자들이 보증금 규모가 훨씬 커 피해 규모가 막대한데도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했다.
수원·부산 지역에 주로 분포한 다세대 공동담보 피해주택 역시 피해구제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세대 주택의 경우 구분 등기가 되어 있는 단독주택을 뜻하는데 건물 전체나 건물을 층별로 나눠서 공동담보를 잡아놓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선순위 채권자인 은행이 임의경매 개시를 요청하면 개별적으로 경매가 진행이 되지만 사건 번호가 하나로 묶인다. 결국 공동담보된 물건이 다 처분된 후 경매가 종료되기 때문에 한 세대라도 낙찰이 안 되면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피해자들이 일괄매각을 통해 LH가 통매입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특별법 개정안에 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수·승강기 운행 중단 등 건물관리와 관련해서는 임대인과 연락이 두절됐거나 소재를 알 수 없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우에 한해 공공위탁관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재량이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근 변호사(세입자114 운영위원장)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본문에 다가구·다중주택을 명시적으로 꼭 포함해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요청했는데도 결국엔 포함이 안 됐다. 관리가 안 된 하자 주택의 경우 입찰자가 나오지 않아 경매 낙찰이 불발되면 LH 매입·임대를 통한 피해 회복이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라며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라고 개정됐기 때문에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일부 지역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 실무자들과 면담했을 때 분명한 권한과 예산이 반드시 명시돼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는데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박효주 참여연대 주거조세팀장은 “이번에 여야 합의로 법 개정이 됐는데 더 늦기 전에 개정안이 나온 점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만 피해자 분들의 유형이 워낙 다양해 요구안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 아쉽다고 평가할 수 있을 거 같다”며 “개정이 됐어도 여전히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분들도 많고 피해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야가 빠르게 후속 대책들과 관련한 논의도 이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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