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별 노동조합 한계 극복 목적…단통법 폐지 반대 등 정책 목소리 낼 전망
#"산별노조보다는 느슨한 형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통신노동조합(민주유플러스지부·희망연대본부·KT지부)은 올해 9월 중 ‘방송통신협의회’를 구성해 출범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협의회 참여 산하조직은 최종 확인과정을 거쳐 9월 11일 대표자회의에서 확정된다. 이후 9월 25일 노조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면 방송통신협의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된다. 다만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협의회 구성에서 제외된다.
앞서 LG유플러스 노조인 민주유플러스지부가 산별노조(특정 사업장 소속 노동자만 가입할 수 있는 기업별 노조와 달리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소속된 노조)로 전환했다. 지난 7월 민주유플러스노동조합은 78% 찬성으로 산별노조 전환투표를 가결시켰다. 약 1만 700여 명의 LG유플러스 사원 중 4분의 1에 달하는 2200여 명이 민주유플러스 지부에 소속돼 있다.
방송통신협의회에 참여하는 노조 한 관계자는 “방송통신협의회는 산별노조보다는 느슨한 형태로 기업별 노조가 각개대응하기 어려운 통신업계 공통의제와 관련해 조직력 있게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단체협약 같은 법적인 통로를 활용할 수 없는 여러 공통의제들을 정기적으로 함께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내 거대 통신사들이 ‘탈통신’을 표방하며 통신 영역 비중을 줄이고 비통신 영역을 늘려나가는 과정에서 통신 노동자들의 인력이 지속적으로 줄고 노동 조건이 악화하고 있는 점도 협의체 구성을 촉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통신사 ESG(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통신업계는 최근 인공지능(AI) 등 비통신 인력 채용을 활발하게 늘리고 있다. 반면 기존 설치·유지·관리·보수 등 통신 관련 인력은 신규 채용하지 않으면서 점차 외주화하는 추세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통신사들이 통신 영역은 외주화하면서, 공공자산인 주파수를 이용해 국민들에게 징수한 높은 통신 요금을 비통신 영역에 투자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통신 영역과 비통신 영역의 회계도 분리하지 않은 채 통신 투자는 점점 줄여나가고 있어 우려 사항”이라며 “이런 내용들이 파업의 사유가 될 수 없고 단체협약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은 없으니 협의회 차원에서 통신 공공성 강화와 관련해 논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노상규 민주유플러스노조 지부장은 “개별 노조의 경우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을 넘어선 사회적인 의제에 대해 발언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다수의 사업장이 모여 있는 노동조합 조직단위가 보다 대표성을 갖고 입장을 표명할 수 있게 됐다”라며 “일자리 정책과 조합원들의 고용 안정 문제까지 논의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감 앞두고 '단통법 질의서' 보낸다
방송통신협의회는 출범 직후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 반대 의사를 표명할 방침이다. 올해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각 통신사 경영진들에게 보낼 질의서를 준비 중이다.
단통법은 현재 국회에서 폐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초 정부도 단통법 전면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단말기 구매 지원금(보조금)을 사전 공시 금액보다 많이 줄 수 없도록 한 규제를 없애 통신사의 보조금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들이 더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단통법 시행 이후 통신사의 이익이 급증한 점이 단통법 폐지 논의를 촉발시킨 배경 중 하나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은 4조 4008억 원으로 집계됐다. 단통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13년 2조 8218억 원에 비해 56%가량 증가한 수치다.
보조금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진 통신사들이 아낀 마케팅 비용을 통신설비 재투자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단통법 폐지 여론을 부채질했다. 2013년 7조 1960억 원이었던 통신3사 설비투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2019년 5세대(5G) 상용화 시점에 8조 7800억 원으로 반짝 늘었다가 다시 감소 추세다.
방송통신협의회 측은 단통법 폐지에 따른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통법을 폐지한다고 해서 통신사들이 이전처럼 출혈경쟁을 통해 가입자를 유치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의 노조 관계자는 “이미 너무 독·과점화 돼 있어서 통신사들끼리 굳이 고객 뺏기 위한 보조금 경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몇몇 새로운 기종이 나올 때 단기적으로 보조금 경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가계 통신요금을 낮추는 데 전반적으로 영향을 줄 개연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통신시장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번호 이동 추이를 매일 모니터링해 시장이 과열될 경우 경고 조치하고 있다. 번호이동은 통신사 변경 가입 건수를 나타내는 수치로 경쟁 활성화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사실상 시장이 통제받고 있는 상황에서 단통법을 폐지한다고 해서 마케팅비를 과열되게 쓸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한 수준의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공시지원금이 없어질 경우 단통법 이전처럼 ‘호갱’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통법 시행 계기가 된 사건은 2012년 ‘갤럭시S3 17만 원 대란’인데 당시 통신 3사가 출고가 99만 4000원이던 갤럭시S3을 17만 원에 팔았다. 정보에 밝은 젊은 층이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장만할 때 반대급부로 노년층 소비자 등은 지원금을 아예 받지 못하고 비싼 금액으로 단말기를 구입해야 했다. 단통법이 폐지되면 다시 정보 비대칭성이 심화해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볼 가능성도 있다.
노상규 지부장은 “통신사가 민간 기업인데 단통법을 폐지한다고 해서 전 국민에게 보조금을 늘려 지급하겠느냐. 통신사들에 차라리 강하게 요금제 인하 압박을 가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도록 유도를 해야지 단통법 폐지만 하면 만사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라며 “이런 우려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협의회 출범 이후 조직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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