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환된 D구역서 각종 발암물질 검출…국방부 등 주무 부처 비용 청구 미온적 “미군이 책임져야”
#캠프 마켓 반환은 완료
대한제국 시기 캠프 마켓 부지 대부분은 민영환의 소유였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제국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민영환은 이에 항의하며 자결했다. 민영환이 자결하자 부지는 송병준 소유가 됐다. 송병준은 ‘정미칠적’ 중 한 명이다. 정미칠적은 군대 해산과 내정권 장악 등을 골자로 한 불평등 조약인 ‘정미7조약’ 체결에 앞장선 인물들을 일컫는 말이다.
1920년대 들어 일본제국이 이 부지를 매입했고, 1939년 육군조병창이 설치됐다. 일본제국은 부평구를 조선총독부가 있는 경성과 항구가 있는 인천 사이의 요충지로 판단했다. 미쓰비시제강 등 전범기업들이 군수공장을 운영하며 조병창에 무기를 납품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이 때문에 부평구에는 ‘미쓰비시 줄사택’ 등 강제동원 관련 유적지가 다수 발견됐다(관련기사 [단독] 휘갈긴 ‘철거예정’만 을씨년스럽게…일제 강제동원 국내 유적지 방치 실태).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이 이 지역을 접수했고, 미육군군수지원사령부를 설치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천 지역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반환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결국 2002년 전국 미군기지를 재배치하는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캠프 마켓이 포함돼 미군 기지 이전이 확정됐다.
2019년 12월 11일 문재인 정부는 인천 부평 캠프 마켓, 동두천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 강원 원주 캠프 이글과 캠프 롱 등 2008~2014년에 폐쇄된 미군기지 4곳에 대한 반환 합의를 완료했다. 이때 캠프 마켓(44만 5921㎡)은 A(10만 9961㎡)·B(10만804㎡) 구역만 반환됐다. 가장 빨리 돌려받은 C 구역(5921㎡)은 같은 해 8월 반환이 결정됐다. 가장 넓은 D 구역(22만 9235㎡)은 2023년 12월 20일 반환 합의가 이뤄졌다.
미군이 부지를 국방부에 반환하기 전인 2013년 인천시와 국방부는 미리 ‘주한미군 반환 공여지 관리·처분 협약’을 체결했다. 인천시는 10년에 걸쳐 국방부에 토지 매입비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인천시는 국방부에 4915억 원을 지불했다. 이는 2009년 시가 행정안전부 승인을 받은 ‘캠프 마켓 발전종합계획상 토지 매입비’를 토대로 산정한 액수다.
그러나 국방부는 ‘부지 반환 후 감정평가, 확정·정산’이라는 협약 내용을 근거로 다시 토지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방부는 오염정화 작업을 마친 뒤 진행되는 최종 토지매매계약 체결 시점에 감정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국방부는 국유재산법 시행령에 감정평가 후 1년 안에 매매계약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들고 있다.
반면 인천시는 반환 결정이 난 2019년 12월을 감정평가 산정 기준으로 본다. 다시 평가해야 하더라도 빠른 시일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평가 시점이 늦어질수록 매입비용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시일을 앞당기기 위해 국방부에 ‘매각대금 산정방법 확인’을 위한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정화 비용, 미군 부담 ‘제로’
문제는 환경 정화비용이다. 캠프 마켓 부지 토양과 지하수에서 기준을 초과한 수준의 다이옥신, 벤젠,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 납 등의 오염물질이 검출됐다. 이는 유류저장시설 노후화나 송유관 파손에 따른 기름 유출 등 관리부실로 오염물질이 토양에 스며들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B 구역의 경우 2016년 환경부 토양오염 기초조사에서 오염이 확인되지 않았던 곳인데, 새롭게 오염이 발견됐다. 정부 조사에 잡히지 않은 오염지역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가장 최근 반환된 D 구역도 오염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6일 인천녹색연합이 공개한 환경부 D 구역 위해성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비소와 다이옥신 등 17개 물질이 ‘발암위해도’ 기준치를 초과했다. 발암위해도는 사람이 오염물질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을 말한다. 기준치는 100만 명당 1명 이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토양에 있는 비소 발암위해도는 100만 명당 21.8명이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이옥신은 100만 명당 7.88명, 6가크롬은 100만 명당 1.42명으로 기준치를 초과했다.
