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주류샵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 정책, 위스키붐 시절 잊어야
업계에서는 정용진 회장이 지난 2022년 2억 5000만 달러(당시 기준 2996억 원, 현재 기준 3340억 원)에 인수한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를 중심으로 고급 와인 유통에 매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기존 위스키(스카치) 분야를 축소하고 버번 위스키에 주력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신세계 L&B의 와인 주력 의지는 현재 국내 주류 시장에 대한 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낸 위스키 수입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생겨난 혼술 문화로 2022년과 2023년 위스키 붐이 일어났지만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위스키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9%나 감소했다.
발베니12년 더블우드를 사기위해 오픈런을 벌이던 촌극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야마자키, 맥캘란 쉐리오크 등 몇몇 위스키를 제외하면 더 이상 싱글몰트 위스키를 적정가에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때 구하기 어려웠던 상당수의 위스키를 지금은 대형마트는 물론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위스키 수입액 역시 2023년 1월~6월 대비 11.2%나 축소됐다. 수입량에 비해 수입액의 감소가 적은 건 그나마 고숙성의 위스키, 즉 고가의 위스키 수입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저숙성, 엔트리급 위스키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건 수입사 입장에서도 유통사 입장에서도 선호할 만한 상황은 아닌 상태다.
더구나 청년층의 음주 문화가 만취에서 저도수의 술을 가볍게 즐기는 추세로 바뀌고 있고,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여력의 감소, 게다가 해외에 비해 과도한 주류세 부담 등으로 인해 위스키 소비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신세계L&B는 지난해 매출액 1806억 원, 영업이익 7억 원을 기록했다. 순손실은 54억 원을 냈다. 주류 유통사업을 맡고 있는 도매사업부는 2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제조사업부에서 21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제주소주 매각과 위스키 제조 중단으로 향후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이 기대된다. 특히 지난해 9월 취임한 송현석 대표는 신세계 L&B의 와인앤모어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는 작업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와인을 원료로 활용한 화장품과 큐레이팅 형 주로 쇼핑 플랫폼 론칭도 준비 중이다. 와인과 위스키 위주였던 주류 포트폴리오도 데킬라, 럼, 백주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힐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신세계L&B는 실적 개선은 물론 재도약을 꿈꿀 수 있다.
다만 신세계 L&B 와인앤모어가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상당수의 위스키 애호가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만이다. 와인앤모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바로 가격 정책이다.
그동안 와인앤모어의 주류 가격은 지나치게 비쌌다. 간혹 할인 프로모션에 들어가는 몇몇 제품의 경우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긴 했지만 상시 판매 가격은 와인앤모어와 경쟁하는 로컬 주류샵보다 50% 이상 비싼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한 식구인 이마트나 트레이더스보다도 월등히 비쌌다. 일례로 스타필드 고양점에 경우 지하 2층에 트레이더스가 지상 2층엔 와인앤모어가 자리하고 있다. 도보로 이동하면 3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동일한 스카치 위스키 제품을 와인앤모어는 트레이더스보다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40%까지 비싸게 팔고 있다.
트레이더스는 아란 10년 제품을 8만 9000원에 판매하는데 와인앤모어에서는 12만 9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마트에서 69000원에 판매하는 러셀 리저브 10년도 와인앤모어에서는 10만 9000원이다. 코스트코에서 10만 5900원에 판매한 글렌피딕15년도 와인앤모어는 15만 5000원에 팔고 있다. 위스키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와인앤모어에서 위스키를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폐점을 앞두고 행사에 들어간 AK광명점과 명지점을 봐도 와인앤모어의 할인가가 얼마나 소비자의 기대와 동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이들 점포는 폐점 세일을 하면서 기존 자신들이 판매하던 가격보다 가격을 낮추기는 했다. 가령 로얄 살루트 21년 그레인을 35만 원에서 21만 9000원에, 몽키숄더 블렌디드 몰트를 6만 2000원에서 4만 9600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이 가격은 기존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한 것에 불과한 착시다. 코스트코나 주류상회be, 데일리샷에서는 와인앤모어 폐점 할인가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해당 제품들을 살 수 있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이마트에서 3000원에 팔고 있는 일본 오리온 맥주가 와인앤모어에서는 5000원이다. 아사히 수퍼드라이, 기린 이치방 등 대형마트에서 간혹 4캔에 8000~9000원에 살 수 있는 수입맥주도 와인앤모어에서는 1캔에 4000~5000원을 받는다. 와인앤모어 매장 관계자는 "매장별로 일부 제품을 할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인 가격 정책은 본사에서 정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와인앤모어의 가격 정책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같은 증류소, 같은 업체에서 나온 제품을 와인앤모어에서 판다는 이유로 비싸게 받기 때문이다. 주류샵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가격을 낮추고 병행수입사를 통해 100원, 1000원 단위의 경쟁을 할 때 와인앤모어는 아직도 오픈런을 하던 시절을 못 잊고 배짱 장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편 와인앤모어는 올해만 6개의 매장을 폐점할 계획이다. 이중 이미 4개(다산점, 기장점, 동탄카림점, 부천점)는 폐점했고 현재 AK광명점과 명지점이 폐점을 앞두고 LAST PRICE 행사 중이다. 하지만 '폐점 할인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13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 카페 ‘위스키 코냑 클럽’에서는 광명점 폐업 할인을 두고 “할인한 금액이 다른 곳보다 비싸다”, “일반 가격보다 비싼 폐점 할인가, 그래서 안간다”, “한 놈만 걸려라 가격”, “가격을 이렇게 받으니 아무도 안 사먹고 곳곳에서 폐점 릴레이”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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