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 기술 문제, 휴대폰·가전 등 분쟁 범위 넓어…고의성 인정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가능성
#"표준특허로 피소 흔하지 않아"
윌러스 표준기술연구소가 지난 9월 20일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삼성전자와 미국의 휴렛 팩커드 컴퍼니(HP), 대만의 애스키 컴퓨터(Askey Computer) 등을 무선 통신 기술 관련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이 중 삼성 전자를 상대로 한 분쟁 특허는 4건(US11129163·US11700597·US11116035·US11516879)으로 모두 무선 통신 관련 표준특허다.
표준특허는 회피설계가 거의 불가능한 특허를 뜻한다. 해당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 정한 기술 규격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표준특허를 침해하지 않고서는 해당 기술을 사용한 제품의 제조·판매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야 한다.
대한변리사회 이준석 변리사는 “일반적으로 부품 등이 서로 호환이 가능하게 하려면 기업들이 특정 표준 풀을 사용해야 하고 이 경우 표준필수기술을 회피할 수 없다”라며 “그래서 표준특허로 제소당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고 또 표준특허로 제소되면 분쟁이 커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소장에 따르면 윌러스 측이 라이선스 계약이 필요하다고 삼성전자 등에 전달했으나 삼성전자가 이에 응하지 않으며 소송으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2022년 4월과 2023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에 특허 침해 사실을 고지했기 때문에 윌러스 측이 승소할 경우 고의성이 인정되어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따르면 불법 행위로 발생한 실제 손해액과 상관없이 고액의 손해배상액을 지불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패소할 경우 로열티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분쟁 특허 4건의 출원 일자가 2018~2021년에 걸쳐 있는 탓에 특허 만료 기한이 2038~2041년까지 넉넉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대표 변리사는 “각 특허마다 국내 패밀리 특허만 70여 건에 달하는 걸 보면 권리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분석하기 어렵게 얽혀 있다. 삼성 측에서 대응하기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의도적인 회피 전략 가능성도
윌러스 표준기술연구소는 무선 통신 및 멀티미디어 관련 신기술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개발(R&D) 기업이다. 한국 최초 표준기술 전문기업으로 3GPP, IEEE802.11, MPEG 등 다수 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표준특허 공급자이기도 하다. 이번에 삼성전자 제소에 사용된 특허는 윌러스가 개발한 와이파이6(802.11ax) 관련 기술인 것으로 파악됐다.
소장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갤럭시S24울트라를 비롯해 미국 시장에서 판매·수입되는 삼성의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가전제품, 웨어러블 기기들이 전부 분쟁 제품에 포함된다. 특허 침해 판결이 날 경우 광범위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셀룰러랑 와이파이 기술이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핵심 인터넷 기술의 양대 축이기 때문에 진짜로 와이파이 기술에 특허가 걸려 있다면 중대한 문제다. 막대한 배상비용과 특허료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며 “원고인 윌러스 측이 대가를 바라고 무리한 소송을 건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삼성전자가 놓친 부분이 있고 특허권자들의 주장에 타당한 요소가 있다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4월에도 독일에서 중국 국영기업인 다탕그룹의 스마트폰 필수 네트워크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독일 뮌헨 지방법원은 삼성전자가 독일에서 판매하는 LTE지원 모바일 기기가 중국 다탕그룹의 독일 특허를 침해한다는 1심 판결을 선고하고 유통 중인 해당 모델의 폐기 처분을 내렸다. 이후 삼성전자는 다탕그룹과 합의하며 특허 분쟁을 종료했다.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삼성전자가 다탕 모바일에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하고 향후 판매분에 대해 로열티를 지급한다는 식의 합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삼성전자가 이번 특허 분쟁과 관련해 전략적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재 한밭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기술적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이해 당사자가 아닌 이상 특허 관련 소송을 분석하기가 어렵다”면서도 “다만 피고 입장에서는 자사 기술과 해당 표준특허 기술이 백퍼센트 매칭이 되지 않는다고 아마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변리사는 “피고 쪽에서도 아마 해당 특허를 분석해본 후 비침해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가장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건 비용 문제인데 로열티 금액보다 소송 합의금이 좀 더 저렴하리라는 경영전략적인 판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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