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아닌 현금 지급 두고도 뒷말 무성…경기도 “개인정보보호법상 명단 받을 수 없지만 숫자 추산할 수 있다”
2024년 경기도의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체육인 기회소득’이다. 김동연표 ‘체육 기본소득’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중위소득 120% 이하에 해당하는 만 19세 이상 엘리트 체육인들에게 연 150만 원 현금 지급을 골자로 한다. 경기도는 지난 3월 체육인 기회소득 지급 조례안을 공포했다.
기회소득 대상이 되는 ‘체육인’의 범위엔 국민체육진흥법에서 규정한 선수를 비롯해 선수 출신 중 현재 체육 지도자, 심판 등 체육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포함된다. 체육활동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정 소득’ 이하 체육인에게 지급하는 금전을 ‘체육인 기회소득’으로 정의했다.
‘일정 소득’ 기준은 경기도지사가 별도로 정해 공시한다. 곧 지급될 예정인 체육인 기회소득에서 일정 소득 기준은 2024년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다. 경기도에 주소지를 둔 체육인이 2024년 기준 월 소득 267만 4134원 이하일 경우 대상자가 된다. 세전 기준 연봉으로 하면 약 3200만 원 이하일 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체육인 기회소득과 관련해 경기도 지역 정가와 체육계에선 뒷말이 무성하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경기도 내부 문건에 따르면, 경기도 산하 31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화성시와 의정부시를 비롯한 15개 기초지자체가 올해부터 체육인 기회소득을 지급할 전망이다.
수원시와 남양주시를 비롯한 11개 기초지자체는 2025년부터 체육인 기회소득 정책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용인시 고양시 성남시 부천시 여주시 등은 체육인 기회소득 정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올해부터 체육인 기회소득을 추진하려고 했던 시흥시는 아직 관련 조례가 통과되지 않았다. 시흥시의회에서 조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까닭이다. 체육인 기회소득 조례안을 통과시킨 경기도 산하 지자체들은 경기도의회에서 통과한 조례와 거의 동일하게 조례를 제정했다.
시흥시의회에선 조례안과 관련해 ‘기회소득 지급 대상자 명단 교차검증 시스템 미비’와 ‘기회소득 현금 지급 방식’ 등 문제점이 지적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건섭 시흥시의원은 6월 10일 열린 자치행정위원회 회의에서 “체육인 기회소득이 어떻게 보면 선심성 행정이 될 수 있다”면서 “(체육인 명단 자료) 제출을 요청했는데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시의원은 “체육인이라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경기도에서 현금 아니면 안 된다 하니 굳이 이 사업을 시흥시가 같이 참여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이 시의원은 “경기도가 지역화폐를 활성화하자고 난리인데, 이 부분(체육인 기회소득)에선 현금으로 준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했다.
회의에 참석한 시흥시 관계자는 “(지급 대상자 관련) 현재 수치는 예상치”라면서 “시에서도 받은 명단 자료가 없고, 수치만 받았다”고 했다. 현금 지급 방식과 관련해서 시흥시 관계자는 “체육인들이 종목별로 다른 장비를 관내에서만 구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현금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건섭 시흥시의원은 일요신문에 “기회소득 대상자를 검증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경기도가 속도를 내면서 빠르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우려가 있다”면서 “지자체 예산을 활용해 현금으로 기회소득을 지급하게 되면, 지자체 경제 활성화와 전혀 무관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시의원은 “체육인 명단을 대한체육회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예산을 집행하는 기초지자체는 기회소득 지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을 할 방법이 없다”면서 “체육인들 사이에선 내년 초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있는데, 경기도청이 나서 체육인 기회소득이란 제도를 통해 현금을 살포하게 되면 현직 대한체육회장이 선거전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경기도 기초지자체 체육회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유권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경기도”라면서 “경기도가 속도감 있게 체육인 기회소득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 어린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취재에 따르면 경기도는 대한체육회로부터 경기도 등록 체육인 숫자, 생활체육대축전 참가 종목자료(참가기록 및 입상기록 발급가능 여부, 발급가능 시작 연도) 등 개략적인 정보에 대해서만 자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명단을 받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또 경기도는 경기도체육회와는 정책설명회 개최 안내 및 정책세미나 개최 협조 건으로만 소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적으로 체육인 거주지를 교차검증할 자료는 경기도에서도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9월 9일 기준 경기도는 사업 대상 인원을 7860명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체육회 선수등록시스템에 등록된 경기도 거주 만19세 이상 선수, 지도자, 감독은 2만 1110명의 35%에 해당하는 수치를 지급 대상자 예상인원으로 산정했다. 