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꿈꿨던 한강 음악 들으며 글 다듬어…‘흰’은 동명의 소설 읽고 활동명 정해
# 한강에게 영감을 "주다"
10월 16일 기준, 남매 듀오 악뮤(AKMU·악동뮤지션)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국내 최대 규모 음원사이트인 멜론에서 11위에 올랐다. 2019년 발매한 노래가 5년 만에 ‘역주행’하고 있다. ‘한강 효과’다.
한강은 2021년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하면서 출판사 문학동네 공식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노래를 언급하며 "초고 작성을 마치고 택시를 탔는데 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면서 "‘아는 노래고 유명한 노래지’ 하고 듣는데 마지막 부분 가사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한강이 언급한 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의 가사는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다. 이에 대해 한강은 "바다가 다 마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갑자기 막 사연 있는 사람처럼 택시에서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소설가이자 싱어송라이터다. 2007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내면서 권말 부록에 담긴 앨범 속 10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이 가운데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햇빛이면 돼’는 직접 불렀다. 당초 객원가수에게 가창을 맡기려 했으나, 절친한 정립 음악감독의 추천으로 한강이 직접 노래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한강은 내로라하는 싱어송라이터인 조동익·조동희 남매를 좋아한다. 그래서 조동희의 에세이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 작사가 조동희의 노래가 된 순간들’의 추천사를 쓴 적도 있다. 그들에게는 ‘제주’라는 공통분모도 있다. 한강은 제주 4·3 비극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썼고, 조동익은 현재 제주에 거주 중이다
실제로 ‘작별하지 않는다’ 발간 당시 한강의 당시 플레이리스트에는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와 조동익의 ‘룰라비(Lullaby)’ 외에 필립 글래스의 피아노 음반 중 에튀드 5번, 고 김광석의 ‘나의 노래’, 안드라 데이의 ‘라이즈 업(Rise Up)’, 오혁이 부른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은 "평소에도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라며 "어떨 때는 아주 조용한 상태에서 글을 다듬지만 어떨 때는 귀가 떨어질 것처럼 크게 음악을 틀어 놓는데 그러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음악을 듣는 가운데서도 내가 쓴 글이 고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감각 속에서 글을 고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한강에게 영감을 "받다"
대중문화계에는 독서 마니아가 많다. 평소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으며 영감을 얻고 마음을 다스리는 식이다. 특히 앞서 성장 소설의 고전이라 불리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에서 청춘의 고뇌와 아픔을 읽고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켰던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축전을 띄웠다. 현재 군복무 중인 뷔는 한강의 수상 소식을 담은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며 "군대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축하드린다"고 했고, RM 역시 우는 표정과 하트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WSG워너비의 멤버로 주목받았던 보컬리스트 흰(HYNN·박혜원)은 "한국 작품으로, 작가님만의 시선과 통찰로 전 세계를 감동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자랑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흰에게 이번 수상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그가 한강의 소설 ‘흰’을 감명 깊게 읽은 후 활동명인 ‘흰’을 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만을 건넬게’라는 문장에서 큰 울림을 얻었다는 흰은 "그 문장을 통해 한 개인으로, 음악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풍파나 상처가 있더라도 진심 어린, 순수한 마음을 담아 음악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외에도 배우 고현정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강 작가의 대표작들을 거론하며 "드디어 한강 작가님 노벨상. 기쁘네요"라고 적었고, 걸그룹 AOA 출신 배우 설현은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인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공유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한강의 작품을 원작 삼은 영화 ‘채식주의자’(2010)와 ‘흉터’(2011)도 10월 17일부터 재상영을 시작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단순히 문학계의 쾌거를 넘어 K-컬처 전반에 활동성을 부여한 셈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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