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그룹과 조희팔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광준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13일 특임검사팀이 있는 서울서부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에 경찰은 ‘제 식구 감싸기 꼼수’라고 비난하며, 내사 사건이 아니라 특임검사 임명 전 검찰에 정식으로 수사 개시를 통보한 사건이라고 맞섰다.
일단 김황식 국무총리의 중재로 경찰이 한 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겉으론 특임검사팀의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속내는 다르다. “경찰이 할 건 하겠다”는 분위기다. 검찰도 다른 때와는 달리 경찰의 행보를 상당히 의식하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이 이번 수사를 벼르고 있는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경찰이 김 검사의 비리 첩보를 파악한 건 조희팔 씨 측근을 추적하면서부터다. 2009년 중국으로 도피한 조 씨의 자금관리 담당 강 아무개 씨가 평소 지인들에게 “김 검사가 주식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고 말한 게 정보망에 포착된 것이다. 경찰이 내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김 검사의 차명 계좌가 발견됐고, 유진그룹 측이 6억 원, 강 씨가 2008년 5월경 2억 원을 이 계좌로 입금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이 본격적으로 김 검사 차명 계좌에 입금된 자금의 성격을 추적한 건 분명 비리 혐의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지만, 검찰에 대한 견제 목적도 있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경북 지역 경찰서의 한 간부급 관계자는 “올해 초 검경 수사권 조정 협의가 끝나고 난 뒤에 검찰이 경찰을 ‘코너’로 자주 몰았다”며 “경찰 내사 사건 지휘는 물론이고, 특히 경찰이 검찰 지휘를 받지 않고 피의자를 불구속 송치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사해, 피의자를 구속시킨 후 경찰이 엉터리 수사를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인 경우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경찰의 수사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그런 상황에서 검사 비리의 정황이 걸렸으니, 수사팀 입장에선 제대로 수사해 검찰로 송치해 반응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을 것”이라며 “본청 지능범죄수사팀이 직접 사건 내사에 속도를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대검찰청은 지난 9월 전국 일선 지방검찰청에 경찰이 검찰의 신병 지휘 없이 피의자를 불구속 처리해 송치한 사건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대전지검은 고객 대출 서류를 위조해 대출금 1억 원을 가로챈 은행 직원을 구속하면서 경찰이 불구속 처리한 사건 등 5~6건을 보고했고, 대구지검은 대구 남부경찰서가 10대 여고생을 성폭행한 피의자를 검찰 지휘 없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며, 대구 관내 경찰의 막연한 수사와 송치 실태를 대검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경찰 수사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지휘권 발동을 독려하라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이런 행보가 경찰의 검사 비리 수사를 상당히 자극했다는 것이다.
김황식 국무총리 중재로 ‘일보후퇴’한 경찰은 일단 특임검사 수사와 겹치지 않는 범위에서 김 검사 수사를 계속 진행할 방침이다. 이미 검찰엔 자금 추적을 위해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고, 금융정보분석원(FIU)엔 김 검사의 고액 거래에 대한 자료 제출도 요청한 상태다. 검찰과는 별개로 사건 전체에 걸친 자금 흐름을 꿰뚫어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특임검사팀이 수사 선상에서 제외하거나 검찰에겐 다소 민감한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 수사를 벌일 것으로 전해졌다.
유진그룹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김 검사가 이 회사 내사를 한 적이 있는지 자체 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2008년 서울지검 특수2부에서 수사한 KTF의 임원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부분과 관련해서도 당시 특수3부장이었던 김 검사의 수사 편의가 있었는지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여차하면 김 검사가 받은 돈의 직무 연관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당시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들도 경찰이 조사 선상에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조희팔 씨에 대한 검찰의 사건 지휘나 수사 과정을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 씨와 접촉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경찰로부터 몇몇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의 연루 정황을 경찰이 파악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3부는 지난 9월 조희팔 사기 사건의 공범인 최 아무개 씨(55)와 K 씨(44)를 추가 기소했다. 서부지검 형사2부는 대검 국제협력단과 공조해 5월 두 공범을 중국에서 체포했다. 이와는 별개로 대구지검 특수부는 2009년 5월경 조희팔 씨와 측근들을 중국에서 만나 접대와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현직 경찰관을 구속 기소했다. 경찰은 이 같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의문스러운 대목을 자체 분석하고, 경찰에게 뇌물을 건넨 핵심 공여자들을 찾아 다른 자금 거래가 있는지 파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