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최종심이 9월 5일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일요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현세 만화가가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오태엽 서울미디어코믹스 대표, 김형남 재담미디어 이사, 서찬휘 만화평론가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앞서 7월 26일 박인하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 이재민 만화평론가, 강우식 서울미디어코믹스 팀장이 1차 심사를 통해 결선에 올릴 작품을 추려냈다.
4월 15일부터 7월 21일까지 접수된 응모작 100여 편 가운데 1차 심사를 통과한 10개 작품이 결선에 올랐다. 결선 진출한 참가자들은 응모했던 작화에 이어지는 부분(3회분 안팎)을 추가로 제출했다. 이후 최종 심사를 통해 수상작 5편을 가려냈다. 심사 기준은 재미와 독창성 등이다. 수상작은 작가와 협의해 웹툰 플랫폼 연재와 2차 판권 사업을 추진한다.
심사 결과, 이동화·조라은·송혜원(필명 박팔)·김미경 작가의 ‘부동의 1위’ 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우수상에는 심효희 작가의 ‘바위와 함께 헤엄을!’, 가작 3편에는 이다영(노탄)·손이슬(온오프) 작가의 ‘너 말고 네 조상’, 허재호 작가의 ‘박살’, 김대훈 작가의 ‘웃으면 보기와요’가 선정됐다.
#대상 ‘부동의 1위’ 이동화·조라은·송혜원·김미경 작가
심사위원들은 “지난해에 비해 소재가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이 많다”며 쉽사리 수상작을 결정하지 못했다. 오랜 고심 끝에 이동화·조라은·송혜원·김미경 작가의 ‘부동의 1위’를 대상으로 선정했다. 연예계물(연예기획사 이야기)에 학원물 요소를 합친 시도가 신선했고, 그림 완성도가 제일 나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평이다.
‘부동의 1위’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싸움을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난 주인공 일행이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친구를 돕게 된 일을 계기로 전국 최고 고등학교 기획사를 차리는 이야기다. 그림은 조라은·송혜원·김미경 작가가 맡았다. 글을 맡은 이동화 작가는 제7회 만화공모전 대상(‘보일러’), 제8회 만화공모전 가작(‘디아볼릭’), 제9회 만화공모전 우수상(‘야수의 날’)에 이어서 4번째 수상이다.
이동화 작가는 “두 번째 대상을 받게 되어 너무 영광”이라며 “함께 해주신 작가님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부동의 1위’가 좋은 작품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라은 작가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작업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며 “힘들 때 서로 도우며 함께 작업하는 우리 로켓툰팀과 팀을 잘 이끌어주시는 이동화 작가님 덕분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경 작가는 “작품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대상이라는 성과로 이루어져 뿌듯하고 기쁘다”며 “작업을 함께해 준 다른 작가분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수상 ‘바위와 함께 헤엄을!’ 심효희 작가
‘바위와 함께 헤엄을!’은 10대 여성 청소년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판타지 학원물이다. 사람이 되고 싶어 수영을 배우려는 바위와 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수영 천재 주인공의 청춘을 담은 이야기다. 심사위원들은 “결핍을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며 “등장인물들을 예쁘게 표현한 그림체로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심효희 작가는 “제출 기간에 맞추느라 퀄리티가 좋지 못했다고 생각해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수상하게 돼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마음이 약해진 청소년들이 용기를 내서 꾸준히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 작품을 준비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그리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가작 ‘너 말고 네 조상’ ‘박살’ ‘웃으면 보기와요’
심사위원들은 ‘너 말고 네 조상’에 대해 “로맨스 비중이 다소 많지만, 점술과 미신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의 니즈를 잘 반영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살’과 ‘웃으면 보기와요’에 대해서는 “그림체나 표현력 등이 다소 아쉽지만 독특한 느낌이 있고 스토리 전개가 좋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너 말고 네 조상'은 귀신이 보여서 인생이 괴로운 사회초년생 주인공과 엄청난 조상신을 등에 업고 주인공 주변에 귀신을 쫓아주는 직장 상사가 서로 얽히면서 성장하는 로맨스 코미디물이다. 글은 이다영 작가, 그림은 손이슬 작가가 맡았다.
이다영 작가는 “내가 만든 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상을 받게 되어서 기쁘다. 심사해 주신 분들을 비롯해 함께 작업해 주신 이슬 작가님께도 감사드린다”며 “다음에 더 좋은 이야기로 찾아뵙고 싶다”고 밝혔다.
