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 명칭은 대외 기만 목적, 현장 공작 아닌 공작망 선진화 사업…일각 하극상·보안사고 부각 아쉬움
국군 정보사령부를 이끄는 정보사령관 A 소장과 공작파트 총책임자인 정보사 여단장 B 준장이 충돌한 이유는 기획공작 ‘광개토 사업’ 때문이었다. 광개토 사업에서 특정 민간단체 협력 여부를 두고 사령관과 여단장이 이견을 보였다. 서로의 언성이 높아졌고, 사령관이 결재판을 집어던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블랙요원 명단 유출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시점에 둘의 맞고소전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복수 언론매체는 맞고소전 과정에서 ‘광개토 사업’이라는 기획공작 명칭이 공개됐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관련한 공작 명칭이 붙은 것은 중국 동북3성 지역에서 추진하는 대북공작 일환이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잇따랐다. 그러나 광개토 사업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대북공작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일요신문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광개토 사업은 중국에서 펼치는 대북공작이 아니라 국내에서 공작 인프라 영역 자체를 넓히는 ‘광개토’ 의미인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단체 및 민간 최첨단 정보기술 협력사 등의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CO(공작원) 활동 폭을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른바 ‘논스톱 통합 공작채널 구축’이 핵심 콘셉트다. 민간과 협력해 공작 환경에 대한 기술적 선진화를 추진하며 공작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대북공작 준비태세에 만반을 기함과 동시에 공작에 능동성과 가동성을 추가하는 목적으로 기획된 사업이라고 한다.
정보당국 한 소식통은 “정보사 내부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서 “사실과 다른 언론보도를 바로잡고 싶어도 기밀 및 보안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정보사 특성으로 인해 바로잡지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광개토 사업이 기획공작으로 소개되면서 중국 동북3성 등 현지에서 추진하는 대북공작이라는 추측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이 사업은 현장 대북공작과 전혀 무관하고, 대북공작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내실 다지기 차원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울릉도 사업’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면 이슈가 덜 됐을 것”이라면서 “사업 명칭을 붙이는 것은 이 사업이 어떤 사업인지 유추하기 어렵도록 붙여 놓은 ‘대외 기만 명칭’이기 때문에 ‘광개토 사업’이라고 중국 및 북한과 연관돼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은 너무 단편적인 부분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군 내부 소식통은 “정보사가 추진했던 광개토 사업은 영화에 나오는 첩보작전 같은 그런 현장 공작사업이 아니”라면서 “말 그대로 공작의 영역을 넓히는 차원의 ‘광개토’ 개념이며 정보사 공작파트가 자체적으로 공작망 및 인프라를 재구축하고 선진화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21세기 들어 남북관계가 해빙무드와 경색무드를 오가는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됐다”면서 사업 배경을 설명했다.
“남북관계 변화가 다이내믹하게 이뤄지게 되면, 공작환경은 그보다 더 민감하게 요동친다. 해빙무드가 되면 공작환경 자체가 ‘정보 수집’ 중심으로 이뤄지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오퍼레이션 중심 능동적인 공작 수요가 높아진다. 남북관계가 해동과 냉동을 반복하면서 정보사 공작 형태가 오퍼레이션 위주 능동적 형태보다 현장 인터뷰형 정보수집 위주로 고착됐다.”
이 소식통은 “결국 정보사 특유의 능동적 공작에 대한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면서 “능동적 공작 환경을 다시 조성하기 위한 지원공작으로 추진된 것이 바로 광개토 사업”이라고 했다.
전직 정보사 관계자는 “사실 지금 정보사 공작은 과거와 다른 ‘수동적, 단편적’ 형태를 띠고 있어 세계적인 추세와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면서 “중국인, 조선족, 북한 노동자 등 인터뷰 등을 통한 단순한 정보수집은 국가 안보와 전혀 무관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보사 존재 이유는 단편적 정보수집이 아니라, 능동적인 첩보활동에 있기 때문에 현재 시스템을 개편할 필요성이 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극단적인 오퍼레이션 위주 공작을 한다”면서 “해커부대를 사용한 가상자산 탈취, 위조지폐 제작 등 범죄행위에 직접 가담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이 아니라, 이런 공작이 우리 국가안보를 위협할 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했다.
정보사 내부 암투 과정서 가장 논란이 된 지점은 민간단체의 영외 사무실(안가) 활용이었다. 민간단체는 대부분 예비역 정보사 고위 관계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단체로 확인됐다. 취재에 따르면, 정보사 공작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도와 민간 국제 교류 확장성 및 제반 기술 협력 가능성 등을 고루 갖춘 단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특정 민간단체가 엄선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령관과 여단장이 이견을 보인 부분은 이 특정 단체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령관이 한 단체를 콕 집어 영외 사무실 사용에 대한 비토 의사를 내비쳤고, 여단장은 정보사령관이 거론한 그 단체가 공작 사업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맡은 단체라는 이유로 설득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했고 정보사 초유의 수뇌부 갈등이 촉발됐다.
이번 사태 여파로 정보사령관 A 소장은 직무배제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여전히 현직에서 임무수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보사 여단장 B 준장은 직무배제된 상태로 4~5차례 국방부 조사본부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단독] 조사도 계급순? ‘정보사령관 vs 여단장’ 맞고소전 편파수사 의혹).
취재에 따르면 B 준장은 자신의 ‘적극 행정’ 사례가 ‘하극상’이라는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는 점에 상당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 준장은 측근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기소 및 재판을 앞둔 고위급 장성 지휘관, 국방부 고위직은 현직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국가사업을 잘 해보고자 한 부분에 대해선 참작 여지가 일절 없는 것이냐’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 내부 얼마 남지 않은 공작통인 B 준장은 여단장으로 취임할 당시부터 ‘휴민트 부흥’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휴민트는 정보의 시작이자 완성이라는 점을 내부적으로 강조해온 인물이다.
정보사 안팎에선 언론 보도 등이 나오며 ‘사건 타임라인’이 뒤섞인 것에 대한 불만 목소리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령관과 여단장의 갈등이 폭발한 시점은 6월 초경이고, 여단장이 직무배제된 시점은 6월 중순경이었다. 7월 말 블랙요원 신상유출 파문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8월에 접어들며 중순 정보사 수뇌부 간 갈등이 전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실제 맞고소는 블랙요원 신상유출 파문이 보도되기 전인 7월 중순경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 갈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초점이 정보사 공작파트 기강해이 쪽으로 넘어갔다”면서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 원인과 정보사 수뇌부 갈등 원인은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 독립적인 사건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보사 내 공작파트에서는 향후 공작 보안 강화를 추진하던 과정에 있었고, 지난 몇 년 동안 붕괴에 가까웠던 공작 시스템을 재건하려고 움직였다”면서 “두 사건의 타임라인이 뒤섞이면서 ‘하극상’과 ‘보안사고’ 등 키워드가 부각된 면이 없지 않다”고 바라봤다.
일요신문은 ‘광개토 사업’ 및 수사 관련 내용에 대해 문의하려 B 준장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B 준장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B 준장 측 법률대리인은 “그간 언론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면서 “국가기밀과 연결될 수 있는 사건의 특성 상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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