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의 금리 인하는 2022년 3월 이후 2년 반 만이다. 0.5%p 이상 금리를 내린 것은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이다. 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데 따른 조치이지만, 빅컷은 경기 침체 대응이다. 시장은 연준이 경기 침체를 인정한 만큼 얼마나 빠르고 깊게 금리를 조절해 경제를 자극할지 주목하기 시작했다.
연준은 이번에 함께 발표한 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중간값)를 5.1%에서 4.4%로 낮췄다. 연내에 0.5%p의 추가 금리 인하가 가능함을 예고한 것이다. 내년 말 중간값은 3.4%(6월 예측치 4.1%), 2026년 말 2.9%(6월 예측치 3.1%), 2027년 말 2.9%다. 2028년 이후의 장기 전망은 6월의 2.8%에서 2.9%로 0.1%p 높였다.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지만 중앙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연 2%) 아래까지 내려갈 가능성은 낮다.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5.5%)까지 오른 기준 금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통화량(M2)는 여전히 초저금리 때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전 때보다도 많다. 미국 가계와 기업의 부채비율은 금융위기 때보다 낮은데 자산가격은 크게 오른 상태다. 2% 이하로까지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 만큼 미국 경제가 나빠질 확률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나쁘지’는 않더라도 한동안 ‘좋지 않을’ 가능성은 꽤 높다. 금리 인하는 달러화 약세를 유발한다. 수입이 많은 미국 경제 구조에서는 물가 자극 요인이다. 연준의 금리 인하 배경에는 고용지표 둔화가 있다. 고용이 약해지면 소득이 정체돼 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
1989년부터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로 방향을 튼 것은 모두 6차례다. 이후 자산가격은 어땠을까. 일단 주식은 2001년 닷컴 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모두 크게 올랐다. 6차례 가운데 한 번에 0.5%p 이상 금리를 내린 것은 닷컴 버블 때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데 연준이 경기 침체에 강력히 대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목할 부분은 채권과 금이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중앙은행의 방향 전환은 채권에 주식보다 더 높은 수익을 안겨줬다. 금값도 크게 올랐지만 이는 방향 전환을 넘어 제로금리까지 간 덕분이다. 금은 이자수익(Yield)이 발생하지 않는다. 금리가 0%에 수렴할수록, 통화가치가 하락할수록 채권 대비 상대적 매력이 커진다.
실물자산의 또 다른 대표인 원유 값은 왜 경기침체기인 2007년에 급등했다가 2019년에는 하락했을까. 금은 가치 보관 수단이지만 원유는 수요가 목적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그에 따라 가격이 하락한다. 2007년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펼치면서 원유 수요를 자극했다. 2019년에는 미중 갈등으로 중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해지면서 원유 수요까지 둔화되기 시작했다.
시장 상황도 달라졌다. 2007년만 해도 원유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주도하는 공급자 시장이었다. 미국과 캐나다가 셰일오일을 생산하면서 생산이 수요를 웃돌았다. 원유 시장에서 OPEC의 통제력은 약해졌다. 2019년에는 미국과 OPEC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시장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사우디는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낮추면 생산 단가가 높은 셰일오일에 치명타가 되리라 여겼다. 결과는 사우디의 패배다. 유가는 반등했고 셰일오일은 생산단가를 더욱 낮췄다.
최근 국제유가는 중동발 불안에도 불구하고 약세다. 유가는 경기에 비례하는데 내년도 글로벌 원유 수요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 때문이다. 미국 증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글로벌 IT기업들에게는 실적악화 요인이다. 증시는 미래 가치의 할인이다. 금리가 낮아져도 이익 전망이 어두워지면 주가는 오르기 어렵다. IT기기 수요 둔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주가도 크게 하락하고 있다.
주가는 경제성장률에 비례한다. 연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0%로 낮춰 잡았다. 실업률도 올해 4.4%로 현재(4.2%)보다 높였다. 한국은행도 지난 8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월(2.5%)보다 낮은 2.4%로 제시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더 중요해진 까닭
연준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빅컷을 단행하면서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가 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통상 경기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보다 정부의 재정정책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어떤 재정정책을 펼칠지에 따라 연준 통화정책의 속도와 깊이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재정 지출 확대와 세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반대로 재정 지출은 줄이고 세금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민주당에 유리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신재생에너지 투자와 복지 지출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국채 발행을 더 해야 하는데 금리가 하락할수록 이자 부담이 낮아진다.
통화정책은 금융시스템을 통해 경제에 돈을 공급한다. 재정정책은 실물경제에 돈을 투입한다. 경기부양 효과는 재정정책이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다. 얼핏 감세가 기업들의 이익 전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 비중이 높다. 그만큼 세금도 해외에서 많이 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 감세를 해도 그 효과가 미국의 내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이 어렵다. 오히려 트럼프 캠프가 주장하는 이른바 ‘관세 폭탄’이 꺼져가는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되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세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잠재적인 위협 요인은 재정 적자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과 글로벌 경제에 공급했다. 대부분 빚이었다. 빚이 급증하는 과정에서 초저금리가 유지된 덕분에 재정 부담은 비교적 제한됐다. 적어도 이자비용 걱정은 크지 않았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초저금리 때보다는 금리의 절대 수준이 높다.
금리가 높아지면서 재정지출을 위해 빚을 내는 것을 넘어 기존에 빌린 돈을 다시 빌려 갚을 때 필요한 기회비용 부담도 크게 커졌다. 단기금리는 통화정책에 반응하지만 장기금리는 재정과 경기 상황에 더 민감하다. 차기 미국 대통령의 재정정책 방향에 따라 금리 시장 상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편 미국의 재정정책은 다른 나라에 미칠 영향도 상당하다. 민주당은 글로벌 질서 유지를 위해 미국 정부가 재정 지출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은 그 반대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글로벌 질서 유지를 위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며 각국이 추가로 지출해야 할 재정이 크게 커질 수 있다.
재정지출 확대를 위해서는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하는데 이는 금리상승으로 이어질 만한 재료다. 반대로 미국은 그만큼 국채를 더 찍을 부담이 줄어든다.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이 국채를 덜 찍으면 시장금리도 하락할 확률이 높아진다. 채권 가격 상승이다. 미국 정부로서는 이자 부담이 준다. 투자자들은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 기회까지 노릴 만하다. 누가 되어도 채권이 주식보다는 유망할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