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권오수 전 회장 등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주가조작에 관여된 선수·전주 등이 주가조작 기간 중 통정매매 등 이상거래에 대해 금융기관·증권사 등에 수차례 ‘경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나온다. 김 여사 역시 ‘경고’를 받아야 할 대상이었고, 만약 그렇다면 주가조작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김 여사가 경고를 받지 않았다면, 이 역시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주식시장을 교란하는 시세조종 등 이상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불공정거래 점검항목 리스트를 보면 ‘거래량 30% 초과매매 제한’ 항목이 있다. 특정 인물이 특정 주식에 대해 하루 총 매도·매수 거래량의 30%가 넘는 거래를 5거래일 중 2일 이상 할 경우 ‘점검항목’ 위반으로 처리하도록 한다. 과다 매매로 인한 시세조종·통정매매 등의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한 ‘불공정거래 예방을 위한 증권회사 내부통제기준 표준안’을 봐도 각 증권사는 상시 감시체제를 두고 이상매매가 발생하면 내부 심사과정을 거쳐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규정에 따르면 증권사는 이상거래가 발견된 계좌 주인에 대해 우선 유선경고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상매매가 지속되면 등기 또는 내용증명으로 서면경고를 하고, 마지막으로 주문수탁이 거부될 수 있음을 예고해야 한다. 모두 ‘할 수 있다’가 아닌 ‘해야 한다’는 의무사항이다.
김건희 여사가 1차 작전 ‘선수’ 이 아무개 씨에게 맡긴 신한투자증권 계좌의 경우 도이치모터스 주식 하루 거래량의 30%를 초과해 거래한 날은 5거래일 중 4일이다. 2010년 1월 25일 31.7%, 1월 26일 35.0%, 1월 27일 22.1%, 1월 28일 44.4%, 1월 29일 35.0% 등이다. 이 거래들은 지난 2021년 10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기간 윤석열 당시 후보 캠프 측이 공개한 계좌 주식 거래내역에도 등장한다.
1월 28일 거래의 경우 김 여사 계좌에서는 점심시간인 오후 12시 28분부터 12시 43분까지 15분 동안 10만 주의 매도 물량을 쏟아냈다. 평균 매도단가는 2550원이었다. 그런데 장 마감이 가까워진 오후 2시 36분부터 다시 6만 2000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매입가는 2610원에서 2700원으로, 앞서 판 10만 주 매도가보다 비쌌다. 이를 통해 이날 종가는 2690원까지 끌어올려졌다. 종가관여와 고가매수에 해당한다.
금융투자협회 불공정거래 점검항목 리스트 등에 의하면 이 거래들은 불공정거래로 한국거래소나 사내 준법감시실 등에서 신한투자증권의 김 여사 계좌 담당직원에게 경고가 갔어야 한다. 그럼 직원은 김 여사에게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 또 다른 ‘전주’ 양 아무개 씨는 삼성증권·현대증권·대신증권 등 3개 증권사로부터 경고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양 씨는 김 여사와 마찬가지로 권오수 전 회장의 권유로 1차 작전 ‘선수’ 이 씨에게 본인의 증권계좌 공인인증서를 맡겼다. 양 씨가 2011년 작성한 사실확인진술서의 일부다.
“삼성증권·현대증권·대신증권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경고를 했다. 내용은 ‘그런 거래를 하면 주식거래를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놀라서 권오수 전 회장을 만나 ‘이 씨 주식하는 사람 맞나. 모르는 나도 상식적으로 주식은 높은 가격에 팔고, 낮은 가격에 사야지. 이 사람은 높은 가격에 사고 있다. 증권사들에게 경고 맞았다. 어떻게 된거냐’라고 물으니 묵묵부답이었다.”이 내용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양 씨의 진술과도 대체로 합치해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2차 선수들도 증권사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은 사실이 항소심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2차 선수인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이종호 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한국거래소 및 관련기관에서는 지속적으로 시장을 감시하며 인위적으로 (시세를) 변동시키는 주문 제출 등이 있을 경우 그에 관해 위반사실을 통지한다”며 “이종호 씨 등은 범행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시장개입으로 경고를 받아왔다”고 판시했다. 그 증거로 재판부는 작전 세력 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제시했다.
2012년 5월 14일 오후 5시 10분 2차 작전 ‘주포’ T 투자증권 센터장 김 아무개 씨가 ‘선수’ 블랙펄인베스트 이사 민 아무개 씨에게 보낸 메시지다.
“(전략) 내일 아침에 블랙펄인베스트에 갈 건데. 너 꺼 그리고 A 씨 전표에 사인을 몇백 장 받아야 하거든. 감독원 감사 나와서. B 씨는 도장 받아서 찍으면 되는데. 주문 증빙 때문에. (후략)”2012년 5월 24일 오전 11시 49분 김 씨가 민 씨에게 보낸 메시지다.
“B 고객께 여직원한테 전화 갈 거야. 종가관여 과다로. 종가에 2000주 거래됐는데 C 사장이 1500주 체결로…. 막 화내라 해. 거래가 안 돼 안 사지는데 어쩌냐고.”2012년 7월 19일 오후 3시 12분 피고인 D 씨가 김 씨에게 보낸 메시지다.
“정말 몇 년 만에 보는 빨간색인지. 앞으로도 계속 부탁. 저희는 시간 외 시세개입 경고 받았습니다.”2012년 12월 5일 오후 5시 13분 E 씨가 김 씨에게 보낸 메시지다.
“도이치모터스 공시 나왔어요. 상무님 투자경고. 아마 단주매매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후략)”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김 여사 명의 증권계좌는 신한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증권·DS투자증권 등 5개가 등장한다.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통정·가장매매 총 98건 중 김 여사 명의의 증권계좌에서 발생한 거래가 47건이다. 48% 비중이다(관련기사 [단독] 도이치모터스 항소심서 김건희 여사 통정거래 비중 되레 늘었다). 따라서 앞서와 같이 주가조작 선수·전주들이 증권사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았다면, 김 여사 역시 이상매매에 대한 경고가 갔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증권사 내부통제기준 표준안’에 따르면 증권사는 유선경고 내용은 서면 및 녹취의 방법으로 기록을 유지해야 하고, 서면경고 및 수탁거부 예고 내용 또한 사본을 보관해야 한다. 따라서 김 여사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했다면 증권사에 기록이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이에 앞서 2010년 1월 12일 거래의 경우 김건희 여사가 직접 신한투자증권 담당자와 통화·문자를 하면서 매수주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2년 5월 27일 열린 1심 공판에서 권오수 전 회장 측 변호인이 1차 선수 이 씨를 상대로 한 증인신문 내용이다.
변호인 : (전략) (1월 12일자 주문은) 증인이 주문한 것도 아니고, 김건희 여사가 한 것이지요.그런데 검찰은 이날 거래에서 50건에 가까운 이상매매 주문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권오수 전 회장 측 변호인이 별도로 검찰에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하여 1심 재판부에 추가증거자료로 제출한 김 여사의 신한투자증권 계좌 담당자의 진술조서 내용 일부다.
이 씨 : 예. 보면 그렇습니다.
검찰 : 2010년 1월 12일 거래를 분석해본 결과 물량소진 21건, 종가관여 1건, 고가매수 18건, 허수매수 10건의 이상매매주문이 확인됐는데 어떤가요.이처럼 신한투자증권 담당자가 김 여사에게 일일이 확인한 후 낸 주문이 이상거래에 해당한다면, 김 여사는 이러한 주문거래에 대해 경고 조치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시세조종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담당자 : 이건 물량을 사라고 하니까 계속해 호가를 높여가며 매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