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용산과 갈등 속 ‘대안론’ 고개…오세훈 원희룡 홍준표 나경원 등 존재감 어필 분주
#한동훈 대세론, 이상 기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월 8일 국민의힘 일부 최고위원 및 수도권 중진 의원과 만찬을 함께하며 의료 개혁 등 정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여권의 전언,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수도권 중진인 윤상현 의원 요청에 따라 윤 대통령이 몇몇 의원들을 서울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약 2시간 만찬을 했다.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 아니라 당일 결정된 속칭 ‘번개모임’이었다고 한다. 인요한 김민전 최고위원, 윤상현 의원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평소 여러 채널로 당과 소통하고 있으며 관저에 정치인들이 와서 소통하는 것이 꽤 원활한 편이라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9월 8일 만찬도 그런 차원의 자리였다는 것이다. 식사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을 뿐 윤 대통령은 국회의원 등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자주 만나며 민심 청취 등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형식은 단독도 있고, 다자 구도도 있고, 식사 말고 차담 형태도 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소개했다.
그런데 9월 8일 만찬에 한 대표 및 친한계 최고위원들은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설이 많은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패싱’이라는 것이었다.
만찬 사실이 9월 9일 일부 언론에 나오면서 한 대표를 향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들이 전날 만찬 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하자 한 대표는 “나는 모르는 내용이라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만 답했다. 한 대표는 ‘대표 패싱’이라는 지적이나, ‘추석 이후로 연기됐던 지도부 만찬 일정이 확정됐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대표 패싱 논란’은 파장을 키워나갔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종혁 최고위원은 9월 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 최고위원은 “(비공개 만찬이) 다음날 아침 신문에 나온다는 게 굉장히 특이하다”며 “좋게 해석을 한다면 대통령실에서 다양하게 의견을 청취하려고 노력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고, 조금 삐딱하게 본다면 ‘추석 이전에 할 (지도부 만찬을) 추석 이후로 옮겨놓고서, 추석 이전에 (일부와) 왜 하는 것인가’ 식으로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다. 진실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후인 7월 24일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대표 경선 출마자 등을 대거 초청해 만찬을 함께했다. 이어 8월 30일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청한 만찬을 할 예정이었다가, 만찬을 이틀 앞둔 8월 28일 추석 연휴 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됐다. 연기 사유가 명확하지 않아 한 대표에 대한 용산의 감정이 묻어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었다. 한 대표가 정부·대통령실 입장과는 다른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 제안을 밝히자 용산이 만찬 연기로 맞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9월 8일 만찬에 당대표 패싱 논란이 이어지자 “향후 한 대표 및 지도부와의 만찬 일정이 추석 이후에 진행될 것”이라고 재확인했지만 정치권에선 용산과 한 대표의 관계가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져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용산과 한 대표가 융화하기 어렵다는 말이 꼬리를 물면서 여당 내부의 세력 재편이 한 대표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보수 지지층조차 한 대표를 향해 응집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 임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에 대한 지지율은 떨어지는 추세다.
뿐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확실한 원톱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대항마로서의 지위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한국갤럽이 7월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장래 대통령감 선호도를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이 대표는 22%, 한 대표는 19%를 각각 기록하면서 엇비슷한 위치였다.
하지만 한국갤럽이 9월 3∼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장래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항목에서 이 대표가 26%, 한 대표가 14%였다. 이 대표는 올라가고 한 대표는 내려간 것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보수의 핵심 지지층은 정치 고관여층이어서 보수가 분열했던 때마다 정권을 뺏기거나 선거에서 참패했던 기억을 잘 학습해왔다”며 “한 대표를 바라보는 열혈 보수 지지층은 용산과 한 대표의 관계를 보면서 한 대표가 보수 분열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강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한 대표의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장면까지 자꾸 노출되자 한동훈 대세론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신발 끈 조이는 잠룡들
한동훈 대세론이 살짝 흔들리는 사이에 여권 안팎에선 대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역대 대통령들 중에 정치 신인이 전무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구관이 명관’이 될 수 있다는 논리와 함께다.
가장 움직임이 활발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시정 현안에 대해서만 언급해왔던 그는 최근엔 정치권 이슈에도 활발하게 참전하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은 정치인의 최대 장점이 되는 개혁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최근 지구당 부활 논의가 본격화한 가운데 대표적 반대론자였던 오 시장은 연일 이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의원 시절 이른바 ‘오세훈법’을 통해 정당 지구당 폐지를 주도한 바 있는 오 시장은 9월 10일 페이스북에 ‘정치개혁, 좌표가 분명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 “최근 여야 대표가 함께 추진하려고 하는 지구당 부활은 어떤 명분을 붙이더라도 돈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며 “정치개혁에 어긋나는 명백한 퇴보”라고 못 박았다.
지구당은 지역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정당의 지역 하부 조직으로,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로 불린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계기로 존폐 논란이 불거졌다. 오 시장은 정치 개혁을 내건 오세훈법으로 지구당 폐지 논의를 이끌었고 2004년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지구당은 사라졌다.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회담을 통해 지구당제 도입에 협력하기로 했고 이후 논의가 빨라지고 있는데 오 시장은 이들을 싸잡아 저격하고 있다. 원론적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잠룡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읽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7·23전당대회 과정에서 한동훈 불가론을 내세웠다가 한 대표가 당권을 잡자 중앙정치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 대표를 향해 다시 비판의 물꼬를 트면서 몸을 푸는 모양새다. 그는 한 대표의 의사 증원 유예 제안과 관련, 9월 2일 페이스북 글을 올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굴복하는 의사 증원 유예는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정치는 말로 하는 거지만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그건 정치가 아니고 국민 기만”이라고 했다.
홍 시장은 보수 핵심 지지층을 잡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의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지난 8월 14일 박정희 광장 표지판 제막식도 열었다. 대구시는 박정희 동상을 시내에 설치하기 위한 사업도 진행 중이다.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에게 밀렸던 ‘패장’들도 잇따라 재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나경원 의원은 인구·기후 위기 대응 분야의 범국가적 정책 수립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단체를 발족, 9월 12일 국회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최근 전당대회 과정에서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다니고 있으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향후 정치적 재기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 전 장관은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9월 8일 용산 만찬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화제가 된 윤상현 의원 역시 용산과의 동조화를 잊지 않으면서도 여러 현안에 대해 빠짐없이 참전하고 있다. 국회에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유명한 윤 의원은 전국 각지에 지역 조직도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치적 무게감을 더 늘리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새 인물 선호 이어질까
정치판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최근 수년간 ‘새 인물’ 선호 현상은 갈수록 강화돼왔다. 보수정당의 경우, 2021년 이준석이라는 30대 당대표가 탄생했다. 뒤이어 2021년 말 여당 대선 경선에서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홍준표 원희룡 등의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대선 후보가 되더니 노련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권에서는 한동훈 대표가 당권을 거머쥔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본다. 과거 안철수 돌풍 등에서 목격됐듯이 새 인물 선호 현상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 인물 선호론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는 의견도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에 정치 경험이 적고 목소리만 큰 인물들이 넘쳐나면서 지금의 정치 파행을 부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는 여러 전문 분야가 중첩된 영역이고 무엇보다 다양한 정치적 경험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국회 경험이 없는 당대표나 대통령은 직무 수행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안정적 정국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험이 많은 정치인들이 적합하고 지난번 대선을 제외하고 역대 대선이 모두 그랬듯이 정치적 유경험자들에 대해 유권자들이 눈을 돌리는 구조가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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