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최연소 30-30클럽 가입…김택연 고졸신인 최다 세이브 신기록
KBO는 10월 2일 2024년 KBO리그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MVP)와 최우수 신인 선수(신인왕) 후보를 발표했다. MVP 후보는 16명(투수·타자 각 8명), 신인왕 후보는 6명이다. KBO와 한국야구기자회가 함께 후보를 선정했고,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출입 기자 136명이 이날 투표를 완료했다. 결과는 포스트시즌 종료 후 열리는 KBO 시상식에서 공개된다.
MVP와 신인왕 모두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가 있다.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김도영(21·KIA 타이거즈)과 입단 첫해 마무리 투수를 꿰찬 김택연(19·두산 베어스)이다. 야구계는 이들의 수상을 떼어 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있다. 만장일치 수상 여부가 오히려 더 큰 관심사다.
#MVP는 김도영 만장일치?
MVP 후보의 면면은 화려하다. 레이스를 주도하는 후보는 단연 김도영이다. 프로 3년 차인 김도영은 올해 KIA의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면서 팀을 7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끈 주역 중 하나다. 141경기에서 타율 0.347, 홈런 38개, 109타점, 143득점, 도루 40개를 기록했다. 득점 1위, 홈런 2위, 타율 3위 등 주요 공격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라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143득점은 2014년 서건창(당시 넥센 히어로즈·현 KIA)의 135득점을 넘어선 역대 한 시즌 최고 기록이다.
김도영은 시즌 초반부터 일찌감치 MVP 레이스의 선두주자로 치고 나갔다. 4월 첫 경기였던 2일 KT 위즈전(3안타)을 기점으로 무서운 질주를 시작하면서 역대 최초로 월간 10홈런-10도루 기록을 세우고 KBO 4월 MVP를 수상했다. 이어 6월 23일 한화 이글스와의 광주 더블헤더 1차전에서 메이저리그 11년 경력의 베테랑 투수 류현진을 상대로 시즌 20호 홈런을 쳤다.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올 시즌 10개 구단 타자 중 가장 먼저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전반기 20-20 달성은 1996·2000년 현대 유니콘스 박재홍과 1999년 LG 트윈스 이병규, 2015년 NC 다이노스 에릭 테임즈에 이어 역대 5번째였다.
그 후 53일 뒤인 8월 15일 고척 키움전에선 역대 9번째 30홈런-30도루까지 해냈다. 국내 타자로는 2000년의 박재홍 이후 24년 만이다. 20세 10개월 13일에 기록을 달성해 박재홍이 보유하고 있던 종전 최연소 기록(22세 11개월 27일)을 2년 넘게 앞당겼다. 또 111경기 만에 홈런과 도루 30개를 모두 채워 2015년 테임즈가 남긴 종전 최소 경기(112경기) 기록도 갈아 치웠다. 이때부터 김도영은 "사실상 MVP를 예약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9월 8일 광주 키움전에선 시즌 100타점 고지까지 밟으면서 박재홍(2000년)과 테임즈(2015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한 시즌 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을 동시에 기록한 타자가 됐다. 기록 달성 당시 박재홍은 27세, 테임즈는 29세였다. 김도영은 20세 11개월 6일이 되던 날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 역대 최연소 기록을 작성했다.
유일한 아쉬움은 국내 타자 최초의 40홈런-40도루에 홈런 2개만을 남겨둔 채 38홈런-40도루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는 거다. 그러나 "MVP 트로피에 이미 '김도ㅇ'까지 새겼다"는 우스갯소리는 어느새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올 시즌 개인 성적만으로도 충분히 MVP 수상이 가능한데, KIA가 정규시즌 우승까지 해내면서 더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1982년 OB(현 두산) 박철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만장일치 MVP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김도영은 "시즌 전이나 초중반까지는 큰 욕심이 없었는데, 점점 더 강력하게 (MVP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고 막상 시즌이 끝이 찾아오니 너무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즌이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니니 나도 솔직히 욕심이 있다"고 의지를 보였다.
