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서 만난 중국인 부부가 유인, 감금당한 채 몸값 2억 원 모아…“낯선 초대 응해선 안 돼”
2022년 11월 15일 쩌우펑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도착했다. 사업차 미국으로 가야 했지만 코로나19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하늘길이 모두 막혀 마닐라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닐라의 한 고급 호텔을 1500위안(28만 원)에 예약했고, 며칠 푹 쉰 뒤에 미국으로 갈 참이었다.
쩌우펑에게 마닐라는 좋은 기억이 남아 있는 도시였다. 방문할 때마다 매번 만족스러웠고, 예약한 호텔 역시 지역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곳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어긋났고, 악몽이 시작됐다. 마닐라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가려 있던 위험을 쩌우펑은 알지 못했다.
쩌우펑은 저녁을 먹은 뒤 호텔의 바에서 술을 한잔 하고 있었다. 옆자리엔 중국인 부부가 있었다. 마닐라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금세 친해졌다. 필리핀에서 오래 살았다는 부부는 마침 쩌우펑과 비슷한 전자제품 사업을 한다고 했다. 헤어질 때 부부는 쩌우펑을 집으로 초대했다. 다음 날 쩌우펑은 부부의 집에서 식사를 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1월 19일 쩌우펑은 전날 만난 부부의 남편인 A 씨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둘은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20일 새벽 2시경 A 씨는 쩌우펑을 호텔로 데려다 주겠다면서 택시를 불렀다. 차에는 운전기사가, 조수석엔 필리핀 국적으로 보이는 여성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쩌우펑은 아무런 의심 없이 A 씨와 함께 뒷자리에 올라탔다. 이것은 함정이었다. 쩌우펑이 뒷좌석에 타게끔 미리 조수석을 채워놓은 것이었다.
차가 출발하자 운전기사가 “XX 호텔로 가는 거죠?”라고 물었고, 쩌우펑은 “그렇다”고 답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쩌우펑의 목을 감았다. 쩌우펑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좌석 뒤 트렁크 공간에 숨어있던 한 남성의 짓이었다. 트렁크엔 이 남성 말고도 또 다른 남성이 같이 있었다. 쩌우펑은 구원을 요청하며 A 씨를 쳐다봤다. A 씨는 “오, 형제여” 하면서 쩌우펑의 얼굴을 가격했다.
남성들은 쩌우펑에게 안대와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줄로 몸을 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완벽하게 결박된 것이 확인되자 A 씨는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쩌우펑은 풀려날 때까지 A 씨를 보지 못했다. A 씨 역할은 쩌우펑을 유인하고, 차로 데리고 오는 것까지였다. A 씨가 나가자 다른 남자가 차에 올라 몸수색을 했고, 휴대전화와 가방 등을 가져갔다. 가방엔 현금 5만 페소(약 120만 원)가 들어 있었다.
쩌우펑은 달리는 차 안에서 자신이 납치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힌 뒤 이들과 어떻게 싸워서 풀려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차 안에서 그들은 쩌우펑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중국에서 무엇을 하는지, 또 필리핀에 왜 왔는지 등이다. 또 휴대전화 비밀번호, 호텔 방 번호, 이메일 ID와 비밀번호 등도 물었다. 쩌우펑은 신변안전을 위해 솔직히 모든 걸 말해줬다.
차는 한참을 달려 어딘가에 도착했다. 쩌우펑은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마닐라를 벗어났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쩌우펑은 밀폐된 방 안에서 매 순간 알 수 없는 공포, 절망과 싸웠다. 일당은 번갈아가며 그를 감시했고, 밥 먹을 때만 안대를 풀어줬다. 침대가 없어서 바닥에 눕거나 벽에 기대어 자야 했다. 어느 날 일당 중 한 명이 안대를 벗으라고 했고, 쩌우펑 앞엔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두목’이었다.
