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 주연 AI 단편영화 공모전 개최…AI 영화 두고 배우들 ‘지적재산권 보호’에 우려 표명
가파른 흐름에서 먼저 기치를 든 주인공은 나문희다. 디지털 IP 기업 엠씨에이와 나문희의 소속사인 콘텐츠파크엔터테인먼트가 손잡고 ‘나문희 주연 생성형 AI 단편영화 공모전’을 개최한다. 장르, 소재의 제약 없이 누구나 나문희를 AI로 구현해 작품을 만들면 된다. 공모 기간은 10월 31일까지다.
AI 영화의 등장을 넘어 배우의 실제 얼굴과 이미지를 활용한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시도에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이용한 영화 제작은 이미 다양한 곳에서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AI 기술을 악용해 불법으로 만들어지는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유포가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유명인을 활용한 AI 영화는 초상권 등 지적재산권이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도 따른다. 산적한 과제를 딛고 그 누구도 아닌 고령의 배우 나문희가 의미 있는 출발을 가장 먼저 알렸다.
#배우 얼굴 이미지 활용한 AI 영화 최초의 시도
나문희가 시도하는 AI 단편영화 공모전은 배우가 자신의 얼굴과 이미지를 마음껏 활용하라고 허락하면서 AI 영화 제작을 독려하는 국내 첫 사례다. “SF와 판타지, 사극, 액션, 공포, 코미디, 멜로 등 어떤 장르든 자유롭게 영화를 제작해 지원해달라”고 주문한 주최 측은 “나문희 배우를 젊게 만들어 영화에 출연시키는 방법까지 모든 게 가능하다”며 “창작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배우의 데이터를 이용해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 8월 개봉해 국내서 199만 관객을 동원한 ‘에이리언: 로물루스’에는 4년 전 세상을 떠난 배우 이언 홈이 등장한다. 감쪽같은 모습으로 영화에 출연하는 이언 홈은 제작진이 생성형 AI 기술로 구현한 캐릭터다. 1979년 개봉한 ‘에이리언’ 1편에서 인조인간 역할로 출연한 이언 홈은 시리즈를 통틀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에 제작진은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면서 사망한 고인을 생성형 AI로 제작해 영화 안에서 되살렸다. 제작진의 이런 시도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족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과연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마땅한 일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일부에서는 ‘강령술 같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지난해 할리우드를 멈추게 만든 작가 등 배우들의 거센 파업의 원인 역시 ‘AI 기술의 역습’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원인이 됐다.
#5년 안에 ‘블록버스터’라는 개념 사라질 수도
여러 상황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데 이견을 갖기는 어렵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톰 행크스가 다시 뭉친 영화 ‘히어’ 역시 AI를 활용해 톰 행크스의 모습을 실제보다 더 젊게 보이게 만드는 디에이징을 시도한다. 지난해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미러’ 시즌6는 AI 배우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그리면서 다가올 현실을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 널리 상용화된 프로그램 ‘젠-3 알파’ 등 기술을 활용하면 실제 배우가 없어도, 촬영장이나 장비 그리고 관련 인력이 없어도 영화를 ‘뚝딱’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지난 7월 열린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48시간 동안 AI 영화를 만드는 워크숍을 개최해 완성작을 공개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작업의 수월함’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영화제에 참석한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1947 보스톤’의 강제규 감독은 “AI를 활용한 영화가 5년 안에 꽃을 피울 것으로 생각한다”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튜디오 시스템이나 전체적인 영화 시스템이 대변혁을 맞으면서 혁명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가 초래하는 영화 제작 환경의 변화를 예상한 발언이다. AI 기술만 있다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도 가능하다. 이런 흐름을 체감하고 있는 강제규 감독은 감독은 “5년 안에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다만 AI 영화가 더욱 다양하게 확장되기 위해서는 나문희의 경우처럼 배우 등 유명인이 초상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 사용의 허락이 가장 중요하다. 나문희의 이번 AI 단편영화 공모전이 주목받는 이유 역시 초상권을 완전히 풀어 마음껏 활용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우 등 유명인들이 AI 영화 등 관련 영상 산업의 발달에 가장 큰 우려를 표하는 부분도 바로 지적재산권 보호에 있다. 이미 노출된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를 이용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는 것처럼 보이는 AI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모르지 않는 나문희 측은 초기 단계인 만큼 긍정적인 측면에 더 주목한다고 밝혔다. AI로 구현된 나문희 캐릭터를 공익적인 성격을 지닌 캠페인 등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제안이다. 이에 더해 고령의 배우들의 지속적인 작품 활동에도 AI 기술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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