정부 추산치보다 더 많은 정화비용이 발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A·B 구역 반환 당시 정부는 정화비용으로 총 848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인천녹색연합이 관계 부처 실무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지금까지 소요된 비용만 1000억 원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D 구역은 현재 국방부가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정확한 정화비용이 나오지 않았다.
인천녹색연합은 2월 6일 보도자료에서 “외교부와 국방부, 환경부는 정화책임을 (책임자인) 주한미군 측에 부담시키는 것은 물론 안전하고 깨끗하게 정화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미군이 오염 정화비용을 부담한 사례는 없다. 미군은 1966년 7월 9일 조인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근거로 정화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SOFA 제4조는 ‘합중국(미국) 정부는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 합중국 군대에서 제공되었을 당시의 상태로 동 시설과 구역을 원상회복 또는 보상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미국의 과실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도 전체 비용의 75%만 지불한다. 나머지 25%는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 이 같은 조항 때문에 SOFA는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1년 한국과 미국은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인간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만들었다. 미국은 최근 3~5년 내 발병이 확실한 수준의 오염이 KISE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국내법 등을 근거로 ‘지난 70년간 10만 명당 1명이 암에 걸리는 수준’이 기준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는 ‘공동환경평가절차(JEAP)’가 체결됐다. 한국은 국내 토양환경보전법이 아닌 미군이 제시하는 ‘기본환경정보’에 따라 조사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장 조사는 면적과 환경오염 수에 따라 20~150일 동안만 가능하다. 미국은 군 기지를 폐쇄할 때 6년 동안 환경 조사를 한다. 관련 정보는 한미 양국이 합의해야 공개할 수 있다. 현재 미군기지 환경평가 자료가 대부분 비공개 상태다. 이 때문에 JEAP는 협상에서 한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가 조성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17년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첫 적용 대상인 부산 하야리아 캠프 환경조사(2009년)는 85일 동안 진행됐다. 2006년 조사 때는 849개 지점에서 토양 시료 3532개를 채취했지만, JEAP가 체결된 다음인 2009년 조사에서는 321개 지점에서 952개 토양 시료만 채취할 수 있었다. 당시 주무 부처인 외교부·환경부·국방부는 오염 면적이 전체의 0.26%라고 발표했지만, 기지 반환 뒤 발견된 오염 면적은 전체의 17.96%였다. 3억 원으로 추산됐던 비용은 실제로는 143억 원까지 치솟았다. 2022년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정부는 2246억 원을 정화비용으로 썼다.
미국이 정화비용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한국 정부는 ‘선 반환 후 비용 청구’로 기조를 바꿨다. 2019년 캠프 마켓 A·B 구역 반환 때 정부는 환경 협의 단계를 건너뛰었다. SOFA에 따르면 반환조건과 시기를 협의한 다음 환경 협의를 해야 한다. 정부는 방치된 미군 기지에서 오염이 확산될 수 있고, 지역의 개발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미군 기지가 들어서기 전 토양 상태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도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얼마만큼 환경을 오염시켰는지 비교할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캠프 마켓의 경우에도 부지를 반환한 미국이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견해다. 인천녹색연합은 미온적인 정부 태도도 꼬집었다. 앞서 2016년 기지 오염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소송 때 외교부 당국자는 인천녹색연합 측에 소송을 취하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녹색환경연합은 외교부와 국방부 앞에서 시위와 의견서를 전달했지만, 단 한 차례도 답변이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그동안 미군기지 환경 정화비용을 상세하게 얼마만큼 분담금을 (내기로) 협의했다는 내용이 한 번도 나온 적 없다. (비용 청구가) 제대로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부가) 외교 관계를 고려했을 때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캠프 마켓 오염 정화 담당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이 담당하고 있다. 미군과의 협의는 시설제도과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요신문은 9월 4일 국방부 측에 미군에 환경 정화 비용을 청구한 바 있는지 문의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인천시 캠프 마켓 홈페이지에 따르면 A 구역은 지난 6월 환경 정화가 완료됐다. B 구역은 조병창병원 건물 등에 대한 정화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D 구역은 2024년 토양정밀조사를 실시한 뒤 2025년부터 공원 용도에 적합한 기준으로 정화될 계획이다. 인천시는 이 부지에 역사공원 등 문화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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