이 예상대로 기회소득이 전면 지급될 경우 기초지자체 분담분 예산 총액은 연 58억 9500만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2024년 기회소득을 지급할 예정인 기초지자체는 10~11월에 신청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이미 기초지자체 중 상당수가 접수에 돌입했다. 이후 민원서류 및 소득조사 기간을 거친 뒤 12월 내에 기회소득이 지급될 전망이다. 기초지자체별 지급 시기는 특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도는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체육인 기회소득 정책 미참여 의사를 밝힌 기초지자체 체육회 관계자는 “경기도에서 꾸준히 체육인 기회소득 정책을 참여하라고 연락이 왔다”면서 “이미 자체적으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초지자체 입장에선 체육인 기회소득 정책에 동참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한 지도자 출신 체육인은 “오히려 미성년자 유망주 혹은 스포츠 인프라에 대한 지원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체육인 개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해준다면, 그 사용처를 일일이 모니터링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각 종목에 필요한 장비를 사는 경우의 수를 고려해 현금 지급 방침을 내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면서 “현금을 지급 받으면 장비를 구매하는 데 보태기보다 개인적으로 쓰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체육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체육 지도자들 중엔 공식적으로 소득이 잡히지 않는데, 실제로는 고소득인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면서 “제도를 악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를 마친 뒤에 정책이 시행돼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체육인들이 현금을 지급받게 되면, 경기력 향상을 위해 활용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경기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기초지자체 대부분이 경기도청으로 예산을 교부받는 입장이다 보니, 경기도에서 지침을 내리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기회소득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며 허점 많은 선심성 정책이란 비판을 받기보다, 세세한 검층 시스템 등을 두루 점검한 뒤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지역화폐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지역화폐 활성화 기조가 두드러진 광역지자체다. 그런데 특수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기회소득 지급에 있어서는 현금 지급을 조례에 의무화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취임 후 경기도는 5가지 기회소득 조례안을 입법했다. 장애인 기회소득, 예술인 기회소득, 체육인 기회소득, 아동돌봄 기회소득, 농어민 기회소득 등 5가지 조례다.
그 가운데 현금 지급 방침이 조례에 직접 명시된 조례는 2건이다. 체육인 기회소득과 예술인 기회소득 두 가지다. 현금 지급을 원칙으로 하는 기회소득 지급 조례안 2건 모두 제안자가 김동연 경기도지사다. 두 가지 기회소득 모두 중위소득 120% 이하가 지급 기준인데, 이 부분이 역으로 특정 분야 종사자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에서도 경기도청 측에 체육인 기회소득이 현금으로 지급되는 이유를 질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기도청으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경기도청 측은 “체육인 기량 향상 소요 비용을 실질적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사용처 제한을 받지 않는 현금으로 지급한다”면서 “또한 전문 체육인의 장비는 특정 업체에서만 판매하는 경우가 있어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 시 구입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기도청이 일부 기회소득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침을 세운 가운데,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국정감사에서 지역화폐 활성화 필요성에 대한 소신을 재차 강조했다.
김 지사는 10월 14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대단히 큰 역할을 한다”면서 “지역화폐를 활성화해서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골목상권이나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일요신문은 10월 18일 경기도청에 체육인 기회소득을 둘러싼 몇 가지 쟁점 내용을 질의했다. 체육인 명단 확보 여부와 관련해 경기도청 측은 “대한체육회와 경기도 종목단체에서 갖고 있는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받을 수가 없지만, 숫자는 추산할 수 있다”면서 “조건을 공지하고 그 조건이 되는 대상자들이 신청을 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위소득 120%라는 기준이 특정 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경기도청 측은 “2024년부터 정부가 체육인 복지법을 시행했다”면서 “체육인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대행해 복지제도를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다”고 했다. 경기도청 측은 “체육인 기회소득의 경우 체육인 복지법을 근거로 한 복지정책으로, 경기도가 시작하게 되면 또 그게 국가정책화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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