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서울여대에서 열린 걸투(Girl Two) 콘서트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 서울 금천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청년캠프 출범식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 추곡쌀 도정현장을 찾은 안철수 후보.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사진제공=문재인, 사진제공=안철수 |
하지만 공약을 접한 국민들이나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이미 과거나 현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거나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기됐던 정책이 버젓이 새로운 공약으로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재원마련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도 선심성 공약만을 내세우고 있어 부도수표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분량은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을 발표하며 차기 정부의 7대 비전과 25개의 정책과제 및 850여 개에 달하는 실천과제를 공개했다. 기존에 발표했던 정책과제에 15개의 신규 공약이 추가된 것으로 44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후보 역시 5대 핵심 과제를 24개 분야별로 정리해 그동안 발표했던 공약에 새로운 내용을 보태 종합공약을 완성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먹을 것 없는 잔치’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실천과제는 제시하지 않고 아이디어에 불과한 공약이 판치고 변화를 강조하던 모습과 달리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는 평이 이어졌다. 두 후보의 종합공약에 맞서 연일 새로운 공약을 발표하던 박근혜 후보 역시 이러한 비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 복지정책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대선후보 모두 재원 마련은 생각지 않고 지나치게 복지정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선 세 후보가 공통으로 공약한 0~5세 무상보육 정책 및 보육료 지원에 대해서는 현 정부에서도 시도한 부분이나 적잖은 부작용으로 내년부터 폐지되거나 대폭 개정할 예정이다. 게다가 무상보육은 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도 필요한 부분인데 벌써부터 지자체들은 ‘절대 불가’ 방침을 내놓으며 대립하고 있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정부 지원 확대가 없다면 내년도 보육 예산 추가 분담금 930억 원을 예산에 반영할 수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지방 재정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보육을 운운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공립보육시설 확대도 마찬가지다. 안 후보와 문 후보는 각각 국공립보육시설을 이용 아동의 30%, 4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공립보육시설 확대는 지난 2002년 노무현 후보도 주장했던 내용으로 이 역시 지자체의 재정적 협조가 뒤따르지 않아 실현되지 못했다.
의료복지 공약도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는 국고 지원으로 ‘연간 치료비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약속했으며 안 후보는 국민건강보험제도 개선을 통해 본인부담률을 낮출 것을 공약으로 내놨다. 박 후보도 건강보험 보장성을 80%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문 후보와 안 후보는 기초노령연금을 2017년까지 두 배로 올리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는데 이것도 이명박 정부에서 실패한 정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공약만 실현되면 우리나라는 무상의료국가나 다름없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문제는 현재 예산이 그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큰 틀을 뜯어고치기보다는 세부적인 문제 해결을 통해 점진적인 복지확대가 더욱 현실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 과학기술나눔마라톤축제 개회식에 안철수, 문재인, 박근혜 후보가 나란히 참석했다. 박은숙 기자 |
문 후보는 ‘피에타 3법’으로 맞섰다. 이자제한 및 불법추심을 금지하기 위해 이자제한법, 공정대출법, 공정채권추심법 등을 제정해 채무자 중심으로 가계부채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압류가 금지되는 ‘힐링통장’ 1인 1계좌 개설을 허용하고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했더라도 채무자의 주택을 임의로 경매하는 것을 금지해 최소주거권을 보장하기로 했다. 안 후보도 2조 원 규모의 ‘진심 새출발 펀드’를 조성해 개인파산·회생제도의 합리적 개선 및 신용불량자 거래제한 기간을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 등의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세 후보 모두 가계부채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선심성 공약만 내세우고 있다. 현실적으로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할 방법도 없으며 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응급처지에 불과하다”며 “또한 세 후보가 말한 고금리 대출의 저금리 장기상환형 대출로의 전환은 이미 이번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며 안 후보의 깡통주택 채무 재조정에 관한 것도 일부 시중 은행에서 도입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관련 공약도 말뿐인 돈 놀이에 불과하다. 세 후보 모두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전세 대란에 대한 해결책을 내놨으나 아무도 재원 조달책은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철도 용지를 활용한 장기임대주택 건설은 이미 2010년 서울시가 검토했다 사업 효율성이 떨어져 폐기한 정책이며 문 후보의 임대등록제 전면 실시도 집주인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바 실현가능성이 낮다.
주거복지연대 남상우 사무총장은 “서민생활 안정 도모를 위해 세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은 바람직하나 아이디어에 불과한 공약이라는 것이 문제”라며 “예산과 인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세 후보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가 개입해 공공의 영역에서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지 시장(민간)을 활성화해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다”고 평가했다.
# 일자리공약
일자리정책도 꼼꼼히 살펴보면 현실성이 부족한 공약들로 가득하다. 박 후보는 해외 취업자를 대폭 확대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으나 이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청년리더 양성사업’과 상당히 유사하다. 더욱이 해당 사업은 진행과정에서 단발성 취업, 절대적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해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 후보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직원 300명 이상 대기업에 3% 청년고용의무할당제 적용 등의 정책도 기업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공약이다. 이미 수차례 유사한 정책 시행을 계획했으나 실제 일자리 개선 효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비중도 2017년까지 30%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아 실현가능성은 미지수다. 안 후보 역시 기업과의 협조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생산해내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진 못하다.
앞서의 경실련 관계자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눈다는 것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불황에 다들 허덕이고 있는데 누가 쉽사리 협조하려 하겠느냐”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지 않는 이상 일자리 해결은 불가능한 일인데 후보들은 이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각 분야 표심잡기용 공약
이처럼 주요 공약에서뿐만 아니라 곳곳에 표심을 노린 ‘공염불’ 공약이 판치고 있다. 경찰의 처우 개선을 위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인력증원 공약과 안 후보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매 대선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나 예산부족으로 번번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세 후보 모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리고 과징금 부과 및 부당이득 환수 등의 철저한 법적처벌을 공약했으나 이 역시도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벌어진 일이라 쉽사리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안 후보의 국회의원 정수 100명 줄이기와 문 후보의 반값등록금 실현도 대통령의 뜻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라 실현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광재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어느 나라 선거든 그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공약을 내놓기 때문에 재탕, 삼탕 공약이 나올 수 있어 그 자체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거 때만 공약을 내놓고 막상 실천을 하지 않아 매번 비슷한 공약이 되풀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대다수의 공약은 재원마련이 관건인데 세 후보 모두 이 부분은 입을 다물고 있어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재수생이나 마찬가진데 아직까지 종합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박 후보만 정책과 공약 이행에 대한 질문서에 답하지 않고 있는데 답변서가 오는 즉시 후보 간 상호검증을 통해 실현가능성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