김도영의 아성에 도전하는 대항마는 안타 202개를 때려낸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외야수 빅터 레이예스다.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계약해 한국 무대에 데뷔한 레이예스는 10월 1일 창원 NC전에서 5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면서 KBO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안타(202개) 신기록을 세웠다. 이전까지 한 시즌 최다 안타이자 유일한 200안타 기록은 2014년 서건창이 133경기 체제에서 작성한 201개였다. 레이예스는 9월 28일 부산 KIA전에서 200번째 안타를 때려내 서건창의 눈앞에서 역대 두 번째이자 외국인 타자로는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 고지를 밟았다. 이어 시즌 최종전에서 막힘 없이 안타 2개를 추가해 극적으로 서건창의 벽을 넘어섰다. 타율 역시 0.352로 2위에 올라 올해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임을 입증했다.
이들 외에 제임스 네일, 정해영(이상 KIA), 원태인, 구자욱(이상 삼성 라이온즈), 곽빈, 조수행(이상 두산), 박영현, 멜 로하스 주니어(이상 KT), 노경은, 기예르모 에레디아, 최정(이상 SSG 랜더스), 카일 하트, 맷 데이비슨(이상 NC), 아리엘 후라도(키움), 오스틴 딘, 홍창기(이상 LG)가 후보 명단에 포함됐다. 투수 중 네일은 평균자책점 2.53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정해영은 31세이브로 구원왕을 차지해 정규시즌 1위 KIA 마운드의 앞과 뒤를 든든하게 지켰다. 원태인 15승으로 곽빈과 공동 다승왕에 등극했고, 평균자책점 3.66으로 올해 규정이닝을 채운 국내 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하트는 13승 3패, 평균자책점 2.69, 탈삼진 182개로 활약해 탈삼진 1위, 평균자책점 2위, 다승 공동 3위에 오르는 전방위 활약을 펼쳤다. KT 마무리 투수 박영현은 10승 2패 25세이브를 기록해 승률 1위(0.833)와 세이브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렸다. 40세 베테랑 노경은은 38홀드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후라도는 올 시즌 30경기에서 190⅓이닝을 던지면서 10승 8패, 평균자책점 3.36, 탈삼진 169개로 활약해 최하위로 처진 키움의 자존심을 세웠다.
타자 쪽에선 김도영과 레이예스 외에 홈런왕 데이비슨의 활약이 눈에 띈다. 그는 올 시즌 홈런 46개를 때려내 10개 구단 타자 중 유일하게 40홈런을 넘겼다. 2위 김도영(38개)과의 격차가 8개나 된다. 구자욱은 타율 0.343, 홈런 33개, 115타점을 기록하고 OPS(출루율+장타율) 1.044으로 김도영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해 삼성의 플레이오프 직행을 이끌었다. LG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꼽히는 오스틴은 홈런 32개를 치고 132타점을 올려 타점왕에 올랐고, 홍창기는 출루율 0.447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해 '출루 머신'의 위용을 공고히 했다. 조수행은 도루 64개를 해내 생애 첫 타이틀 홀더가 됐다. 에레디아는 타율 0.360, 195타점(3위)을 기록해 타격왕을 차지했다. 홈런 37개, 107타점으로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한 최정과 타율 0.329, 32홈런, 112타점으로 여전한 존재감을 뽐낸 로하스도 MVP 후보로 꼽혔다.
#신인왕은 김택연 만장일치?
신인왕 레이스도 김택연의 독주 체제가 공고하다. 입단 첫해부터 두산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김택연은 김도영과 마찬가지로 시즌 초중반부터 일찌감치 다른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선두를 질주했다. 올 시즌 60경기에서 3승 2패 19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08라는 빼어난 성적을 냈다. 고졸 신인답지 않은 배짱 넘치는 투구로 타자들의 기세를 꺾었고, 시속 150㎞대 초중반의 위력적인 직구로 야구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과거 신인왕 중 만장일치 수상자는 1996년의 박재홍이 유일했다. 올해 김도영과 김택연이 동시에 MVP와 신인왕을 만장일치로 수상하면, KBO리그 43년 역사에서 최초의 사례가 된다.
김택연은 두산이 올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2순위로 지명한 오른손 투수다. 인천고 시절 청소년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는데, 프로 첫 시즌부터 기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1군에 안착했다. 정식으로 프로 1군 데뷔전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웬만한 스타선수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3월 3일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스프링캠프 스페셜 매치가 그 시작이었다. 3만 명이 넘는 유료 관중 앞에서 소프트뱅크 1군 베스트 멤버와 맞붙었는데도 주눅 들지 않고 1과 3분의 1이닝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두산 포수 양의지는 당시 "갓 고교를 졸업한 선수 같지 않았다. 오승환(삼성) 형처럼 자기 공을 그냥 자신 있게 꽂아 넣는다"며 "최근 신인 중 이렇게 '완성형'이라는 느낌이 드는 투수는 보지 못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큰 무대(메이저리그)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극찬했다.
