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권오수 전 회장 등의 1·2심 판결문과 검찰 수사기록 등을 보면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지하고 공모한 정황이 수없이 등장한다. 권 전 회장이 주가조작에 동참을 주저하는 선수와 전주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이름을 거론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오수 전 회장 등 피고인들에 대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심 판결문에는 또 다른 ‘전주’ 양 아무개 씨가 2011년 작성한 사실확인진술서가 증거로 채택돼 있다. 양 씨는 김건희 여사와 마찬가지로 권오수 전 회장 권유로 1차 작전 ‘선수’ 이 아무개 씨에게 본인의 증권계좌를 맡긴 인물이다. 이 진술서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양 씨의 진술과도 대체로 합치해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음은 양 씨의 사실확인진술서 일부다.
“선수 이 씨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 ‘양 씨가 안 하겠다고 했으니, 안 하겠습니다’라고 권오수 대표에게 말하니, 몇 분 후 권오수 대표가 전화를 다시 해 ‘김 아무개 씨도 있고, 김건희도 있고, 다른 주주들도 있으니 하자’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1차 작전이 진행 중이던 2010년 초 당시 권오수 전 회장은 선수 이 씨와 함께 양 씨의 도이치모터스 보유주식을 담보로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 그 돈으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집해 주가를 올리려 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 이 씨와 전주 양 씨 모두 작전에 참여하는 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날, 저는 권오수 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이 씨에게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하면서 (중략) 권오수 대표는 ‘찝찝하면 하지마’하고 말해서 (중략) 찝찝하지 않게 생각하면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양 씨 진술서에 따르면 양 씨는 권 전 회장에 전화를 걸어 “선수 이 씨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모두 맡기는)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말했다. 선수 이 씨 역시 권 전 회장에 전화해 “양 씨가 안 하겠다고 했으니, 안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그러자 권 전 회장은 몇 분 후 이 씨에게 다시 연락해 “김 아무개 씨도 있고, 김건희도 있고, 다른 주주들도 있으니 하자’라고 설득에 나섰다고 한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의 주요 인물임을 언급하며 작전 참여를 설득한 셈이다.
주가조작 2차 작전 세력이 김 여사를 공범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앞서 JTBC는 2차 작전 ‘주포’ 김 아무개 씨가 검찰 수사를 피해 도피 중이던 2021년 10월쯤 공범 민 아무개 씨에게 전달하려고 쓴 편지의 전문을 공개했다. 해당 편지에서 김 씨는 “내가 가장 우려한 김건희 여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윤 쪽은 김 여사만 빠져나가면 나머지는 무기징역을 받든 사형을 당하든 아무런 고민 없는 사람들”이라고 적고 있다.
본인들은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져 이른바 ‘달리는’데, 김 여사만 처벌을 피하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작전 세력들은 김 여사가 함께 처벌을 받아야 하는 공범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요신문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을 보도해왔다. 지난 대선 기간 알려진 것처럼 김 여사는 선수 이 씨에 신한투자증권 계좌를 맡겨 2010년 1월 12일부터 29일까지 7거래일 동안 14억 7792만 원을 들여 도이치모터스 주식 57만 5760주를 매집한다.
7거래일 중 하루(1월 27일)를 제외한 나머지 6일의 경우 김 여사 계좌에서 이뤄진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가 하루 총 매도·매수 거래량의 30%를 초과했다. 1월 13일은 김 여사 계좌 비중이 52.3%로, 하루 총 거래량의 절반이 넘었다. 이는 금융투자협회가 제시한 ‘불공정거래 점검항목 리스트’의 ‘거래량 30% 초과매매 제한’ 항목 위반이다(관련기사 [단독] 규정대로면 ‘경고’ 감인데…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진짜 몰랐을까).
김 여사가 기존 알려진 보유 주식 외 추가로 53만여 주를 더 보유하고 있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 씨가 권 전 회장으로부터 주식 시세조종을 의뢰받고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우호 지분 명세’ 문서를 보면 여기서도 김 여사가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 여사는 2009년 12월 31일 이전 특정 시점에 도이치모터스 주식 65만 주를 보유하고 있었다(관련기사 [단독] 확신도 없이 ‘몰빵’을?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추가 보유 논란).
과거 2억~3억 원을 투자하던 행태와 달리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들인 김 여사의 투자패턴은 권 전 회장 등 작전 세력의 시세조종 행위를 알았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한편, 신한투자증권 김 여사 계좌 담당자의 검찰 진술조서, 김 여사와 대신증권 담당자의 녹취록 등에 따르면 김 여사는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주식거래를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1차 작전 선수 이 씨에게도 신한투자증권 계좌를 넘기며 ‘전화주문’ 권한만 줬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가 통정거래로 판단한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의 28만 주에 대한 6일치 35건 거래는 전화주문이 아니라 ‘HTS(홈트레이딩시스템)’로 체결됐다. 재판부는 이 계좌를 블랙펄인베스트가 시세조종에 동원했다고 판시했다.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계좌 관리를 2차 작전 세력에 일임하며 거래에 필요한 공인인증서까지 넘겨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KBS 보도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은 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를 김 여사가 직접 거래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공인인증서나 비밀번호를 준 것이라고 본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지하고 작전세력에 공인인증서까지 주면서 적극 가담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 여사는 검찰 조사 등에서 “본인이 직접 거래했고, 시세조종에 이용되는지 몰랐다”는 취지의 답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선대본부 측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윤석열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을 맡았던 이양수 의원이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관련 지난 2022년 2월 24일 내놓은 입장문이다.
“상당수 언론이 ‘김건희 대표가 이종호 씨에게도 계좌를 빌려줘 거래하도록 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2010년 10월 28일부터 2011년 1월 5일까지 거래된 김건희 대표 계좌는 미래에셋대우 계좌다. 그 거래내역은 모두 김건희 대표가 미래에셋대우 지점 직원에게 직접 전화로 주문했다. (중략) 거래금액은 모두 김건희 대표 자금으로서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 계좌를 빌려준 사실이 없다. (중략) 김건희 대표는 직접 거래하였을 뿐 이종호 씨에게 미래에셋대우 계좌를 맡긴 사실이 없기 때문에, 김건희 대표 관련 통정매매는 전체가 오류다. (중략) 2년 넘게 수사했는데 김건희의 미래에셋대우 계좌의 운용주체가 김건희인지 이종호 씨인지 착각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수사팀이 오류를 알면서도 그대로 둔다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가 될 것이다.”하지만 1심과 2심 판결을 통해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는 이종호 씨의 블랙펄인베스트에서 운영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