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디렉션 멤버 리암 페인 사망 보도로 유럽 발칵…국내에선 동남아 이주노동자들 사이 ‘야바’ 등 불법 유통
영국 인기 팝 밴드 원 디렉션(One Direction)의 멤버 리암 페인은 10월 17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팔레르모 지역에 위치한 한 호텔 3층 발코니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사망 소식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21일 전해진 관련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이미 현지 경찰을 통해 리암 페인이 머문 호텔 객실에서 마약 투약 도구들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는데 해외 매체들은 앞다퉈 부검 결과 핑크 코카인, 크랙, 벤조디아제핀 등 다양한 마약류가 고인의 체내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다만 아르헨티나 검찰은 "아직 확인 단계"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마약류는 ‘핑크 코카인’이다. 분홍색 식용 색소로 착색해 핑크 코카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합성 마약으로 핑크 솔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름과 달리 실제 성분이 코카인은 아니다. 코카인은 코카나무 잎에서 추출하는 트로페인계 알칼로이드이지만 핑크 코카인은 엑스터시(MDMA), 케타민, 2C-B 등의 마약류를 섞어서 만든 합성 마약이다. 혼합 과정에서 2C-B가 쓰였다고 해서 ‘뚜시’로 불리기도 하고, ‘비너스’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2020년 전후로 칠레와 콜롬비아, 우루과이 등 중남미 지역 클럽에서 주로 발견되던 핑크 코카인은 최근 스페인과 영국 등 유럽에서도 적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리암 페인이 사망한 아르헨티나 역시 중남미 국가다. 최근 스페인 당국은 이비사섬과 말라가 등 휴양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약 밀매 네트워크에 대한 대대적인 마약 단속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대량의 ‘핑크 코카인’이 적발됐다.
최근 중남미와 유럽에서 핑크 코카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합성 마약류이기 때문이다. 합성 마약류는 혼합 과정에서 사용된 마약류 등 물질의 종류와 양이 천차만별이라 생각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 영국 BBC방송의 스페인어판 ‘BBC문도’는 핑크 코카인을 러시안룰렛에 비유했는데 전문가들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위험성이 랜덤하게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핑크 코카인을 남용해 사망한 사례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의 인기 팝스타 리암 페인까지 사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분홍색 식용 색소로 착색해 시각적 효과를 높인 핑크 코카인은 아름다운 색상으로 사람을 현혹해 치명적인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이 마약청정국이던 시절이라면 중남미와 유럽 등 먼나라 이웃나라 얘기 정도로 받아들여졌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아직 핑크 코카인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적발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유럽처럼 적발 사례가 급증할 위험성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핑크 코카인은 아니지만 합성 마약류는 이미 국내에서도 흔하게 적발되고 있다. 10월 22일 전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태국 국적 외국인 18명과 내국인 1명 등 19명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에게 상습적으로 마약을 구입해 투약한 8명도 함께 구속 송치했다. 이들이 유통한 마약은 합성 마약 ‘야바’로 지난 6월부터 강원, 대구, 경남, 경북, 전남 등에서 불법 유통했다.
경찰은 이들을 검거하며 야바 1만 1855정, 대마 512.8g 등을 압수해 언론에 공개했는데 야바 역시 핑크빛으로 핑크 코카인과 유사한 색깔을 띄고 있다. 중남미에 핑크 코카인이 있다면 야바는 동남아에서 주로 유통되는 합성 마약으로 메스암페타민 계열이다. 메스암페타민은 1893년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합성에 성공해 각성제로 쓰였다. 1941년 일본의 다이닛폰 제약에서 출시한 상품명 ‘필로폰’, 내지는 일본식 발음 ‘히로뽕’으로 잘 알려진 마약이다. 메스암페타민 계열 합성 마약인 야바는 이미 태국에서 1979년에 불법으로 지정됐는데 그만큼 오래 전부터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널리 유통돼 왔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불법적으로 대량 유통이 이뤄지고 있는데 농어촌에서 일하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주된 구매층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동남아 불법체류 마약사범들이 주로 밀반입해 유통하고 있다.
같은 날 경남 통영해양경찰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베트남 출신 귀화자인 유흥주점 업주 40대 A 씨 등 4명을 검찰에 구속 송치하고, 베트남 출신 귀화자 여성 접객원 30대 B 씨 등 3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A 씨 등은 2023년 9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진주시 소재의 한 유흥주점에서 엑스터시 등 마약류를 상습 판매 및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귀화한 A 씨는 2019년부터 유흥주점을 운영해 왔는데 여기에 같은 베트남 출신 여성 접객원들을 고용해 술은 물론이고 마약류까지 불법 판매했다.
심지어 유흥업소 가게 문을 닫고 마약 타피를 열기도 했다. 폐쇄회로(CC)TV로 주변을 감시하는 것은 기본, 평소 사용하지 않는 후문을 도주로로 확보해 놓기도 했다. 역시 손님은 주로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 이 지역에는 남해안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이번 단속에서도 합성 마약이 발견됐다. 기존 엑스터시는 물론이고 엑스터시에 케타민을 합성한 알약 형태의 신종 합성 마약까지 판매했다. 통영해양경찰서에 따르면 합성 마약이 엑스터시나 케타민을 개별 투약하는 것보다 환각 및 흥분 상태 유지 시간은 짧지만 동시에 두 가지 마약 효과를 동시에 낼 수 있어 평소 찾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직 이들이 어떻게 마약류를 구했는지 유통 경로는 확인되지 않아 해경은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합성 마약은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을 위주로 유통되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핑크 코카인과 같은 합성 마약이 국내로 밀반입돼 내국인들 사이에서 유통될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 마약 오염국이 된 대한민국은 더욱 치명적인 합성 마약의 공포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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