김택연은 2주 뒤인 3월 18일 LA 다저스와의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평가전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팀 코리아' 소속으로 마운드에 올라 다저스의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와 제임스 아웃맨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19세 선수가 그 많은 관중 앞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자신 있게 공을 던지는 게 기특했다"며 "아웃맨도 그 투수의 공이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택연은 정작 프로 데뷔전이었던 3월 23일 NC전에선 1이닝 2실점으로 부진했다. 첫 3경기에서 시행착오를 겪다 열흘 동안 2군에 다녀왔다. 그 기간이 김택연에게는 쓴 약이 됐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신인다운 패기를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1군에 돌아왔다. 그는 그 후 완벽한 반등에 성공했다. 첫 30경기에서 2승 2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64를 기록하면서 두산 불펜에 철벽 같은 방패를 세웠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결국 6월 13일 잠실 한화전에 앞서 "앞으로 김택연이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한다"고 소방수 교체를 선언했다.
김택연은 그 후 더 강해졌다. 공식적으로 소방수 보직을 맡은 첫날 팀의 9-6 승리를 지켜 세이브를 따냈고, 빠른 속도로 마무리 투수 자리에 적응했다. 상황이 급박할 땐 종종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멀티 이닝 세이브도 해냈다. 어느새 '특급 신인'을 넘어 리그에서 가장 믿음직한 소방수로 자리매김했다. 두산이 시즌 막판의 급격한 내림세를 이겨내고 정규시즌 4위를 지켜낼 수 있었던 데는 막내 김택연의 존재가 한몫했다.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8월 27일 창원 NC전에서 시즌 17번째 세이브를 올려 역대 고졸 신인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2006년 나승현이 롯데 소속으로 달성한 16세이브였는데, 김택연이 이 기록을 18년 만에 경신했다. 아쉽게도 올 시즌 1세이브가 모자라 정해영이 2021년 남긴 역대 최연소 20세이브 기록은 바꾸지 못했지만, 올 시즌 김택연의 위상을 입증하기엔 충분했다.
가을야구에서도 김택연의 존재감만큼은 대단했다. 그는 10월 3일 KT와의 와일드카드 결정 2차전에서 두산이 0-1로 뒤진 7회 2사 1·2루에 구원 등판했다. 김택연의 데뷔 첫 포스트시즌 등판이었다. 그는 곧바로 리그에서 가장 강한 타자 중 한 명인 로하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어 8회와 9회에도 마운드를 지키면서 역시 안타 하나씩만 맞고 실점하지 않았다. 성적은 2⅓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 김택연이 한 경기에서 2이닝 이상을 소화한 건 소방수 역할을 맡기 전인 4월 28일 한화전(2와 3분의 1이닝) 이후 5개월여 만에 처음이었다. 다만 두산이 더는 추가점을 내지 못하고 그대로 패해 김택연의 첫 포스트시즌은 한 경기만에 막을 내렸다.
김택연과 쉽지 않은 신인왕 싸움을 해야 하는 다른 후보들은 다섯 명 더 있다. 2021년 데뷔한 SSG 투수 조병현은 올해 12세이브, 12홀드를 기록하면서 팀 불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육성선수로 입단한 두산 투수 최지강 역시 15홀드를 올려 김택연과 함께 리그 최강 불펜을 이뤘다. 지난해 5라운드 신인인 KIA 투수 곽도규도 16홀드로 존재감을 뽐냈고, 독립리그를 거쳐 올해 한화의 지명을 받은 황영묵은 팀의 새로운 주전 2루수로 인정 받으면서 '투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입단한 SSG 내야수 정준재는 88경기에서 타율 0.307을 기록하면서 잠재력을 보여줬다. 신인상 후보는 최근 5년 이내(2019년 이후) 입단한 선수 중 누적 기록이 30이닝(투수) 또는 60타석(타자)을 넘지 않는 선수를 대상으로 추려졌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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