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편히 다닐 길 낸다고/ 앞산 소나무들 잘려나간다/ 비바람 이겨낸 지난 세월이/ 허망하고 무참하게 쓰러진다/ 새들도 이젠 아예 오지 않을 것이다/ 정든 데 두고 떠나면 슬프다.” 「새들도 오지 않을 것이다」
잘려나간 앞산 소나무 때문에 마음이 허전하고 슬프면 그나마 다행이다. 삶에 지쳤어도 생명에 대한 감수성은 남아있다는 뜻이므로. “정든 데 두고 떠나면 슬프다.”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머문 문장이다. 정이 머물다 떠난 자리, 그리움이 생기는 자리다. 생텍쥐페리가 말했다. “그대가 배를 만들고 싶다면 망망대해에 대한 그리움을 가르쳐라!” 그렇듯 그리움은 열정의 원천이다.
내가 좋아하는 황 시인이 오랜만에 시집을 냈다. ‘늙어서도 빛나는 그 꽃’이다. ‘그 꽃’에는 비바람 몰아치는 고해(苦海)를 건너오면서 그가 지은 고독의 방주 속에서 묵묵히 풍파를 건너가고 있는 은자(隱者)가 보인다. 그 은자는 이 ‘가을’을 이렇게 느끼고 있다. “둘이 있어도 눈물 난다/ 혼자 있으면 더 눈물 난다” 「가을」
왜 눈물이 날까. 그리움 때문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고 싶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더구나 기후 위기로 짧아진 가을은 더더욱! 가을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본다.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그 하늘 아래 떨어지는 순한 햇살을, 그 햇살이 서산을 넘을 때 화려하게 빛나는 저녁노을의 황홀함을, 그리고 평생 “한 번도 빼보려 애쓴 적 없는 녹슨 못 같은” 너를, 너의 잔상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든,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든 그리움을 잘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이 난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버려두는 법을 모르면 그리움은 안타까움이 되고 고통이 되어 그리움 그 자체가 꽃이라는 것을 눈치도 채지 못한다. 날렸던 것 많은 사람, 날렸던 것 없었던 사람 다 마찬가지다.
“늦은 봄날 소나무 송홧가루 날린다/ 세상에 날릴 것 없는 사람도 많다” 「봄날」
날릴 것 없는 사람, 날릴 것 많은 사람, 존재 차원에서는 모두가 꽃이다. 마음속이 꽃이면 마음 밖도 꽃이다. 아니, 마음속이 꽃이니 마음 밖도 꽃이다. 늙어서도 빛나는 꽃은 미소만 「남은 꽃」이다.
“다른 꽃들 다 질 때/ 아직 살아서 남은 꽃// 뭐라 할 말이 남았나/ 두고 갈 미소가 남았나”
그대가 꽃이다! 내가 꽃이다! 그것이 어찌 나를 과대평가하는 망상의 말이거나, 그대를 기분 좋게 하려는 아부의 말이겠는가. 삶이 녹록지 않아 몸은 지치고 병들고, 마음은 상처투성이라도 ‘나’를 ‘나’답게 하는 생명의 꽃이 내 안에 있어 나를 지킨다는 뜻일 것이다.
마음을 다 담아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거기 고요한 곳에서 피어나는 시들지 않는 꽃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작기로 치면 티끌보다도 작고, 크기로 치면 우주가 꽉 차도록 빛나는 그 꽃에 대한 감수성이 생기면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가 하나의 꽃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 같다.
마음공부 열풍이라고 한다. 지치고 지친 외로운 영혼들이 지친 마음을 다 잡기 위해 마침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 것 같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참하게 쓸고 가는 허망한 세월, 변하기 쉽고 병들기 쉬운 이 몸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키다 보면 묘한 연금술로 다른 차원의 삶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홀로 앉아 나를 찾네/ 내 안에는 내가 없네/ 아주 오래된 빈 길 뿐이네” 「선정(禪定)」
빈 길 위에서, 아주 오래된 빈 길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늘에 달 뜨면 하늘을 바라보고/ 호수에 달뜨면 호수를 바라보고/ 마음에 달 뜨면 마음을 바라보고” 「달 뜨면 뭐 하지」
생각들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그 생각들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마음을 챙기다 보면 마음에 달이 든다, 달이 뜬다. 맑은 가을밤에는 달이 정말 가깝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