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구걸하던 몽골소년, 중국 ‘고아 테니스 프로젝트’ 발탁…차이나오픈서 세계 1위와 접전 ‘눈도장’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2024 차이나 오픈’ 준결승전. 세계 랭킹 1위 야닉 시너(이탈리아)와 겨룰 상대는 중국의 ‘무서운 신인’ 부윤차오켓이었다. 그는 치열한 접전 끝에 시너에게 패했지만 이날 시합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줬다. 중국의 많은 언론들은 “졌지만 잘 싸웠다”고 부윤차오켓을 치켜세웠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부윤차오켓은 여느 선수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다. 부윤차오켓은 “나랑 같은 길을 걸었던 선수들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자신이 테니스를 하게 된 것은 ‘운명’이나 다름없었다고 전했다.
부윤차오켓은 2002년 1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보에르탈라에서 태어났다. 보에르탈라는 몽골어로 ‘푸른 초원’을 뜻한다. 부윤차오켓의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재가를 했다. 조부모 밑에서 자란 부윤차오켓의 유년 시절은 매우 힘들었다.
부윤차오켓에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류오용 코치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저장성에서 테니스를 가르치고 있던 류오용은 유망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국을 돌며 테니스 제자를 모으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고아 테니스 유망주 양성 프로젝트’였다.
그러던 중 류오용은 신장의 한 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여섯 살 소년 부윤차오켓을 만났다. 루오용은 부윤차오켓에게 중국 본토인 저장성 후저우로 가자고 제안했다. 부윤차오켓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부윤차오켓은 “내 인생에 테니스라는 옵션이 생겼다.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류오용은 부윤차오켓을 비롯해 거리에서 모은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테니스를 가르쳤다. 부윤차오켓은 “테니스가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류오용 코치는 그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즐겁게만 하라고 했을 뿐이었다”고 했다. 류오용 코치는 ‘초등학생 부윤차오켓’에 대해 “테니스를 알지도 못했지만 가장 열심히 뛰어다녔던 제자”라고 평가했다.
부윤차오켓은 후저우 테니스센터에서 훈련했던 3년 동안 기본기를 익힌 뒤 매일 6km를 뛰었다. 부윤차오켓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남다른 체력의 비결이다. 여기에도 남다른 사연은 있었다. 부윤차오켓은 “테니스는 부자 운동이었다. 고급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난 과외를 받을 수 없었다”면서 “대신 체력을 기르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뛰었던 것”이라고 했다.
2011년 저장성 테니스 팀에 입단하게 된 부윤차오켓은 두 번째 귀인 진성 코치를 만났다. 부윤차오켓이 자신의 ‘특기’인 강력한 서비스와 공격적인 플레이를 습득하고,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부윤차오켓은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8년엔 각종 대회에서 7차례 우승하며 세계 주니어 랭킹 5위까지 올랐다.
차이나 오픈 전에 열린 항저우 오픈에서 부윤차오켓은 생애 첫 투어 4강에 올랐다. 이로 인해 랭킹 96위까지 올랐다. 처음으로 100위 안에 진입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의 새로운 테니스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항저우 오픈에서 비록 준결승에서 패하긴 했지만 부윤차오켓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깨는 계속 떨렸다. 카메라에 비친 부윤차오켓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그는 뒤에 서 있던 진성 코치와 포옹하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윤차오켓은 “이 느낌을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관객의 환호성을 들으니 벅차올랐다”고 했다.
부윤차오켓은 가끔 조부모를 만나러 고향을 가곤 한다. 그때마다 부윤차오켓은 말을 탄다고 한다. 그는 “테니스 라켓을 내려놓는 날엔 승마를 한다”고 했다. 부윤차오켓의 또 다른 취미는 독서다. 부윤차오켓은 “경기장에서 고비를 맞을 때마다 가장 힘이 됐던 것은 책이었다. 그동안 읽은 책이 코트 위에서 나를 조절해주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부윤차오켓은 일단 빠른 시일 내에 50위권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최종 목적지인 10위권 입성을 위해서다. 중국 테니스 업계와 많은 팬들 역시 올해 부윤차오켓의 운명 같은 테니스 역정에 많은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당국에서도 부윤차오켓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와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은 축구, 농구, 테니스를 ‘3대 스포츠’로 키운다는 플랜을 세웠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축구, 농구는 대대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아직 신통치 않다.
반면, 중국 테니스의 경우 부윤차오켓을 필두로 좋은 성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만 중국에선 국제급 규모의 테니스대회가 10여 개나 열린다. 또 전국에 테니스 코트 3만 개 이상을 지었고, 앞으로 10만 개를 채운다는 목표다. 테니스 업계 관계자는 “부윤차오켓과 같은 투어 선수 1명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 10년간의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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