그는 쩌우펑에게 “너는 소다. 이곳은 외양간”이라면서 “30시간 안에 100만 위안(1억 8800만 원)을 열심히 모아라. 돈이 모자라면 10만 위안당 손가락 한 개를 자를 것”이라고 했다. 두목은 다른 패거리들과는 달리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다. 쩌우펑이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두목은 “나는 평생 중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 네가 날 알아보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쩌우펑은 “나는 당신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다. 수중에 그렇게 많은 돈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최대한 돈을 빌려볼 수는 있다”면서 일당을 안심시키려 했다. 쩌우펑이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돈을 받기 위해 메시지를 보낼 때 납치범들은 이를 모두 확인했다. 쩌우펑이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경찰에 신고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인들 중 일부는 돈을 보내줬고, 나머지는 거절했다. 몇몇은 “혹시 무슨 일이 있느냐”며 묻기도 했다. 동시에 쩌우펑은 일당들과 함께 다니며 카드로 융통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인출해서 줬다. 그들은 쩌우펑이 묵고 있던 호텔로도 사람을 보내 방에 있던 모든 현금을 가져왔다. 하지만 30시간이 됐을 때 100만 위안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자 납치범들이 쩌우펑을 무차별적으로 때렸고, 칼로 손가락을 베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쩌우펑은 어쩔 수 없이 가족들에게 연락, 돈을 받아 부족한 액수를 채웠다. 11월 21일 늦은 밤이었다. 쩌우펑은 자신이 언제 나갈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추가로 5만 위안(940만 원)을 더 보낼 것을 요구했다. 쩌우펑은 친구에게 다시 돈을 빌려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납치범들은 쩌우펑의 신용카드로 고가의 물건들을 할부로 구매하기도 했다.
납치범 일당은 몸값을 받았지만 쩌우펑을 풀어주지 않았다. 쩌우펑은 불안했다. 갇혀있는 동안 한 일당은 쩌우펑에게 이런 저런 얘기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두목은 우리와 같은 납치팀을 4개 정도 가지고 있다” “납치뿐 아니라 사기, 인터넷 도박 등 돈이 되는 것은 다 한다” 등이다. 필리핀에서는 납치가 만연해 경찰에 신고를 해도 소용없다면서, 최근 5년간 자신들이 벌였던 납치 중 실패 사례는 한 번도 없다며 과시하듯 말했다.
일당은 중국 등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필리핀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남성은 중국에서 살인을 하고, 필리핀으로 밀입국했다. 거짓 여권으로 살고 있다는 그는 비교적 친절하게 대해줘 쩌우펑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갇혀있는 동안 담배를 피우게 해줬고, 여러 번 콜라도 줬다. 그들은 주요 타깃이 중국인이라고도 귀띔해줬다. 그 이유에 대해선 “비중국인들은 말을 못 알아듣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납치범들은 쩌우펑을 풀어줄 준비를 했다. 두목은 쩌우펑의 안대를 벗긴 후 “바로 마닐라를 떠나라.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면, 경찰의 신고 유무와 상관없이 널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일당은 11월 24일 새벽, 마닐라에서 100km가량 떨어진 한 리조트 정문에서 쩌우펑을 풀어줬다. 쩌우펑 가방엔 출국에 필요한 여권과 소량의 현금만 들어있었고,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은 없었다.
쩌우펑은 즉시 택시를 불러 마닐라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차 안에서 기사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부인에게 연락, 그간의 상황을 말해줬다. 부인은 중국 경찰에 신고했다. 쩌우펑은 당시 매우 긴장된 상태였다고 했다. 휴대전화가 아직 납치범에게 있었고, 언제든 다시 자신에게 들이닥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공항에 도착한 쩌우펑은 바로 표를 구할 수 있었던 한국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인천에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쩌우펑은 중국 경찰의 노력으로 40만 위안(7500만 원)을 찾을 수 있었다. 납치범에게 돈을 주기 위해 카드사 대출을 받았는데, 아직 송금이 이뤄지지 않아 계좌를 동결했기 때문이다. 쩌우펑은 “나는 미국 비자로 필리핀에 입국해 단기간 현지에 머물 수 있었다. 그 기간이 지나면 바로 현지 대사관이나 경찰 등이 찾게 된다. 관광 비자였다면 아마 나는 살아서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또 내가 나이가 많은 것도 생환의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은 납치한 뒤 인력시장에 파는 경우도 많다더라”고 했다.
쩌우펑은 “납치범들은 중국인을 ‘걸어 다니는 현금지급기’라고 불렀다”면서 주의사항을 공개했다. 우선, 상대방이 초대한 장소는 가지 않는 게 좋다. 또 차량도 자신이 직접 예약한 것만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누군가 보내준 차를 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쩌우펑은 “직접 이런 일을 당하니, 안전은 내가 챙기고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필리핀에서 밤에 숙소를 떠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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