손이슬 작가는 “고생하신 다영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웹툰 제작 과정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웠다. 조금 더 퀄리티를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재호 작가의 ‘박살’은 평소 소심한 성격에 자신감이 결여된 주인공이 행운의 펜던트(목걸이)를 빌리게 되면서 많은 부를 쌓고 강한 성격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허재호 작가는 “학습만화 등 다른 작업을 겸하고 있다 보니 공모전 작업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웹툰 제작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웃으면 보기와요’는 서울에 전학을 와서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주인공이 태권도 천재 유망주 전학생을 만나게 되면서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학원물이다. ‘웃으면 보기와요’의 김대훈 작가는 “미스터리한 요소를 넣어보고 싶었고,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나가 보고 싶었다”며 “좋은 대회에서 상을 받게 돼서 정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심사총평] “언제나 대중은 다 꿰뚫어 본다”
올해는 연락이 오기 전부터 이즈음 심사가 있었지 않았던가 하면서 달력을 바라봤다. 그만큼 일요신문 만화공모전과 함께해 온 시간이 적지 않기 때문이리라. 심사를 위해 1년 만에 다시 만난 얼굴들이 유난히 반가웠다.
대상을 뽑지 못했던 지난해 공모전 결과는 심사위원들에게도 큰 아쉬움이고 고통이었다. 뽑을 작품이 없다는 한탄을 반복할까 걱정하며 심사장에 들어섰던 건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심정이었을 터다. 다행히도 올해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최종심에 올라온 열 작품이 장르나 스타일 면에서 각각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장인 이현세 선생께서 하신 “다양하던데? 재밌는 게 많아”란 말씀이 올해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심사위원들은 격렬한 토론을 거쳐 14회 대상 수상작으로 ‘부동의 1위’를 뽑았다. 고등학생 연예 기획 동아리로 훗날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되는 고앤고 엔터테인먼트의 시작점을 그린 이 작품은 무엇보다 K팝이 활황인 현재 국내외 웹툰 독자층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질 만한 소재와 안정적이고 깔끔한 그래픽을 보여줘 두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 출중한 재능을 지닌 고등학생 뮤지션과 그 매니저라는 구도에서 1990년대를 장식했던 굵직한 연예계 소재 만화들도 떠올라 반가운 마음이었다.
우수상으로 꼽힌 작품은 ‘바위와 함께 헤엄을!’이다. 이 작품은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와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간다는 자못 진지한 소재를 삼도천을 건너겠다며 주인공에게 수영을 가르쳐달라 조르는 바위 정령과 맞닥뜨리며 벌어지는 우당탕탕 소동과 함께 그려냈다. 물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수영 천재에 투영된 10대 청춘들의 고민과 성장이 시종일관 터지는 개그컷과 병맛 개그 등과 맛깔스럽게 뒤섞여 비교적 좋은 속도감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가작으로 뽑힌 작품은 ‘웃으면 보기와요’ ‘너 말고 네 조상’ 그리고 ‘박살’이다. ‘웃으면 보기와요’는 일진들에게 괴롭힘당하던 소년이 전학 간 학교에서 별안간 자기도 모를 상황 속에서 학교 짱이 되고 마는 반전 스토리를 담고 있다. ‘너 말고 네 조상’은 이번 최종 심사작 중 가장 여성향으로 보이는 오피스 로맨스물로 점과 각종 유튜브 괴담 채널에 관심이 지대한 근래의 젊은 층에게 먹힐 만한 소재다. 마지막으로 소심하고 지질한 성격을 지닌 회사원인 남자 주인공이 우연히 1년간 행운을 몰아주는 행운의 펜던트를 쥔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박살’은 마치 윤태호를 연상케 하는 그래픽 스타일로 행운인지 결과적 불행인지 알 수 없는 인생 게임을 몰입감 있게 보여주어 주목받았다.
이번 심사에서 수상권으로 지목된 작품들 사이의 평가 차이는 아주 크지 않았다. 그래서 고르는 데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오면서 생긴 일이기도 하여 기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균형이 좋은 작품들은 그에 맞는 평가를 받았지만, 반면 독특한 느낌에 비해 표현력이 다소 아쉬운 경우도 있고, 제출 분량 안에서 확실히 보여줘야 할 바를 오롯이 좁혀 보여주지 못했거나, 주인공에 비해 상대역이 되는 여성 표현의 입체성이 아쉬운 부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일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수상 여부를 떠나 소재를 소재만으로 생각해 클리셰의 조합으로 장면을 구성하는 경우들도 다수 보인 점은 안타까웠다.
언제나 대중은 장르적으로도 스토리적으로도 작법의 언어를 쓰지 않을 뿐 다 꿰뚫어 본다는 점을 공모전을 준비하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상한 이들 모두에게 박수를, 그리고 응모한 모두에게 감사 말씀을 전하며 내년을 기약하고자 한다.
글=서찬휘 만화평론가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