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소득대체율 44~45% 사이에서 어떤 결단이든 충분히 열려있다”고까지 밝히면서 합의가 임박한 듯했다. 그런데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만으론 부족하다며 구조개혁을 주장했다. 국민의힘도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며 입장을 바꾼다. 민주당은 당장 급한 모수(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만 손보자고 주장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거부했다. 결국 21대 국회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은 이뤄지지 못했다.
연금 구조개혁을 주장하던 정부가 9월 4일 마침내 안을 내놨다. 지난 8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예고편을 공개한 지 6일 만이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주장하던 것보다 2%p 이상 덜 받는 안이다. 현재의 소득대체율 목표 42%와 같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연금재정 여건이 나빠지면 법 개정 없이 가입자수와 기대여명 변화에 따라 소득대체율을 임의로 낮추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안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의무가입상한연령을 59세에서 64세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종합하면 더 오래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방안이다. 의무가입상한연령을 높이려면 현재 60세인 정년을 연장할 필요가 커진다. 60세가 정년이면 의무가입연령을 높여도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여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은 노동계의 요구이지만 재계는 거세게 반발하는 문제다.
국민연금 제도 변경은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 압도적 과반을 가진 야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정부안에 대해 민주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부안 발표 직후 민주당은 "국민 부담은 올리고 연금은 깎겠다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런데 국민의힘의 입장이 묘하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올해 정기국회에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바꾸는 모수 변경을 하고 내년 정기국회에서 구조개혁을 시작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 5월 민주당과 비슷한 입장인데 소득대체율만 44%에서 42%로 낮아진 셈이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은 국민적 관심이 높다. 향후 여야는 물론 대통령실과 정부도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정부안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사이에 이뤄진 국민 및 전문가의 의견수렴 결과와도 차이가 크다. 국회 의석이 적은 여당이 주장하는 연금개혁 방법은 여야 동수의 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이에 따라 21대 국회에서는 특위가 꾸려졌고 공론화위원회도 만들어졌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진행된 공론화의 결과의 핵심(괄호 안은 찬성율)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각각 13%·50%(56%) △의무가입연령상한 64세(80.4%) △직역(공무원·군인·교원·사학)연금 재정부담 개선 논의(68.3%) △ (국가의) 지급보장 명문화(92.1%) △사전 국고투입(80.5%) 등이다.
이번 정부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공론화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의무가입연령 상한은 검토대상 주제일 뿐 구체적인 추계는 없었다. 직역연금 제도는 언급이 없었고,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찬성이 높았던 사전 국고 투입은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국가의 지급보장 명문화는 현행법에서도 국가가 존재하는 한 법령에 따라 지급되니 연금 지급은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국민연금법 제3조의2).
현행법으로도 연급 지급은 보장되지만 청년 세대 신뢰 확보를 위해 국가의 지급보장 근거를 명확히 해주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정부는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연금개혁과 동시에 관련 법률개정을 추진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정부안의 법제화가 전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연금법에서 국가의 책무는 정부의 지급보장 또는 지원을 의무화한 직역연금 관련 법령과는 그 내용이 뚜렷하게 다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연금부담금을 충당할 수 없는 경우 그 부족한 금액을 대통령령에 따라 부담하여야 한다”(공무원연금법 제 71조) “이 법에 따른 급여에 드는 비용을 기여금 및 부담금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부족한 금액을 국가에서 부담한다”(군인연금법 45조) “법률 또는 제도적인 사유로 이 법에 따른 급여를 기금으로 충당할 수 없을 때에는 국가가 그 부족액을 지원할 수 있다”(사학연금법 제53조의7).
한편 정부가 야심차게 주장한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폭 차등화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청년 세대가 납부한 보험료 대비 소득대체율이 낮다며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속도도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세대 구별 기준이 애매한 데에 있다.
정부안은 세대별 대표 연령을 각 나이대의 시작으로 정했다. 40대면 40세다. 39세가 40세가 되어도 30대 인상 스케줄이 적용된다. 2025년부터 시행된다면 1976년생은 8년 후인 2033년 13%에 도달한다. 단 한 살 많은 1975년생은 불과 4년 후인 2028년 13%에 도달한다. 단 며칠 사이의 출생일에 따라 수년간 보험료 부담이 달라지는 셈이다. 정부는 2026년부터 시행 의지를 밝혔다. 야당 반대로 가능성은 낮지만 정부안대로 법제화된다면 1976년생, 또는 1977년생이 경계에 설 수 있다.
정부 추진계획 의견수렴 제대로 거쳤나
정부가 4일 발표한 연금개혁 추진계획에는 눈길을 끄는 조사 결과가 담겼다. 의견수렴, 노인가구 인터뷰, 온라인설문조사, 전문가 자문 등이다. 그런데 조사방법과 대상 등이 불분명해 논란이 예상된다.
먼저 의견수렴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청년·중장년 현 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심층면담과 간담회 등을 8차례 실시한 결과라고 밝혔다. 인원이나 연령별 구성은 밝히지 않았다. 결과는 노후소득 강화였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은 소득대체율이 사실상 현재 수준 이하다. 의견수렴에서 국민들은 청년은 세대 간 형평성을, 중장년은 개인별 소득수준 고려를 언급했다. 이번 안에 개인별 소득수준을 고려한 내용은 없었다. 노인가구 인터뷰는 도시 9곳, 농어촌 3곳 등 고작 12곳이 전부였다. 대상이 작았지만 노후 실질소득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은 한결같았다.
온라인설문조사는 8월 16일부터 29일까지 전국 20~59세 국민연금 가입자 281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결과를 보면 △개혁의 방향성은 (재정)지속가능성 52%, 노후소득보장 강화 45%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찬성 67.4%, 반대 33.2% △세대간 보험료율 인상 차등은 찬성 65.8%, 반대 34.2%다. 21대 국회 공론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답변(57%)이 가장 많았다. 세대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설문항목임에도 불구하고 설문대상의 세대별 구성은 밝히지 않았다. 개별 안건의 세대별 동의 비율만 공개했을 뿐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